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내를 털어놓은 시간
직장동료이기도 한 그녀가 왠지 편안했다. 조용하면서도 차분하고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겸손한 그녀를 보면서 느낀 첫인상은 '인내'였다. 그녀는 최근에 무기계약직인 교육공무직으로 발령받았다.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은 아무리 연차가 높은 베테랑이어도 긴장하고 허둥지둥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학교 근무 경력이 있는 그녀지만 처음 맡는 업무임에도 그녀는 허둥거리거나 성급하지 않게 늘 차분했다. 마치 질그릇 속의 정화수처럼.
나이는 나보다 몇 살 아래이지만 변함없이 겸손하고 지나치게 소심해 보이는 그녀가 안쓰러울 때도 있었다. 학교도 사람 사는 데니 너무 긴장하거나 주눅 들지 말고 편안하게 근무하시라고 말해도 본인의 성격이라며 겸양하던 그녀에게 나는 왠지 모를 편안함과 친근함을 느꼈다. 쉰이 넘은 나이임에도 순수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인 그녀에게 난 점점 마음이 쏠렸다. 나이가 들면서는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믿지는 않지만 말수가 없는 그녀이기에 말을 옮길 염려도 없을 것 같아 나는 업무의 애로점을 가끔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럴 때면
"정말 힘드시겠어요……."
라고 하며 조용히 들어주기만 했기에 더 신뢰가 갔다. 내가 속내를 먼저 털어놓자 그녀도 나름대로 불편한 점을 이야기했고 그렇지만 둘은 그게 목적이 되지 않게 선을 넘지 않았다. 그 학교에 가면 둘이 함께 점심 먹고 잠시지만 함께 산책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불편함이나 부담이 없고 말 수가 적은 그녀가 편안했다. 함께 아이들을 인솔하고 출장을 나가면서도 늘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 나도 진심으로 그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에게 내가 아는 한 조언을 해줬고 서로 예의를 갖추고 존중했다.
한 달쯤 지나자 그녀가 먼저 저녁식사 제안을 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그녀의 식사 제안이 얼마나 용기를 냈을지를 알기에 나는 무척 고마웠다. 우린 만나서 식사하면서 주로 내가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는 내가 뒤늦게 공부한 것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줬고 어떤 직책은 그 사람의 허울일 뿐 편하게 대하라고 말해줬다. 내가 뒤늦게 글쓰기에 재미를 붙였다고 하자 그녀의 딸이 고등학생 때 글쓰기를 해 용돈을 벌기도 했다고 하기에 무척 멋진 따님을 두셨다고 치켜세워줬다. 글쓰기에 흥미를 느끼고 재능이 있다면 그 재능을 길러주면 좋겠다는 응원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데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변함없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내심 그녀에 대한 믿음의 싹이 더 높이 자랐다. 지난번엔 그녀가 저녁을 샀기에 이번에는 내가 제안했다. 빡빡한 스케줄에 퇴근하고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떻게든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아무 하고나 잘 어울리는 나지만 좀처럼 먼저 만나자는 제안은 하지 않는 타입이다. 그래서 은근히 까다롭기도 하다. 한마디로 사람을 가려 만난다. 아무리 내게 친절해도 가치관이나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면 상대하지 않는 까칠한 습성이 있다.
오늘은 파스타를 먹기로 했다. 왜냐하면 언젠가 급식으로 파스타가 나왔는데 로제파스타였기에 나는 로제보다는 봉골레파스타나 크림파스타를 좋아한다고 했고 다음에 먹자고 말한 기억이 있어서다. 그녀가 파스타를 좋아할 줄 알았건만 그녀는 파스타 대신 밥 종류를 시켰다. 나는 봉골레파스타만 시키면 혹시 양이 부족할까 하여 빠네크림파스타를 시켰다. 빵과 같이 나오는 파스타인지라 왠지 푸짐해 보이기도 했고 실제로도 양이 많다. 여럿이 먹을 때는 각자 먹고 싶은 걸 시켜서 나눠먹곤 했는데 둘이 먹자니 양이 너무 많아 남겼다.
내가 지금껏 험난하게 살아온 과정을 아주 압축하고 또 압축해서 힘들었는데 지금이 가장 좋은 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이 교사인 그녀가 47평 빌라에 산 적이 있다기에 그저 교사 사모님이 편히 산 줄만 알았었다. 타고난 성향일 수도 있으나 왠지 모르게 너무 기가 죽은 것 같은 모습이 때론 안쓰러워 보일 때가 있었는데 그녀는 활짝 웃은 적이 없었다. 그것 역시 성격 탓이려거니 여겼는데 의외의 반전에 나도 좀 놀랐다. 남들에게는 자존심 상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말하지 못했던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것은 바로 남편에게 제대로 된 생활비를 받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늘 1~2만 원만 받아 부식비 사는 정도였다고 하니 그녀가 받았을 이십여 년의 고통과 속상함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불과 몇 년 전부터는 모든 재산을 넘겨받아 관리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세 아이들에게 고기 한 번 마음대로 못 사주고 친정엄마가 주는 채소로 반찬을 만들어서 먹었다고 한다. 사람은 알고 봐야 한다는 말이 딱 맞다. 또한 겉으로는 다 좋아 보이는 타인의 겉모습이 다 좋지만은 않다는 것은 어쩌면 진리일지도 모른다. 나 살아온 과정은 석 달 열흘 말해도 모자랄 지경이고 한 번에 다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나는 선생님과는 결이 다르지만 말로 할 수 없는 삶의 부침이 있었노라고 털어놨다. 내가 하도 힘들어하니 시어머니가
"한 세상 안 태어난 요량 해라."
라는 말을 했었다고 전해주자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했다. 나는 그때는 시어머니가 내게 위로하는 말이라고 여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이 나를 위하는 뜻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말을 다른 이에게 했을 때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똑같은 반응이 나왔었다. 나는 해야 할 사연이 너무 많아 아예 하지 않는다고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또한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친정엄마와의 관계도 간단하게 털어놓았다. 내 이야기에 공감을 하면서도 피붙이를 외면 못하는 내 성격을 아는지라 힘들겠다는 위로의 말을 건네줬다.
그녀는 지금껏 말하지 못했는데 그녀의 큰 딸이 임용고시에 합격해 발령 대기 중이라는 것과 둘째 딸, 셋째 아들이 의대생이라는 걸 털어놨다. 뭐하는지 물어보면 그냥 공부한다고만 얼버무렸는데 말하지 않는 것이 나를 속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지 털어놓기에 나는 멋지고 훌륭한 어머니라고 마음 담아 칭찬해 줬다. 생활비를 못 받으니 수중에 쓸 돈은 없고 손수 아이들 먹을 도시락을 싸서 도서관으로 출근하다시피 하고 피아노 외에는 집에서 모든 공부를 시켰다고 하니 어머니의 역할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녀가 아이들에게 들인 정성은 천만 원짜리 과외보다 가치가 있으며 그동안 누리지 못한 것 이제부터라도 누리시라는 덕담을 건넸다.
가부장적인 경상도 남자와 결혼해 살면서 마음 붙일 곳이라고는 자녀들 양육하는 게 전부였을 그녀가 한편 가엾기도 하고 한편 대견했다. 오직 아이들에게만 관심을 쏟아보니 때로는 강하게 공부로만 내몬 것 같아 아직도 미안함이 남는다는 그녀에게 나는 자녀들도 엄마의 진심을 알아줄 것이라는 말로 가만히 그녀를 지지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녀가 자식 셋을 키우고 살아오면서 얼마나 인내를 했을지 비로소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굳이 많은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원하지 않는 그녀의 성향을 나는 이해하고 존중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외롭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야만 제대로 된 삶이라고 말할 수 없다. 누군가의 시선 때문에 내키지도 않는 관계를 맺는 것보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진실되고 선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게 편하다면 말이다.
자신의 몸을 태워 주변을 밝히면서도 삶을 관조적으로 대하는 그녀의 자세를 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존경하는 마음이 스르르 일어난다. 힘겨움을 말로 다 표현하지 않고 인내하고 속으로 삭이면서도 상대를 대놓고 원망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촛불이 떠올랐다. 스스로 몸을 태워 주변을 밝혀주는 촛불 같은 그녀. 나는 그녀에게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훌륭하세요. 대단하고 멋지세요!"
라는 응원의 마음을 잔잔한 미소 속에 담아 보냈다. 헤어지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요즘 인기 있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생각났다. 나는 그녀가 옆에 있기라도 한 양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 모두 폭싹 속았수다(우리 모두 수고 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