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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signBackstage Apr 25. 2024

힘내라는 말의 배려

<에세이> 최선의 우울


퇴사하는 날 마지막 인사를 하고 회사를 나가려고 하는데, 한 후배 녀석이 삐쭉거리며 내 자리 앞을 서성이며 다가왔다. 곰돌이 푸 얼굴이 사람 얼굴만 하게 그려져 있는 책을 자기 얼굴 앞에  가리고 마치 곰돌이 푸가 말하듯이 책 제목을 말하며 내게 건넸다.

 선배,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너무 따뜻하고 귀여운 장면이었다. 그래서일까 에세이라는 장르는 내게 햇살 가득한 날씨 같았다. 어쩌다 비가 오면  작가와 같이 머리를 손으로 가리며 비를 피하다 지붕 밑에서 비를 홀딱 졌어 서로 마주 보고 까르르 웃는 그런 느낌의 책이었다. 주로 지식 채우기 용도 아니면 업무에 필요한 시장의 흐름파악을 위해 책을 읽다 보니 에세이를 읽게 되는 일이 적었다. 오랜만에 에세이 코너로 향했다. 촘촘하게 나열된 책들은 나와 친하게 지내려고 줄 서기하고 있는 듯했다. 우쭐하는 마음으로 제목들을 살펴보았다.

 

나는 행복한 김치만두 멸치다

작은 기쁨 기록생활

여름맥주영화

날마다 좋아지고 있습니다.

행복한 무소유

그네에 앉아 세상을 읽다


무려 행복한 김치만두 멸치라니, 에세이 제목에서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 행복" "기쁨" "희망" " 여름" "영화" 말 그대로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 힐링의 시간들이었다. 상황에 따라 작은 것에 기쁨을 느끼고 감사했던 기록일지가 아닐 거라 생각이 들었다. 각자 다르지만 그 결은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건방진 생각을 하며 책을 보다 갑자기 가슴에 훅 꽂힌 책이었다."최선의 우울"이라는 책이었다. 에세이 시장에 전면전으로 나서겠다는 저자의 포부가 느껴졌다. '작가는 누구일까?'  '이런 과감함을 수용해 준 출판사는 어디일까?' 갑자기 호기심이 막 솟구쳤다. 저자도 출판사도 생소했기에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다음으로  책꽂이에 꽂힌 시각적 요소가 흥미로웠다.

책은 저마다 귀소본능이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독자를 찾아가는 책의 귀소본능.
내게 찾아온 이 책은 나와 어울릴까?.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을 때 서재를 보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서재에 그들과 어울리는 책들을 보며  취향과 관심사를 파악할 수 있었다. 재테크 책으로 가득 찬 지인은  시시각각 변하는 국내외 경제 정세에 대한 이야기들로 상대적으로 내가 많이 부족한 부동산과 금융 관련 지식을 채워주었고, 철학서와 심리서가 많은 이들은 몽상가적 기질이 높아 대화의 즐거움이 있었다. 서재가 없는 집주인과는 줄곧 대화의 공백이 길어지곤 했다. 어떤 책을 읽는가를 살피는 것은 상대의 생각과 취향을 알 수 있는  인스타그램 돋보기 같은 역할을 했다. 이 책의 목차에서 가장 먼저 읽어본 챕터다 '가장 하기 싫을 때 하는 일' 이였다.


가장 하기 싫을 때 하는 일

결국 그는 가장 하기 싫을 때 하는 일이 글쓰기라고 했다. 혼자 가만히 있어봤자 되는 일 없이 우울하니까  글 쓰는 일을 한다고 했다.  일을 하며 내 가치를 찾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각자마다의 다른 가치 있는 일을 찾아 해내지만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누군가가 시킨 일이 아니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일을 찾아낸 것이다.  나 또한 글쓰기를 하고 나면 이렇게 기분이 후련하다. 저자와의 공통점 찾기는 꽤 즐거운 일이다. 작가는 오랜 사색 끝에 놀라운 비밀을 깨달았는데 비밀은 바로 "세상에 존재하는 오르막길의 개수와 내리막길의 개수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라는 것이다. 전 세계를 돌아다닐 비행기 삯이 없어 검증을 못했다고 하지만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대단한 발명이라 자신만만해했다. 오르막길을 성장하는 경험으로 보고 내리막길을 우리가 닥친 시련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시련을 통해 성장하게 되니 수치로 표현할 순 없지만 오르내리 막길의 개수가 대략 비슷하겠구나 추리할 순 있었다. 그래서 삶의 깊이가 깊은 분들은  일희일비하지 하지 않는다. 또한 인간관계에 대해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던졌다. 이것 또한 그의 사색으로 얻어진 비밀인 것 같았다. 무례하게 대하는 이들을 '측은하게 여겨라' 혹은 '무시해라'라는 식의 배타적 필터링을 멈추야 한다고 했다. 이는 우리가 마주한 불편한 진실을 말하기 꺼리기 때문이고 독자가 원하는 답을 쉽고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라 했다. 결국 우리 관계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건 자신 자신뿐인데 말이다. 하지만 내가 겪고 있는 문제가 나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가끔 힘들다는 친구말에 힘내라고 말한 적이 많이 있었다. 생각 없이 말한 게 아니라 뭐라 대답해야 할지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힘들어하는 이에게 '이 문제는 네가 일으킨 것이니 잘 생각해 봐' 라며 쐐기를 박을 수없지 않은가! 우린 때론 답을 알고 있지만 기대 위로받고 싶은 날이 있는 것이다. 같은 사건도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흥미롭다. 저자는 모든 문제든 당신에게 있음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쉽지 않은 영역이다. 살아가면서 부정적인 감정에도 '최선을 다할 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지금 내 감정에 최선을 다해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변화와 성장은 우리의 한계점에서 일어난다는 말처럼 그 한계점에서 변화와 성장이 시작될 것이다.


[디자이너가 바라본 cover design]

최선의 우울

 묵직하게 띄어쓰기조차 없는 윤명조 350의 적당한 두께감의 서체가 주는 안정감이 있다. 우울과는 어울리지 않는 샌드베이지와  브릭스톤브라운의 컬러의 따뜻함과 더불어 띠지조차 두르지 않은 간결함은 오롯이 자신의 우울에 집중하는 느낌이다. 표지는 에곤실레 작품이 그려져 있다.  파격적이고 과감한 붓터치와 기존의 형태를 무너트리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분방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그림체처럼, 자유분방한 에곤쉴레 그림은 글에서 과감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과도 닮아있었다. 

왼쪽부터 인간실격,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투명인간

그의 많은 작품에서 왜곡되고 뒤틀린 형태의 인물묘사는 인간내면의 관능적 욕구와 불안과 의심을 반영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관통하는 이미지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이미지가 책 표지라면 에곤 실레의 작품 표지 책들은  우리가 바라보지 못했던 인간의 욕망과 본능을 가감 없이 쓴 글들이었다. 이런 생각의 근거는 놀랍게도 내가 좋아하는 도서리스트에 무려 3개의 책에서 에곤실레의 작품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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