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아침 공기가 제법 시원했다. 가을이 왔다는 징조다. 하늘이 높고, 구름이 한가로우며, 바람마저 상쾌한 가을의 길목에 이르면 내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온다. 특별히 좋은 소식이나, 변화하는 것이 없지만 가을은 해사한 햇볕과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마저도 마음에 안식을 가져다준다.
실로 오랜만에 절기가 주는 행복과 마주한다. 휴일 아침에 일어나니 알맞을 만큼의 바람이 불어주고 친구처럼 다정하게 내 몸을 훑는다. 이 순간의 행복과 평화로움 앞에 내 감정은 벅차오른다. 가을이 내 앞으로 다가오자 마음에도 한결 여유가 생긴다.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믹스커피 한잔으로 잠시의 느긋한 시간을 갖는다. 밖을 바라보니 모든 풍경과 자연의 소리가 내 온몸의 감각을 일깨운다.
독서하기 딱 좋은 날씨다. 대충 집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느긋하게 책상에 앉아 책을 펴든다. 오랜만에 티브이 등 매체와 거리를 두고 오롯이 내가 주체가 되는 하루를 보내고자 한다. 배송된 월간잡지를 읽고 노트북을 연다. 가을이 내게 선사하는 이 순간을 어떻게든 글로 남기고자 하는 욕구에서다. 바람은 여전히 알맞을 만큼의 세기와 온도와 간격으로 불어준다. 바람도 계절에 대한 감각이 있는 걸까. 생각건대 몇 년 전 이 무렵에도 나는 가을에 매료되고 도취했었다.
몇 년 전 주택에 이사 와서 처음 맞는 가을이었다. 거실 창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내 코끝을 스치기에 소파에 누워 그 한가로움을 만끽했다. 파란 하늘에 뭉게뭉게 떠 있는 구름은 어릴 때와 다름없다. 잠시 누워있는 그 시간이 얼마나 안정적이고 평화롭던지, 나는 그때 그 순간이 영원하다면 어떨까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가을이 안겨주는 감흥은 남달랐다. 우리가 ‘천국’이라는 이상향은 바로 지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창을 통해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밖을 바라본다. 텃밭 가득 녹색의 채소들이 빛을 발한다. 저들도 산들거리는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낀다. 그 모습은 흥겨움에 추는 어깨춤 같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흔들림. 저들도 가을이 온 걸 아는 것일까. 지루하고 기나긴 더위를 이겨낸 자의 여유로움이 몸짓에서 묻어난다. 몇 해 전 심은 배롱나무에서 피어난 꽃은 이제 가지 끝에 매달려 마지막을 불사르고 있다.
화단에 봉긋봉긋 솟아있는 국화 잎이 제 계절을 알리는 듯 굳세고 늠름하다. 얼마 안 있어 가을의 상징 같은 꽃답게 숭고하게 피어날 것이다. 희고 노란빛, 자그마하고 큰 송이까지 국화가 활짝 핀 정원은 보석처럼 빛을 발할 것이다. 거기에 더해 꿀벌들이 향기로운 단맛을 얻기 위해 종일을 국화 주위에서 맴돌 것이다. 이렇듯 가을은 생각만 해도 풍요와 행복이 넘치는 잔칫상이다.
어디 꽃뿐일까. 이사 온 해, 거친 땅을 대충 갈아엎어 느지막이 뿌려둔 무와 총각무는 예상외의 수확을 안겨줬다. 보얗고 탐스러우며 싱싱한 총각무를 뽑아 다듬어 김치통 가득 총각김치를 담아두고 흐뭇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토록 바라마지않았던 텃밭 농사는 땅이 내어주는 너른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단 몇천 원의 씨앗으로 수십, 수백 배의 수확물을 안겨주는 것이 꼭 마술을 부리는 것도 같고 도깨비방망이처럼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게 줬다.
마을 뒤로 이어지는 길옆에는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송이를 까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떨어진 밤송이 안에 동글동글 윤이 나던 알토란 같은 밤톨. 먹기보다 줍는 재미를 안겨주는 밤 줍기.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삼아 나선 길은 내게 소박하면서도 잔잔한 행복을 안겨줬다. 지금은 다 자란 성견이 되었지만, 당시 삼 개월밖에 되지 않던 강아지 역시 새로운 세상을 모험하는 재미에 들떠 있었다. 킁킁거리며 뛰어다니다가 두 발로 땅을 부지런히 파기도 하고 길 곳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냄새를 맡으며 호기심에 들떠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우리는 그 가을 호기심 가득한 추억 쌓기에 바빴다.
해가 바뀌면서 호기심도 좀 줄어들고 전원생활이 가져다주는 건 느긋함과 풍요로움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평화롭고 행복한 가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먼저 뽑아도 뽑아도 사라지지 않는 좀비 같은 풀과 싸워야 하고, 수많은 곤충과 동고동락해야 한다. 또 이젠 익숙해진 시골 풍경에 호기심이 많이 줄어들어 단조로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계절마다 다른 꽃들이 피었다 지고, 여러 과일을 종류별로 맛볼 수 있는 혜택을 누리노라면 갑부 부럽지 않다.
따끈한 차를 끓여 고요히 책상 앞에 앉아 귀를 기울여보면 자연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소리와 마주하고는 한다. 뒷산에서 살고 있는 새소리, 매미 소리, 귀뚜라미, 찌르레기 소리 등 그 모든 소리가 제각각 어우러져서 훌륭한 화음을 이룬다. 그 소리는 고요한 마음일 때 들을 수 있는데 고요할수록 세상을 향한 귀가 열리는 것이다. 어쩌면 이렇듯 자연의 여러 생물이 만들어내는 교향곡 속에 있는 내가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다.
어젯밤에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 보았던 반딧불이 한 마리를 보았다. 처음 보는 순간 반딧불이라는 걸 직감했지만, 파란빛을 뿜으며 잠시 반짝이다 곧 사라지기에 환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요즘 반딧불이 구경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마리가 발하는 빛의 세기에 경탄하며 혼자 보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다가 또 한참을 지나자 그 반딧불이가 또다시 눈앞에서 날아다녔다. 저토록 파란빛을 뿜어내는 광경에 잡아볼까 하다가 금방 포기했다. 그 아까운 녀석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될까 봐.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니 그 옛날 문학소녀로 다시 돌아간 것 같다. 내 마음도 좀 더 순해지고 순수해지는 기분이다. 중간중간 집안일을 하다가 고요히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이 순간은 어떤 대상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가치 있다. 이 가을이 마치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한 편안함. 이 삶이 바로 물아일체 物我一體, 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시간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