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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일탈성

by DesignBackstage

엄마가 예쁘게 말할 때 씻고 옷 갈아입자!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하자 듣고 있던 남편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도 예쁘게 말하는 거 같진 않은데?" 듣고 있던 아들 둘이 배를 잡고 낄낄 하고 웃었다.

사춘기 첫째아들과 엄마 말은 세 번 이상 이야기 해야 눈만 끔뻑거리며 들은 체를 하는 둘째 아들은 아빠와 마치 한배를 탄 것 같이 단합력이 좋아 보였다.

나만 빼고 모두가 즐거워하고 있었다 3:1로 덤비는 금요일 저녁 풍경 익숙하지만 화가 나는 걸 참지 못하고 나는 아들들이 듣지 못하게 신랑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자꾸 이러면 나 삐뚤어질 거야!"


아들 셋을 키운다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가끔 애처럼 구는 신랑을 볼 때면 재미있고 유쾌학 넘어가는 일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내가 체력이 소강상태일 때는 못내 삐뚤어 지져야겠다는 강한 감정이 훅하고 올라온다.

그때의 상황을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수많은 단어들이 있을 것이다.

삐뚤어진다는 사전적인 의미

: 바르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쏠리다. ‘비뚤어지다’보다 센 느낌을 준다.


삐뚤어지다는 뜻은 단순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쏠리는 현상에서 벗어나 좀 더 센 느낌으로 표현하고 이라 말한다. 나 또한 가볍게 웃어넘기려 하다가 반복되는 놀림에 내 기분이 무척이나 상한다는 표현을 좀 세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 의사를 전달함에 있어 잘 전달되지 않는 다 느낄 때, 우린 반복해서 표현하거나 혹은 좀 더 세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디자인 또한 수많은 디자인 홍수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일단 시선의 멈춤을 주기 위해 고심을 하곤 한다. "기분 좋은 거슬림"이 필요하다.

균형이 잘 맞고 보기 좋은 디자인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신만의 혹은 기업만의 색이 없이 소비자들에게 각인되지 않고 소비자들에 세 선택받지 못해 시장에서 금세 사라진다면 좋은 디자인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시선을 사로잡는 디자인은 과연 무엇일까?

각자의 삶을 반추해 볼 때 강력하고 센 경험들을 한두 개 정도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강력하게 기억에 남는 내 경험은 세대별로 하나씩은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20대에는 처음으로 혼자 떠난 유럽배낭여행, 30대에는 첫아이의 출산, 40대에는 퇴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각기 전혀 다른 강력한 경험이지만 그 안에서 하나로 귀결되는 공통점이 있다. 일상성이 파괴되는 시점인 것이다.


매일 다른 기업에 이력서를 수정해서 보내고, 자기소개연습을 하며 지내던 취준생시절에 문득 지금이 떠나야 할 때라는 생각에 홀연히 처음으로 떠났던 유럽배낭여행이 가장 강력한 기억이다. 막막했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하루하루 예민하게 지내던 내게 혼자 떠나는 유럽여행은 느슨함과 여유로움이라는 내게 전혀 없었던 생활패턴을 알게 해 주었고, 이 넓은 세상에서 나의 걱정거리는 굉장히 하찮았던 것이구나라는 생각으로 삶을 대하는 큰 그릇이 또한 생겼다. 현실과는 전혀 반대되는 생각들로 삶의 파이를 키워준 경험이 강력하게 다가왔던 건 말 그대로 매일 조바심 속 자기소개서를 쓰는 컴퓨터 앞 일상 에서을 매일 여유로움 속 큰 꿈을 그려내는 광장 앞을 거닐며 반복되는 일상의 판이 뒤바뀌는 경험을 했던 것이다.

30대의 아이출산은.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나의 라이프스타일의 판이 바뀌었고, 14년간의 퇴사 후 반복되는 일상에서 삶의 방향축이 한쪽으로 휙 기울어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강력함은 반복되고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이 뒤틀리고 기울어지는 상황이 연출될 때. 모두의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게 된다. 각자 강력한 경험을 떠올려 본다면 그 경험으로 인해 일상성이 깨지는 것들이었다는 것에 많은 부분 동감을 하시리라 믿는다.


더현대서울

디자인분야에서도 일탈성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것들이 있다.

몇 해 전 마포대교를 건널 때마다 지인이 반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저 건물은 언제 완공이 되는 거야?

하지만 그 건물은 이미 완공이 된 상태였다. 아마도 그 지인 눈에는 아직도 미완성으로 보였으리라.

많은 분들이 눈치채셨겠지만 그 건물은 "더 현대 서울" 이였다.

워낙 대규모의 백화점상업시설이라는 말에 과연 여의도에 들어오는 게 적절한가 라는 의견부터, 코로나 시기에 오픈해서 과연 사람들이 방문을 할까? 건물 모서리에 맵핑된 빨간 철근 포장재는 언제 벗겨낼것이가! 사이드 부분의 크레인은 언제 철수되는 거야? 등등 수많은 질문과 의문들은 오가는 많은 이들에 입방아에 올랐다. 나 또한 빨간 띠가 벗겨지지 않고 오픈한 것에 대해 대단히 궁금해했었다. 하지만 건축가의 이름을 듣는 순간 모든 게 이해되었다.

건물의 안과 밖을 뒤집는 ‘인사이드 아웃 건축’을 통해 그는 공조 시스템, 통풍구, 배관, 엘리베이터 등이 외부로 드러난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못 할 일이었다. 더구나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파리 한복판이었다. 그는 배관 등을 외부로 드러낸 내부에 전시장은 물론 공공도서관과 공연장 등을 두어 공간의 활용성을 확장하며 ‘모두를 위한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리고 현재 논란의 중심에 섰던 퐁피두센터는 파리의 가장 빛나는 랜드마크가 됐다.

p.png (좌) 더현대서울 (우) 퐁피두센터


하이테크 양식의 외관으로 호불호가 갈렸던 외관과는 달리 퐁피두센터뿐 아니라 더 현대서울 또한 호평을 받고 있다. 인사이드 건축의 철학처럼 밖에 있는 자연을 안으로 끌어온 모습이 굉장히 획기적이었다. 넓은 매장에 천창과 보이드 공간을 통한 실내 채광, 5층 사운드 & 포레스트의 실제 식목을 식재한 실내 조경을 비롯하여 곳곳의 실내 식목과 워터풀 가든 등 실내 조경 공간으로 상당히 쾌적한 공간을 자랑한다.

한국 단청에서 영감을 얻은 붉은 띠처리와 방패연에서 모티브를 딴 채광이 가능한 천창과 내부 기둥 없이 탁 트인 공간으로 개방감을 극대화하였다.


202104131556044120805-2-188415.jpg 더현대 서울 Top View


여의도의 존재감 있는 63 빌딩과 IFC몰사이에서 랜드마크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건 오픈 전부터 많은 이들에게 의구심을 주던 질문들부터 시작되었다. 여러 갈래의 거슬리는 부분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한번 더 관심 있게 바라보게 된 것이다.

통상적으로 상업시설에서 매장으로 빼곡히 채워진 것이 아닌 여의도 공원의 탁 트이고 쾌척함을 안으로 들여와 기분 좋은 의아함을 준 모든 것들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생각이 아닌 삐뚤어진 시선에서부터 시작된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상대에게 피해를 주거나 위협적이지 않은 삐뚤어짐이 다각도로 인정받고 받아들여질 때 더 높은 디자인적 환경에 놓일 것임은 분명하다.

삐뚤어질 거야!라고 내뱉은 내 말은 결국 난 좀 더 혁신적으로 나아갈 거야!라는 속뜻이 있었다는 걸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줘야겠다. 과연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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