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이야기

1. 친구 딸의 결혼식을 보며

by 글마루

친구의 딸이 결혼식을 올린다고 했다. 그동안 만나는 사람도 없고 결혼 생각도 없다더니 임신까지 했다기에 한편 놀라고 한편 반가웠다. 올해로 벌써 서른셋이 되었으니 더 늦기 전에 좋은 짝을 찾은 것은 축복할 일이다. 거기에다 신랑이 네 살 연하라니 나는 와우― 환호성을 질렀다.


친구는 이미 고인이 된 남편의 잦은 바깥출입으로 속을 적잖이 썩이고 나중에는 암에 걸려 병구완하고 또 몇 년 뒤 전이된 암 때문에 몇 년 생업을 접어두다시피 고생했었다. 그런 연유로 경제적인 안정을 최우선으로 꼽았으나 뭔가 할 말을 미루는 모양새였다.


게다가 이 년 전 남편을 영원히 떠나보내고 홀로 자녀를 출가시키려니 마음이 착잡할 것은 당연지사. 그동안 남편 병원비로 지출이 많았을 것이고 생업에 집중하지 못해 수입 또한 변변찮았을 것이다. 가뜩이나 요즘은 구미공단 경기가 바닥을 쳐 인구가 줄고 빈집이 늘어나는 상황이니 어느 하나 좋지 않은 여건이다.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할 만큼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치러야 할 가장 큰 행사라고 한다. 그것이 단순히 요식행위로 끝난다면야 걱정할 것이 없겠지만 행사에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서민들에게는 결혼식 자체도 큰 부담이다. 요즘은 결혼식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스몰웨딩이나 아예 식을 올리지 않고 바로 살림을 시작하는 부부도 있지만 아직은 주변 사람들에게 결혼에 대한 정당성과 당당함과 다짐과 약속을 보여주며 부부로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선호한다.


어찌 되었든 각자 성장한 남녀가 만나서 사랑하고 평생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축복받을 일이다. 또한 신부는 일평생에서 최고의 주인공이 되고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되는 순간이기에 결혼식이라는 게 그만큼 가치와 상징성이 큰 의식이다.


상주에 사는 친구와 만나 우리는 식장으로 향했다. 혼주인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새신랑을 보니 키가 훤칠하게 인상도 좋았다. 딸을 보내는 엄마의 심정이 그렇겠지만 혼자 예식을 준비하면서 말 못 할 어려움과 고민이 있을 것이라는 게 표정에서 묻어났다. 평소에 발랄하고 싹싹한 모습은 사라지고 근심 어린 표정에 보는 우리도 마음이 짠하다.


하객들이 하나둘 몰려오고 잠시 후 식이 진행되었다. 전부터 봐왔던 신부는 인형같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했다. 시종일관 활짝 핀 신랑 신부와는 달리 신부의 어머니인 친구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위태롭다. 결국 양쪽 어머니들이 인사하는 장면에서도 눈물을 훔치더니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님께 인사하는 장면에서는 오열하다시피 해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하객도 덩달아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


자식에 대한 미안함과 그동안의 힘들었던 지난날이 스치고 혹시나 딸이 고생할까 봐 염려하는 마음이 겹치니 여러 가지 복잡미묘한 감정이 섞여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자식을 보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왜 아니 섭섭할 것인가. 그런 친구가 안쓰럽고 마음 같아서는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었다. 아마 나 역시 아들을 결혼시킨다면 기쁜 중에도 감정이 벅차오를 것이다.


인생의 반 이상을 살아온 우리는 삶이 결혼식 때의 화려함이나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돌아본 내 삶은 억지로 떠밀리듯 종종걸음의 연속이었고 즐겁고 기쁜 날보다 괴롭고 슬픈 날이 더 많았다. 지금도 여전히 먹고 살 걱정을 하고 보장되지 않은 노후에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있다.


또한 내가 의도했던 대로 삶의 방향이 달라질 때는 좌절감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라는 명언 덕분에 나를 놓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 있다. 이제 와 생각하면 삶은 ‘닥치는 대로 그때그때 살아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냥 살아내다 보면 현재의 내가 길 위에 있는 것이다. 삶이라는 마라톤 코스에서 이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것. 기록이 중요한 게 아니라 느리더라도 완주한다면 우리가 태어난 몫을 다하는 것일 터.


마라톤을 하다 보면 다리에 쥐도 나고, 숨이 너무 차 심장이 터질 것 같고, 힘이 빠져 다리를 옮기기가 어렵고, 이 순간이 지옥인 것만 같아 그만 뛰고 싶어진다. 뛰기가 어려우면 걸어도 좋다. 그러다 기운이 올라오면 다시 뛰어도 보고 그러다 보면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결승점에 도달하는 건 삶에 최선을 다한 후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하객들이 보는 앞에서 ‘결혼 성혼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두 사람은 공식적인 부부가 되었다. 살면서 갈등이 전혀 없을 수는 없으니 위기가 있을 때마다 그들이 말한 대로 ‘갈등이 있을 때는 대화로 풀어가겠습니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지혜롭게 헤쳐가기를 빌어본다. 행복한 일이야 그대로 받으면 될 것이지만 갈등과 위기를 잘 헤쳐갈 수 있는 것이 결혼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