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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signBackstage May 22. 2024

과거와의 작별

<사회문제일반>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ㅇㅇ이는 너무 계산적이지 않아!?


 

같은 학과 선배가 나를 가리켜 한말이다. 내가 계산적으로 보이게끔 한 행동이 있었나?’ 생각했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많은 이들 앞에서 나를 평가한 것에 대한 분노와 왜 그런 평가를 했는지 답답함이 뒤섞여 괴로웠다. 시간이 흘러 회사 생활 중. 성과내기 어려운 프로젝트 팀 구성 회의 자리였다. 평소 잘 따르던 후배가 말했다 “선배가 맡은 프로젝트는 다 하고싶어요. 선배는 실패하더라도 대안이 있잖아요! 선배와 같이 일하면 뭔가 계산한 것처럼 착착 일이 되는 게 좋아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와 같이 일을 하겠다고 하니 너무 고마웠다. 그런데 그 기분 좋은 순간에도 거슬리는 단어가 있었다. 다시는 계산적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 말이 나를 지지해주는 힘이 되어 돌아왔다. 과거가 순식간에 뒤집히는 것 같았다. 과거의 그 말은 나를 비하하는 표현이 아니었다. 내가 낮춰 보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히브리 문학 전문가인 데어라 혼이 쓴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는 유대인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유대계 예술가들을 구출해 미국으로 보냈던 배리언 프라이의 활동을 상세히 그리고 있다. 프라이와 그의 동료들은 한나 아렌트, 마르셀 뒤샹, 마르크 샤갈, 앙드레 브르통 같은 유명인들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구출 된 예술가들은 뉴욕에서 전설적인 업적을 이뤄냈지만 목숨을 걸고 구조해준 미국인들을 외면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참혹했던 경험을 잊고 싶었기 때문이라 말하지만 사실 그들은 예술적으로 무지한 자들이라 여기던 미국인들에게 도움 받은 것을 치욕스럽게 생각했다. 구조활동 했던 미국인들 또한 유럽문화를 구하기 위해서 였다지만 뉴욕 예술문화 결핍을 채우기 위해 이뤄진 구호활동이었다. 사회적으로 죽었지만 살아남았고, 이타적이지만 이기적이었던 혼란스러웠던 이시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사실과 고난에는 항상 기회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고독 속에서 성장한다. 삶이 어두울수록 그 반대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가장 큰 혁신은 새로운 시도가 아닌 과거와 작별에서부터 온다’ 라고 말하는 일본 심리학자 야마구치 슈의 말처럼 오래전 나와 작별할 때 새로운 길을 떠날 용기가 생긴다.

그때 처했던 상황과 지금 나는 다르다. 내 존재는 같지만 전혀 다른 나다.

안 좋은 일은 휘발 시키고 좋은 일에 집중할 때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본질을 퇴색시키면서까지 미화시키는 건 위험하지만, 과거에 얽매여 괴로워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계산적이라는 오명을 쓰고 괴로웠던 20대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30대로 성장했다. 과거와 작별을 하고 현재를 살다 보니 앞으로 가 기대됐다. 며칠 전 이런 질문을 받았다. “oo 씨,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나는 씩 웃으며 눈으로 상대에게 이렇게 말했다. 찌질하고 감추고 싶었던 과거를 바꾸니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이다.



[ 디자이너가 바라본 cover design ]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좋아한다' 책표지

굵기가 다른 검은색 줄이 죽 늘어 서있다. 왼쪽 하단의 줄무늬는 바코드를 연상하는 듯하다. 이는 죽은 유대인을 상품화하는 듯한 현시대의 모습을 비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 홀로코스터 메모리얼파크에 비석처럼 늘어선 스트라이프 패턴은 수용소안에 빼곡하게 갇힌 그들처럼 답답하다. 하단에는 유대교 하레디 종파의 전통 복장 중의 하나인 챙 넓은 검은 모자를 뒤집어 놓음으로써 죽은 유대인들을 상징하고 있다. 블랙 앤 화이트로만 디자인된 이 표지는 빈 공간 없이 빼곡하게 네 면이 시각적 요소로 채워져 있다. 표지를 보면 한 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무언 가가 없다. 누군가는 제목이 눈에 띌지도, 뒤집힌 모자가 가장 먼저 보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로 인해 빚어질 미래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음을 나타낸다. 또한 죽은 유대인과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유대인을 나누어 생각하지 말자는 의도로 보이며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음을 나타낸다.

베를린 홀로코스터 메모리얼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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