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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행복이란

행복이란

3. 서프라이즈

by 글마루

그토록 염원해 하던 중등 교원자격증을 쉰 넘어 취득했지만 기간제교사 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우여곡절 끝에 운 좋게 올해부터 초등학교에서 기간제교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전교생이 많다 보니 행정업무 또한 많았고 초등학교 1, 2학년을 맡아 가르치느라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고등학생을 가르치다가 초등학생 저학년을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많았다. 그렇지만 부족한 경력에 많은 나이에 그것마저 하늘이 준 기회라 여기며 최선을 다해 근무하고 있었다.


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 같은지라 아무리 하고 싶었던 교사의 길이지만 가끔 의문이 들 때면 기회가 생긴 것만도 감사하자, 일을 배울 기회라고 여기자며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를 도닥였다. 아이들과도 점점 낯이 익자 내 교실에 찾아오는 아이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샘물처럼 말갛고 햇살처럼 환한 표정을 보기만 해도 흐뭇해 힘듦이 눈 녹듯 사라졌다.


특별히 잘해준 것도 없고 가끔 웃어준 기억밖에 없는데 어느 날부터 교실 칠판에는 나에 대한 응원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서프라이즈’란 커다란 제목 아래에 알록달록 하트와 꽃 그림으로 예쁘게 장식하고 ‘선생님 사랑해요.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등의 글과 수많은 하트를 보며 이보다 기쁘고 행복한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이들은 그 후부터 아침, 점심으로 찾아와서는 내가 있거나 없거나 칠판에 메모를 잔뜩 써놓고 가는 것이다. 수업 때문에 아이들의 소중한 글귀를 지우기 아까워 사진을 찍어놓고 찾아볼 때면 하루의 고단함이 달콤하게 녹아들었다.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내가 점심 먹으러 가서 없는 틈을 타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응원하는 글귀를 잔뜩 적어놓고 갔다. 그 모습이 너무 대견하고 고마워 가끔 간단한 과자를 주기도 했지만 뭘 준다고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다가 그 모습을 본 다른 아이들까지 찾아오고 점심시간만 되면 1학년 아이들까지 합세해 내게 편지 쓰기가 여념이 없는 것이다. 또 자신들이 쓴 글을 2학년 형이 지웠다며 속상해하기도 하고 복도에서 만나면 졸졸 따라오기도 하고, 손을 잡는 등 바쁜 중에도 기쁨이 늘 따라다녔다.


말투가 아주 상냥하지도, 얼굴이 아름답지도 않고, 나이도 많은 나를 아이들이 좋아해 주니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자부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나를 이토록 좋다고 해줄 것인가. 살면서 지금처럼 누군가로부터 관심받고 사랑받는 적이 있었는가 싶어 천사 같은 아이들이 내 자식인 양 사랑스럽고 소중하다. 아이들과 주고받는 눈빛과 미소는 비록 형체로 남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순간은 어떤 것으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진 것이다. 정교사가 아니라 계약기간이 끝나면 아이들과 이별할 순간이 올지 모르지만 남은 시간까지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눈 맞추고 많이 웃어주는 따뜻한 교사가 되고 싶다.


아이들의 마음을 담은 글자 하나하나는 나를 매일매일 행복하게 해주는 보석이다.


―2024년의 어느 날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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