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비계를 굽던 저녁

by 글마루

고기 살 돈 없어

면 소재지 정육점에서 얻어온

횡재나 다름없는 돼지비계

허여멀건 뭉텅이를 구울 때면

어머니는 죄지은 사람처럼

정지문 빗장부터 걸었다.

이웃에서 얻어온 석유풍로에

돼지비계를 뚝뚝 던져 놓으면

금세 프라이팬에 기름이 흥건했고

고소한 내가 집 안팎에 자자했다.

돼지비계로도 식구들은 잔칫집인 듯,

없는 집구석에 웬 고기 냄새일까?

어머니는 누가 볼 새라 허겁지겁

정지문 빗장부터 걸었다.

껍질만 남은 고소하고 느끼한 돼지비계

굽기가 무섭게 앞다투는 젓가락질

돼지비계 몇 점으로 속이 니글거릴 즈음

갑자기 찾아온 낯선 손님에게

배추김치 한 포기 달랑 썰어

밥상을 차리는데

손님에게 돼지비계를 내놓을 수도

고기 냄새를 지울 수도 없어

마냥 미안하기만 했던 어느 겨울밤

미안함과 난처함을 찬으로 곁들인

밥상 받은 손님 돌아가고

영문 모르고 섭섭할까 봐

미안함에 넋두리만 쏟아놓고

집안엔 돼지 냄새만 요란한 데

못내 마음이 쓰이고 미안했던걸

어쩌면 달님은 알았을까?


살코기 한 점 없는

돼지비계를 굽던 저녁은

고순 내가 먼저 고샅에 날아들고

어머니는 죄지은 사람처럼

정지문 빗장부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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