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하는 디자인_숨은 매력의 발견
디자이너들은 도시를 여행할 때에 여행 가라기보다는 탐험가의 면모가 더 발휘되는 것 같다.
해외출장이 계획되면 디자이너들은 분주하다. 출장의 목적인 콘퍼런스 및 주요 세미나일정을 점검 후 남은 시간에 가야 할 장소를 빽빽하게 채워 넣기 시작한다. 이런 디자이너의 니즈를 읽은 트렌드 정보서비스인 WGSN(유료서비스)는 도시마다 꼭 가봐야 할 도시 가이드를 업데이트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서 제공하는 주된 서비스는 가고자 하는 도시에서 새로 오픈하는 팝업스토어와 꼭 봐야 할 전시 및 브랜드 론칭쇼등 시기별 디자인의 최전방에서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는 곳으로 안내한다.
이 서비스를 통해 알찬 해외 출장과 다녀온 후 출장보고서 또한 탄탄하게 만들어줄 든든한 무기이다.
하지만 나는 이와 별개로 출장에서 꼭 살펴보는 두 곳이 있다. 그 도시의 젊은이들이 주로 모이는 거리와 서점을 꼭 들른다.
파리로 출장을 가는 일이 많았는데 그땐 주로 마레지구를 꼭 들렀다. 골목마다 보이는 개성 넘치는 상점의 디스플레이와 테라스에서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카페들 뿐 아니라 중간중간에 하프나 바이올린등을 연주하는 거리의 연주자들의 연주를 감상하는 것 또한 굉장히 흥미로웠다. 많은 예술가들과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낭만 가득한 거리임에 틀림없었다. 규격화되지 않은 느슨한 여유로움이 파리 전체를 주도하는 무드로 보였다. 전반적인 분위기나 무드는 거리에서 느낄 수 있지만 그들의 실제 관심사는 서점을 통해 알 수 있다.
같이 동행하는 동료들은 서점에 가는 걸 잘 이해 못 하는 눈치였다. 불어로 된 책을 살 것인지 혹은 북 커버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지 물었지만 내가 서점에 가는 건 파리지엥 들의 최근 관심사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를 가든지 대형서점에는 베스트셀러 코너가 있다. 그곳에 가면 최근 가장 잘 팔린 도서가 나열되어 있고 가장 인기 있는 관심사 예측이 가능했다. 오래된 고서점을 가면 서점 주인분의 성향이 짙게 배어있긴 하지만 평대에 놓이거나 북커버가 보이게 진열된 것들은 주로 많은 이들이 찾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그들의 성향을 파악하곤 했다.
서점에 들르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외국인들 눈에 비치는 서울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래서 외국서점 사진집 코너에서 서울을 배경으로 한 사진들을 뒤적거리곤 했다. 그중에 눈길을 끌었던 사진 몇 장 있다.
빼곡한 간판들 사이로 각기 다른 서체들이 활용된 한글 간판들은 외국인들이 보기엔 굉장히 다채로워 보이는 듯했다. 마레지구의 규격화 되지 않은 느슨한 여유로움이 있다면 서울의 골목길은 규격화되지 않은 빼곡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우리가 바라보던 골목과 다르게 그들이 바라보는 정취는 꽤나 생동감 있게 담겨있었다.
그는 서울의 거리를 사이버펑크 스타일로 묘사하며 이 평범해 보이는 거리가 미래로 이끄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말 그대로 사진작가가 바라보는 서울의 유흥골목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면 패션디자이너들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어딜까?
패션 디자이너인 키코 코스타디노브는 불가리아 태생으로 패션학과로 유명한 센트럴 세인트마틴 재학 중 이미 스투시에 협업 제안을 받았을 정도로 20대에 패션업계 거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본인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비롯해 아식스, 캠퍼 등과의 협업으로도 업계에서 주목받는 디자이너이다. 그가 2018년 서울의 동묘거리를 방문 후 인스타그램에 이미지와 글을 게재하며 차기 컬렉션에 상당히 많은 영감을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SNS에 사진과 영상을 통해 동묘 아재 패션을 보고 “세계 최고의 거리. 스포티(sporty)함과 캐주얼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감한 믹스매치 정신”이라고 극찬했다. 실제 그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각 나라의 거리패션에 굉장히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거리패션문화의 특색과 장점을 캐치하여 스포티함의 차별화를 본인의 색으로 소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했다.
거리 곳곳에서 보이는 모습은 소비자의 일상이자 커다란 아이디어의 장으로 표현된다. 우리 주변의 일상에서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새로움을 발견하기 어렵지만 가보지 못한 거리의 모습을 만나면 보이지 않던 모습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등산복의 화려한 컬러가 과감한 믹스매치의 스포티 함으로 보이는 건 그가 주 활동 무대인 런던에선 보지 못하는 화려함 때문에 큰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꼭 해외를 가지 않더라도 내 주 활동지역을 벗어나 거리를 걷다 보면 평소에 생각지 못하던 디자인적 혹은 다양한 사업적 영감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때엔 가보지 못한 새로운
거리의 일상을 눈여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