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살구꽃 흩날리던 날

by 글마루

아재가 죽었다. 간경화가 간암이 되어서 피를 토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것도 마흔 초반에 총각으로 이승을 하직했다. 내가 중학생 때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그 소식을 들었다. 어른들이 하나같이 안 되었다고 혀를 끌끌 찼다. 총각이 장가도 못 들고 죽었기에 더 그렇단다.


‘죽는데 총각이나 결혼한 사람이나 다를 게 뭐람?’

얼굴이 하얗던 아재가 불현듯 안쓰러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편하기도 했다. 그 아재가 날 괴롭힌 것도 아니었는데 사춘기가 되면서 주변에 남자 어른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재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치면 먼저 내게 인사했다.

“학교 갔다 오냐?”

“……네.”

나는 마지못해 겨우 대답하고는 했다. 어릴 때는 제법 “아재, 아재”하고 따르던 것이 언제인가부터 본 척 만척했다. 이유도 없이 아재는 내게 무시당했다. 단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아재는 어릴 때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아재의 엄마가 일찍 청상이 되어서 개가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네 살 된 아재를 두고 엄마는 멀리 떠났다. 아재의 아버지는 남의 싸움판을 뜯어말리다가 음낭을 걷어차여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떴다고 한다. 그 후 아재는 구터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엄마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어른이 된 아재는 늘 술을 끼고 살았다.

“형님, 계시우? 술 한잔해요.”

“이 사람아! 술 마시는 거는 괜찮은데 몸도 생각하면서 마셔야지…….”

술이 고픈 건지, 사람이 고픈 건지 아재는 소주를 두어 병씩 들고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진 그런 아재를 친동생처럼 끔찍이 생각했다. 알코올 중독자처럼 술을 거르지 않는 아재를 나무라면서도 언제나 충고와 더불어 아재의 외로움에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자네 장가는 언제 들 텐가?”

“저한테 누가 시집을 오겠어요?”

“아, 이 사람아 그래도 선도 보고 해야지. 평생 혼자 살 텐가?”

언제나 도돌이표로 끝나는 대화였다.


아재 집에 갑자기 작은 아재가 왔다. 아재의 동생인데 엄마는 같은데 아버지가 다르다나. 아재 엄마가 개가해서 낳은 아들이랬다. 그런데 개가한 아재의 엄마 남편이 또 죽었댔다. 개가한 지 이십여 년 만에 아재의 엄마는 할머니가 되어서 돌아왔다. 시아버지와 버리고 간 아들이 있는 오막살이로, 비취색 옥비녀를 곱게 쪽진 채로였다. 갸름하고 고왔던 얼굴은 주름이 지고 머리에는 하얗게 서리가 앉았다. 아재의 엄마는 개가해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다고 한다. 아들도 잘생겼고, 딸도 예쁘다고 동네 사람들이 입을 모았다.


그런데 자신을 어릴 때 버리고 갔다는 원망 때문인지 아재는 술에 취하면 엄마에게 대들었고, 결국 아재 엄마는 딸이 사는 도시로 또다시 떠났다. 작은 아재랑은 제법 사이가 좋았다. 이부형제지만 친형처럼 동생을 살뜰히 챙겼다. 작은 아재는 세계 챔피언이 되겠다고 했다. 다부지고 날렵한 몸으로 모래주머니를 넣은 샌드백에 연신 펀치를 날렸다. 내 눈에 그런 아재의 모습은 이미 세계 챔피언이었다.


나는 아재 집에 아무도 없어도 우리 집처럼 드나들었다. 집 뒤에 조그마한 웅덩이가 있었다. 폭이 50~60cm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나 거기에서 물이 솟아났다. 내게는 그 웅덩이가 호수만큼이나 커 보였다. 난 웅덩이 가에 쪼그리고 앉아 그 속을 한나절씩 쳐다보기도 했다. 아주 미약하게 물길이 올라오는 것이 여간 신기하지 않았다.


그 좁은 세계에도 생물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물풀과 올챙이와 물방개가 공존하는 세상. 변변한 소꿉 장난감도 없던 때라 웅덩이는 나의 놀이터이자 아지트였다. 그 웅덩이에서 놀기도 하고 작은 아재의 멋진 레프트 라이트 훅을 훔쳐보기도 했다. 당시는 권투가 인기가 많은 스포츠여서인지 샌드백을 맨주먹으로 두들기는 아재가 가장 멋져 보였다. 동생이 권투를 하겠다고 하니까 아재는 없는 살림에 글러브까지 장만해주었다.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향해서 펀치를 날리는 작은 아재는 어린 나에게는 스타 중의 스타였다.


어느 날인가도 아침을 먹자마자 아재 집으로 향했다. 혼자서 물이 솟는 웅덩이를 보고 놀았다. 그러다가 호기심으로 고무신 신은 발 한 짝을 올려놓았다. 한참 그러다가 발을 떼려니까 고무신 바닥에 거머리가 한 마리 들러붙어 있었다. 그 크지도 않은 거머리 때문에 신발을 벗지도, 발을 땅에 대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물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고무신을 웅덩이 위에 벗어두고 올 수도 없었고, 거머리가 붙은 채로 신을 수도 없었다. 진퇴양난이었다.


결국, 난 울음을 터뜨렸고 작은 아재는 울고 있는 내게 왜 그러냐고 했다. 난 대답 대신 거머리가 붙어 있는 고무신을 가리켰다. 아재는 아무렇지 않게 거머리를 떼어주었다. 그 뒤로 난 웅덩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거머리에 아주 기겁한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작은 아재도 집을 떠났다. 시골에 있으면 권투를 배울 수 없어서 도회지로 나간다고 했다. 도시로 나간 작은 아재는 다시는 시골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재 집 마당에는 살구나무 고목이 한그루 있었다. 고목은 가파르지 않고 비스듬해서 우리가 올라가서 놀기 좋았다. 봄이 되어서 살구꽃이 피기 시작하면 살구나무를 오르내리면서 놀았다. 당시는 대문이 따로 없었기에 네 집 내 집 경계가 없었다. 살구꽃이 떨어지고 살구가 무르익기 시작하면 그 살구 또한 우리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음 좋은 아재는 살구를 따 주기도 하고 마음껏 따다 먹으라고 했다. 서너 살밖에 되지 않은 나는 살구도 우리 것인 줄 알았다.


구터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는 살구꽃이 필 무렵이었다. 아재도 살구꽃이 피었다가 질 무렵 마흔 해를 살다가 갔다. 몇 년 후, 살구나무는 베어 없어지고 구기자나무도 자취를 감췄다. 뒤뜰에 있던 웅덩이도 물이 말랐다. 아재가 살던 집은 온기 사라진 폐가가 되었다. 지금 그 초가집은 사라지고 집터는 밭으로 변해있다. 아버지 산소 가는 길목에 집터가 있다. 거길 지날 때면 폐병 환자처럼 얼굴이 하얗고 안색이 창백한 아재 모습이 떠오른다. 너무 고와서 시집을 두 번 가고 다시 돌아와야 했던 아재의 엄마. 권투선수로 성공하진 못했지만 패기 넘쳤던 작은 아재. 라면 한 가닥이라도 맛보게 해주셨던 할아버지.


갑자기 바람이 몰아쳤다. 살구나무의 꽃잎이 후두둑 떨어졌다. 마당에 떨어진 꽃잎을 흙바람이 휩쓸었다. 그 바람은 아재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함께 뭉뚱그리더니 뒷골 어느 양지바른 언덕에 데려다 놓았다.


※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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