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은 몸이 먼저 마중 나온다. 언젠가부터 왼쪽 어깨가 불편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회전 폭이 좁아진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어깨에서는 뻐걱뻐걱 소리까지 난다. 괜찮겠지 여기다 어느 순간 딱 하고 맞히는 충격에 소스라쳐 어깨를 감싼다. 통증은 자지러질 듯 팔딱거린다. 버티고 버티다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으니 오십견 초기라는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어깨의 통증과 어깨관절의 운동범위 제한을 특징으로 하는 질환인데 오십 대 이후 발병이 많아 그렇게 명명되었다고 한다. 나이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깔축없는 상황에 피식 쓴웃음이 배어 나온다. 어깨에 손을 대 관절을 주무르다 보니 안개처럼 희미하게 아버지가 떠오른다.
여섯 살 추운 겨울이었다. 저녁 식사 후 가족끼리 둘러앉아 이야기하고 놀던 중 아버지와 장난을 치던 나의 오른쪽 어깨가 갑자기 꼼짝할 수 없게 아팠다. 다음날이 되어도 여전히 움직일 수 없게 어깨가 아팠고 나는 초가집 처마 밑에 달린 고드름처럼 굳어져 종일을 보냈다. 겨울바람은 아픈 내 어깨만큼이나 매섭게 나를 훑고 지나갔다. 나는 우리 집 누렁이와 털 색깔이 같은 똥색 털 숭숭한 외투를 입고 마당을 서성거리기만 했다.
오후가 되어도 팔을 움직이지 못하고 아파하자 아버지가 업히라고 하셨다. 나를 업은 아버지는 바람처럼 내처 달리셨다. 우리 집에서 면 소재지까지는 5km 거리에 가파른 재도 있었다. 신작로가 없어서 버스도 다니지 않던 시절이라 재를 넘는 길은 그야말로 산을 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용바우 재는 찻길을 만드느라 폭발시켜 깨진 바윗덩이가 제멋대로 나뒹굴고 있었다. 그 울퉁불퉁한 잿빛 바윗덩이가 도깨비처럼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아버지 등에 업혔지만 추운 겨울이라 해는 금방 지고 어둠발이 내리자 무서움이 밀려왔다.
무섭다는 내 말에 아버지는 등에 기대어 자라고 하셨다. 찬바람이 스치는 중에도 아버지의 등에 기대니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따뜻함은 나른함을 가져왔고 잠시 포근함을 느끼는 중에 나는 곧 잠이 들었다. 일어나라는 소리에 눈을 떠 보니 난생 처음 보는 전등불이 눈을 부라리며 희번덕거렸다. 어른 주먹만 한 백열등이 까만 어둠 속에서 하얗게 너울너울 타올랐다. 전등 빛의 화려함에 눈이 부셔 나는 몇 번이나 눈을 비벼댔다. 태어나면서부터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던 내게는 작은 면 소재지가 서울이나 되는 것처럼 휘황찬란해 보였다. 신세계를 본 것이다.
박 의원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진료 시간이 끝났지만, 의사 선생님은 흔쾌히 빠진 내 어깨를 감쪽같이 맞춰주셨다. 내 어깨와 팔을 이리저리 잡아 돌리고 몇 번 만지작거리니 희한하게 통증이 없고 언제 다쳤냐 싶게 멀쩡해졌다. 병원비를 내려는 아버지께 안면이 있는 의원은 그만두라며 손사래를 치셨다. 늦었으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는 의원님 말씀에 아버지는 그 당시 고급 담배에 속하는 ‘청자’ 한 갑으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내게 풀빵도 사주셨다. 밀가루를 묽게 개어 무쇠 빵틀에 팥소를 넣어서 구운 풀빵은 무척이나 달콤하고 따끈했다. 마치 나를 업은 아버지의 등처럼.
돌아오는 길은 완전히 어둠에 잠겼다. 칠흑 같은 어두움 가운데 들판에는 부녀의 옅은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달빛도 별빛도 비치지 않은 깜깜한 밤에 어둠이 무서운 어린 소녀는 아버지 등을 자꾸 파고들었다. 난 또다시 잠이 들었고 눈을 떠보니 어느새 우리 집 마당이었다. 마당에 누렁이가 꼬리를 치며 우리를 맴돌고 호롱불 밝혀진 희미한 방문을 열고 식구들이 마루에서 마당으로 내려섰다. 멀쩡해진 내 어깨를 보고 식구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아버지와 장난을 치지 말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며 나는 따끈한 아랫목에서 구들장을 베개 삼아 잠이 들었다.
어깨가 빠진 사건은 가끔 우리 가족들의 대화에 주전부리처럼 올랐다. 나야 아프지 않으니 그만이었지만 부모님은 청천벽력같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듯했다. 만약 그대로 어깨를 쓰지 못한다면 영락없는 불구의 몸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조바심은 다급하게 뛰다시피 했던 발자국 소리가 말해줬고, 쿵쾅거리는 아버지의 심장 떨리는 소리는 등에서 업힌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버지의 다급함은 왕복 10km의 거리를 여섯 살짜리 딸을 등에 업고 냅다 뛰게 한 것이다. 어리지만 잠이 들면 몸이 처져서 더 무겁게 느껴지는데 한 번도 내려서 걸으라고 하지 않으셨다. 당신 딸이 추울까 봐 등에 꼭 기대라는 당부만 하셨을 뿐.
어깨가 빠졌던 충격은 흐르는 세월 속에 시나브로 시들해졌다. 그렇지만 오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버지 등의 체취와 따뜻한 감촉은 여전하기만 하다. 만약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신다면 아픈 딸을 위해 흔쾌히 당신의 등을 내어 주지 않으실까. 듬직하고 따뜻한 아버지 등에 업히면 아픈 내 어깨도 저절로 나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