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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들다

by 글마루

마을 뒷길을 산책하던 중이었다. 경사진 언덕에 초록을 배경으로 붉은 별이 반짝인다. 내 유년 시절을 강렬하게 뒤흔든 열매라니 반가움에 가슴이 설렌다. 금방이라도 손 닿으면 열매에서 새콤한 과즙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아 한쪽 눈을 찡그린다. 탐스러운 열매를 맛본 듯 자극받은 침샘에서 흥건히 침이 고인다. 첫사랑처럼 아련한 그리움으로 물든 수채화 한 점이 유년의 창고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선홍빛 열매가 익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양은 주전자를 들고 산딸기 우거진 숲으로 나를 데려갔다. 뒷골 농로와 산이 맞닿은 곳에 산딸기 덤불이 우거졌는데 아버지는 그중 잘 여문 열매를 한 움큼 따서는 내게 전해줬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오는 산딸기는 유리처럼 투명하게 빛났다. 먹기도 아까울 만큼 신비한 빛깔에 홀려 알갱이들을 보다가 입으로 톡 털어 넣으면 새콤달콤 오묘한 맛이 입 안에 퍼졌다.


나도 붉은 열매를 따려니 줄기는 온통 가시로 뒤덮였고 열매의 받침대 또한 가슬가슬한 가시로 뒤덮여 산딸기 따는 게 쉽지 않았다. 가시에 찔리니 가만히 있으라고 한 아버지는 가시덤불을 헤치고 주전자의 반 너머를 채워 내게 내밀었다. 나는 손 대면 바스러질 것 같은 알갱이를 한 움큼 집어서는 입으로 가져가 우물거리기 바빴고 그런 만큼 내 행복도 타는 노을처럼 물들었다.


어디 산딸기뿐인가. 군것질거리를 사 먹을 돈이 없으니 들녘 곳곳에 널려있는 나무 열매가 우리의 간식이었다. 산딸기와 때를 비슷하게 해 무르익기 시작하는 오디는 당시 누에를 치는 농가가 많았기에 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밭에 심어진 뽕나무엔 짙은 보랏빛의 오디가 지천이었다. 나무에 따라 열매의 크기나 당도의 차이가 나긴 했으나 가시로 뒤덮인 산딸기에 비해 오디는 따기가 훨씬 쉬웠다.


아이들은 각자 집에서 양은 주전자를 들고 오디 따기에 여념이 없었고 오디를 따먹다 보면 손은 물론이고 입 언저리는 시커멓게 먹칠을 한 듯하고 혀는 배어든 오디 물로 인해 새카맣게 물들었다. 우리는 서로 혀를 내밀며 깔깔거렸고 달콤한 오디를 먹으며 보랏빛 향기도 함께 먹었다.


철모르는 유년 시절은 아버지의 자상함 속에 알차게 영글어갔다. 햇살 받아 반짝이는 이슬처럼 내 꿈도 빛나리라 믿었다. 우리 집이 지독히 가난했음에도 나는 가난한 줄 몰랐다. 적어도 아버진 우리에게 꽁보리밥을 먹이지 않았다. 땅마지기가 있는 집에도 주식이 보리밥이었던데 비해 우리 집에서 꽁보리밥은 아버지 차지였다. 아버지는 자식인 우리 입을 먼저 챙겼다.


세상의 주인공이 나라고 착각하며 우쭐거리던 내가 어느 순간 철이 들고는 내게는 더 이상 장밋빛 미래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것도 너무 일찍 세상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내 꿈도 잊고 집안 걱정에 여념이 없었던 것 같다. 바로 우리 집이 마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하다는 현실을 직시하고부터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우리 집 농사일과 집안일에 매달렸다.


산딸기 물, 오디 물이 나를 즐겁고 설레게 해줬다면 감물은 지금까지도 내게 어두운 그림자처럼 혹은 통증처럼 다가온다. 남의 집 감을 수확해 껍질을 벗겨 곶감을 만들어 팔게 되었다. 추수가 막바지에 이르고 찬 서리가 내릴 무렵이면 노랗게 잘 익은 감을 따와 저녁이면 감을 깎아야 했다.


엄마는 오랜 감 깎기로 칼끝이 감꼭지에 닿기만 하면 꼭지에 붙은 잎을 도려내고 감이 뱅글뱅글 돌면 매끈하고 말쑥한 것이 완성되었다. 그 속도는 매우 빨라 우리가 따라 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빨리 손을 움직여도 하루에 사람이 깎을 수 있는 양은 한계가 있다.


나도 장갑을 끼고 감 깎기에 도전했지만 감을 깎는 것은 인고의 시간이었다. 겨울이 시작되는 저녁은 길기만 했다. 외풍으로 선득선득한 방안에서 밤늦도록 꼼짝 못 하고 앉아서 하는 감 깎는 작업. 칼등에 닿는 손이 저리고, 등허리가 뻣뻣해지는 통증, 무엇보다 감 과육에서 나오는 끈적이며 미끈한 액체는 언 손을 더 시리게 했으며 나중에는 손이며 손톱까지 새카맣게 감물이 들었다.


지우려고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 그것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곁에서 물러서지 않는 가난의 그림자였다. 깎아도 깎아도 줄지 않는 감은 시시포스가 산꼭대기까지 굴리면 다시 아래로 떨어져 끝없이 굴려야 하는 바위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지루한 감 깎기만큼 가난은 찰거머리처럼 우리 가족에게 들러붙었다. 아버지는 시시포스처럼 바윗덩어리만 굴리다 생을 달리하게 되었다. 독하고 고약한 암세포가 몸 곳곳에 퍼졌고 가뜩이나 까만 아버지의 얼굴은 더욱더 흙빛이 되었다.


항암치료 하러 병원에 가는 버스 안에서도 당신의 힘듦보다 차멀미로 힘들어하는 나를 더 걱정했던 아버지. 숨이 꺼져가는 마지막까지 당신의 고통보다 가족을 생각했던 아버지는 내 가슴에 추억의 물만 들여놓고 조용히 임종을 맞으셨다.


‘물들다’를 검색해 보면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빛이 스미거나 옮아서 색깔이 변하는 것과 사람이 환경이나 사상에 영향을 받아 그것과 닮아간다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어쨌거나 대상이 또 다른 대상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은 비슷한 의미로 다가온다. 나는 누군가에게 물이 들며, 누군가에게 물이 들게 했을까.


그러고 보니 내 삶에서 나를 물들게 한 사람은 바로 아버지이다. 유년기를 아버지가 선홍빛 산딸기처럼 말갛게 물들였다면 지금은 애달프기만 한 그리움의 대상이다. 은하수처럼 저 멀리, 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아버지. 내게 짙은 그림자보다 밝은 볕을 쬐도록 해준 사람, 내 삶에서 아버지가 있었기에 지금껏 나의 길을 당당히 걸어오지 않았나 싶다.


떫은 감물에서 나오는 끈적끈적한 물질은 여러 과정을 거쳐 하얀 천에 입히면 아름다운 천연옷감으로 탄생이 된다. 떫기만 한 것 같은 삶 역시 고난의 과정을 거친 후 더욱 무르익는다. 잿빛의 인생만 살다 간 아버지인 것 같지만, 자식인 우리에게는 사랑과 추억의 물이 시나브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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