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계발서> 게이트 C30
봄이 오는 걸 느끼는 방법은 다양하다. 봄이 되면 '벚꽃엔딩' '밤양갱'처럼 마음을 간질거리게 만드는 음악을 찾아 듣게 된다. 거리에서 검은 옷차림이 사라지고 하늘거리는 시폰소재가 자주 눈에 띄면 직관적으로 때가 왔음을 알아챈다. 하루는 동료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아..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라는 말이 내 입에서 여러 번 반복되면 '봄이 왔구나!'를 느낀다고 했다. 나도 몰랐던 내 봄 루틴을 알아맞힌 게 당황스러워 한참을 웃었다. 마흔이 넘어서도 주기적으로 봄이 되면 찾아오는 '나는 누구고, 어디로 가는가'병이 또 찾아왔다. 백신도 없고, 치료법도 없지만 나를 찾는 여행을 한다면 증상이 완화될 것 같았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지만, 영원한 나의 단짝 책을 한 권 들고 가기로 했다. 똘똘하고 미래지향적인 친구가 필요해서 자기 계발서 코너로 향했다. 세이노의 가르침, 일류의 조건, 퓨쳐셀프, 행운의 법칙, 마음지구력, 그릿, 아주 작은 습관의 힘, 몰입 등등의 책들이 작정하고 내게 가르침을 주려는 듯 베스트 코너 높은 책장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뢰감 넘치는 블루, 화이트, 블랙 컬러의 표지로 휘감긴 책들에 위화감을 느꼈다. 조용히 시선을 돌 빼곡히 채워진 책장의 제목과 표지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법칙, 가르침, 몰입등의 고압적인 제목들 사이에 빼꼼히 게이트라는 제목이 보였다.
게이트 C30이라는 책제목 밑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목적지를 바꾸는 순간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책 제목보다 부제목이 여행의 목적과 너무 잘 맞아떨어졌다. 내 목적지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할 수 있게 해 줄 것 같았다.
책표지를 보니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뒷모습과 앞모습이 교차하는 모습이 보였다.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만 마치 서로를 전혀 모르는 이처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오묘했다. 여행의 시작과 끝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했고,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삶을 이야기하는 것 도 같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게이트는 결국 사람이었다. 우연히 만나는 이들을 통해 생각이 바뀌는 주인공을 보며 사고의 확장은 타인을 통해 무한해졌다. 사업일정에 맞춰 쫓기듯 살아가는 주인공을 회색슈트와 회색케이스로 표현했고 이는 답답하고 융통성 없는 인물로 그렸다. 하지만 그가 서 있는 배경은 따뜻한 색으로 채워져 있다. 그를 둘러싼 따뜻한 에너지는 과연 무엇일까?
책의 저자 메튜 모크리지는 엔터테인먼트 사업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이 책은 본인이 실제 만난 이들과 나눈이야기를 바탕으로 집필했다고 한다. 책의 주인공인 제이슨 쿠퍼는 중요한 계약을 앞둔 출장으로 서둘러 집을 나서 공항에 도착했지만 카타르까지 가는 그날의 유일한 항공편이 7시간이나 비행이 지연된다는 안내방송과 함께 그는 당황스러워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의 계약 관련 서류와 함께 지갑과 여권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만다. 중요서류를 찾으며 우연히 공항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통해 삶의 중요순위가 조금씩 바뀌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진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나 출장은 설렌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능동적인 대처가 가능할 뿐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여행과 출장이라는 목적은 다르지만 그도 혼자 떠났고 나도 혼자 떠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책에 더 진지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는 서류를 찾으러 다니다 화장실 청소를 하는 미화원 마리아와 나누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마리아가 쿠페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고 물건이 사라진 것 말이에요.
인생에서 이유 없이 벌어지는 일은 없어요.
모든 일에서 특히 부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은 없어요.
모든 일 속에서 특히 부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에서
긍정적인 것을 찾는 게
바로 예술이죠.
사실 우린 필요이상으로 걱정을 하며 살아간다. 부정적인 생각을 면 할수록 긍정적인 생각을 할 시간이 줄어드는 건 사실이다. 사실 생각의 품질은 결국 인생의 품질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생각의 지배를 많이 받는다. 나쁜 생각은 나쁜 행동으로 이어지고 좋은 생각은 같은 행동으로 이어지니 말이다. 우리 인생은 결국 우리가 만들어 간다는 걸 잊고 살아간다.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살아지게 된다. 어려운 상황에서 그녀의 멋진 생각은 그의 불안한 마음을 조금씩 긍정적인 감정으로 변화시켰다. 안 좋은 일이 생겼다고 낙담하지 말고 거기서 긍정적인 것을 찾는 게 예술이라 표현하다니, 예술의 대한 정의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의 마음을 움직인 그녀에게 그는 지금이 순간도 행복하냐고 물었다.
제 인생은 제게 영화와도 같아요.
그리고 저는 늘 영웅이 되려고 애쓰죠. 그것이 생각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고 힘을 줘요. 과거는 저를 위한 교훈을 담고 있고, 미래는 저를 위한 동기 부여를 하죠. 제 영화에서는 제가 영웅이고 주인공이에요. 그래서 정말로 용감 해지도록 만들어 주죠. 진실로 행복하고 온전히 마음을 열고 순수하게, 친절하게, 그리고 절대적으로 희망적인 그럼 사람이 되도록 말이에요.
그녀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본인을 영화관에서 보고 있다는 상상이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준다 말했다. 그녀의 모든 행동과 결정 그리고 다가올 모든 장면을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했다. 나도 같은 상상을 해보기로 했다. 영화 속 주인공으로써의 삶은 어떨까? 평범하게 성장했으나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영웅으로 그렸다. 하지만 어떻게 세상을 구할지는 좀 더 구체적으로 연출해야 했다. 내 영화에선 생각과 말이 모두 대사가 된다. 생각과 말에 개연성이 있어야 했다. 세상을 구할 동기부여가 돼야 했기 때문에 빌런도 꼭 등장해야 했다. 위기의 순간들이 올 때면 꼭 등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며 그 상황을 잘 견뎌낼 수 있었다.
초행길인 목적지에 내리기 전에 지도앱을 꺼내 한번에 목적지를 스캔 후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기차에서 내렸다. 두리번거리지 않았고 걸음걸이에도 신경을 썼다.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기차계단을 내려오며 신발에 클로우즈 업 되었다. 카메라의 앵글이 점차 줌 아웃되며 카메라의 시선이 점차 위로 올라간다. 어깨에 카메라가 앵글이 걸리자 부인공의 얼굴이 반쯤 돌려 얼굴이 완전히 보이기 전 잠시 멈추며 영화 타이틀이 뜨며 영화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