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쫑이 이야기

by 글마루

시골로 이사 오며 진돗개 한 마리를 입양했다. 온몸이 검은 털로 뒤덮인 강아지는 전남 순천에서 먼 길을 고속버스 타고 오느라 기진맥진해 있었다. 게다가 어미와 떨어진 불안감 때문인지 눈에 슬픈 자국이 어린다. 반가운 일면 모녀간에 생이별시킨 것 같아 미안해진다. 이왕 왔으니 잘살아보자며 녀석을 달랜다. 진돗개를 보니 그 옛날 아버지가 전해준 이야기가 새삼 떠오른다.


아버지 어렸을 때는 집이 꽤 부자여서 가을이면 여기저기 소작농들이 도조를 바치기도 하고, 곳곳에서 들어오는 선물들로 마당에는 나락 가마니와 피륙들이 산처럼 쌓였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사냥꾼은 노루를 산 채로 잡아 와 바치기도 할 정도로 할아버지는 그땐 그 일대에서 최고의 부자로 통했다. 그리하여 아주 우수한 품종이라고 선물 받은 것이 ‘쫑’이라는 사냥개였다. 친엄마를 여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버지에게 강아지는 외로움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 아버지가 원체 동물을 귀히 여기고 아끼는 성품이기도 하셨고, 쫑이 또한 아버지를 아주 잘 따랐다. 몇 년이 지나 쫑이는 어느덧 사냥을 나갈 정도로 늠름하게 자랐다.


처음에는 간단히 꿩이나 토끼를 잡아 오다가 나중에는 사냥 실력이 발전해서 너구리, 노루를 많이 잡았다. 아버지가 전문 훈련사가 아님에도 쫑이는 자기가 잡아 온 사냥감을 몰래 먹는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와 같이 산을 오르다가도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가서는 한참이 지난 후 입에 사냥한 것을 물고 돌아왔다. 그런 녀석을 아버지는 형제처럼 아끼셨다. 말 못 하는 동물이지만 사람에게 이야기하듯이 말하고 잘한 것이 있으면 칭찬과 더불어 쓰다듬어주고 사랑해주셨다. 쫑이와 사냥하러 가신 이야기를 하실 때면 아버진 마치 그 시절의 소년으로 돌아간 듯 신이 나셨다. 쫑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도 녀석이 내 곁에 있는 양 친근하게 느껴졌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집안은 몰락하고 그 많던 전답은 다 남에게 넘어가 얼마 남지도 않게 되었다. 녀석은 너구리를 하루에도 몇 마리씩 잡아 올 정도로 사냥에 아주 뛰어났다. 아버지는 포획물을 팔아서 양식과 바꾸기도 하고, 친구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아버지가 소년기와 청년기를 거치는 시기에 쫑이는 아버지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가세가 기울대로 기운 나머지 할아버지께서 쫑이를 멀리에 사는 어느 부잣집에 약간의 돈을 받고 팔아버렸다. 사냥개를 팔아야 할 정도로 집안이 망한 것이다. 둘은 눈물을 머금고 생이별하게 되었다.


눈치가 빠른 쫑이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새 주인을 따라서 결국 떠났다. 그 후 아버지는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방황하셨다. 일찍 엄마를 여의고 친구처럼 의지한 녀석과의 시간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런 상실감과 그리움으로 실의에 빠져 보내던 어느 날, 녀석이 갑자기 찾아왔다. 그것도 한 달이나 지난 후에 백 리도 훨씬 넘는 먼 거리를 달려 용케 찾아온 것이다. 꿈을 꾼 듯 쫑이와 다시 상봉한 아버지는 뛸 듯이 기뻐서 녀석을 얼싸안고 뒹굴었다. 아버지는 혹시 주인이 찾으러 와도 숨기고 돌려주지 않으려 했다. 이틀 뒤 새 주인이 찾으러 왔고, 떠나지 않으려는 쫑이와 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새 주인은 돈도 돌려받지 않고 그냥 돌아갔다. 아버지와 쫑이의 끈끈한 모습에 마음이 아파서 도저히 데려가지 못하겠노라는 말과 함께.


쫑이는 다시 아버지의 친구이자 충직한 사냥꾼이 되었고, 녀석이 잡아 온 산짐승들로 다 망해서 끼니까지 걱정해야 하는 집에 곡식 톨이나마 구경하게 되었다. 달리기를 잘하는 아버지보다 훨씬 빠른 녀석, 마을 산 굽이굽이 누비지 않은 산이 없었다. 개 특유의 발달한 후각과 청각으로 아주 멀리에서도 사냥감을 포착했고 번개같이 사라져서는 한참 후에 꼭 포획물을 안겨주었다.


동란 후 너도나도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도 먹고살기 어려운데 개한테 먹을 것을 풍족히 주지 못했을 것은 불 보듯 훤했다. 쫑이도 아버지도 항상 배가 고팠다. 그런데도 녀석은 아무리 작은 사냥감이라도 혼자서 몰래 먹지 않고 모두 주인인 아버지께로 물고 왔다. 그 모습이 너무나 대견해서 꿩 같은 것을 먹으라고 주면 냉큼 먹지 않고 머뭇거리다가 먹었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너무 대견한 녀석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그려보며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 쫑이는 늙어갔다. 이빨도 빠지고 움직임도 예전만 못하고, 사냥은 엄두도 못 내고, 제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들 만큼 약해졌다. 아픈 쫑이를 보며 아버지의 가슴도 무너져내렸다. 매일 녀석에게 말을 걸어주고 털을 빗겨주며 녀석이 훌훌 털고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아버지의 관심과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쫑이는 점점 음식을 멀리했다. 당시 귀한 멸치까지 섞어서 주었지만 전혀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기를 여러 날, 결국 쫑이는 아버지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아버지는 집에서 바라다보이는 양지바른 산에 녀석을 묻어주었다. 아버지 곁을 완전히 떠났다는 말을 듣고 나는 일찍 엄마를 여의고 쫑이에 의지했던 아버지도, 쫑이도 불쌍해서 한참을 엉엉 울었다. 강인하게만 보였던 아버지의 눈동자에도 슬며시 물안개가 끼었다.


우리 집에는 항상 키우는 개가 한 마리 있었다. 털이 흰색일 때도 있었고 누렁이도 있었다. 그리고 재산목록 1호인 소가 한 마리 있었다. 아버지의 일과는 소죽 끓이는 것을 시작으로 눈 뜨고 해 질 때까지 소와 개를 보살피셨다. 그 모습이 그냥 가축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하듯 정성을 다하셨다. 동물에게 사람처럼 자격을 부여하는 아버지의 넉넉한 마음. 사람한테나 잘하지, 짐승을 그렇게 아끼느냐는 엄마의 잔소리를 시도 때도 없이 들을 만큼 지극하셨다. 그래서인지 소도 개도 아버지를 잘 따랐다. 다른 집처럼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개를 잡아먹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어디에서 멸치 대가리나 북어 대가리라도 있으면 꼭 챙겨오셔서 개밥에 섞어주셨다. 물론 나도 도꾸나 메리와 놀아주고 들판을 함께 달리기도 했다.


동물은 사람처럼 말을 하지 못한다. 그들만이 소통하는 기호체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말 못 하는 그들에게 아버지는 털을 빗겨주고,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온기를 전하고 사람에게 얘기하듯 말을 거셨다. 나는 말 못 하는 동물을 가족과 동일시하는 아버지가 진정한 휴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만약 사후세계가 있다면 지금도 여전히 동물들과 함께 생활하실 아버지를 가만가만 그려본다. 쫑이와도 꼭 재회했기를.


P.S 아버지의 경험담인데 전달하듯이 하기가 문장이 자연스럽지 않아 직접 경험처럼 서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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