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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signBackstage Aug 14. 2024

지적간호론

<경영철학> 지적자본론

투박하지만 존재감 있는 세로 쓰기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자 문화권에선 전통적으로 세로 쓰기 방식이었다. 이는 종이 발명 전 대나무나 나무를 쪼개어 줄로 이어 붙여 사용한 죽간이나  목간에 글을 쓰며 나타난 기록 방식인데 우리나라도 90년대 이전까지 이 방식으로 쓰이다 90년대 말부터 가로 쓰기가 일반화되었다. 그에 반해 일본의 주요 신문사나 만화 등 다양한 매체에서는 아직도 세로 쓰기를 고수하고 있다.  때문에 세로 쓰기는 일본을 나타내는 문화적 특징으로 보이곤 한다. 그래서일까, 세로로 인쇄된 제목은 일본서적 일거라는 유추가 가능했다. 세로 라인에 따라 배치된 군더더기 없는 고딕 서체는 굵기만 다를 뿐 제목과 소제목 그리고 저자명까지 같은 서체 다른 굵기로 쓰였다. 절제된 라인과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 일본 젠 스타일의 감성을 잘 드러난 표지였다




모든 게 넘쳐나는 세상,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 물건이 부족했던 시대를 지나 생산이 고도화되고 다양한 제품들과 플랫폼으로  선택지가 넓어졌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고 소비할 수 있는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더없이 좋은 세상이지만, 판매자 입장에서는 더없이 괴로운 세상임은 분명하다. <지적자본론>의 저자 마쓰다 무네야키는 수많은 플랫폼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객들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제안능력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하다 말한다.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남편에게 찾아왔다. 혹여나 아이들에게 감염이 될세라 방에서 나오지 말고, 편히 쉬라는 친절한 말과 함께 감금 아닌 감금을 한 뒤 약과 식사를 때맞춰 방으로 넣어주었다. 2019 코로나 감염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할 때처럼 감염경로를 추적하고 질병관리청에서 수시로 감염자들의 거처를 확인하는 전화는 없었다.  아이들과 정신없이 주말일정을 소화하느라 나 또한 남편의 위증여부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다행히 식사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오느라 식사는 챙겨줄 수 있었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오후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당신의 극진한 간호 덕분에
몸이 많이 좋아졌어, 고마워.

몸이 좋아졌다니 정말 다행이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무슨 간호를 해 준거지? 순간 당황했다. 혹여나 비아냥 거리는 건가 싶어 앞뒤 문맥을 살펴봤지만 진심이 더해진 감사 메시지였다. 그때부터 나의 극진한 간호가 무엇이었는지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다. 진짜 해준 게 없었다. 심지어 눈 맞춤도 없었고 시간 맞춰 식사를 챙겨준 게 다였다. 그렇다면 평소와 달랐던 게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에게 그토록 고마움을 느끼게 한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남편에게 말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게 평소와 좀 달랐다. 방 안에서 나오질 않으니 보이지 않아서도 있었지만 아픈 사람에게 꼭 필요한말이 아니면 말을 건네지 않는 편이 좋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고 보니 평소 주말 나는 말이 좀 많았었다.  내가 설거지를 할 때면 빨래를 개거나 청소기를 돌려달라 부탁했고, “아이들과 있을 때는 핸드폰을 보지 말고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 “화장실에 너무 오래 있는 거 아냐?”, “쓰레기를 버려야 할거 같아”, “밥 먹고 바로 눕지 마” 등등 남편이 하는 행동마다 뒤따르는 말이 항상 있었다.  하루는 남편이 방 문지방에 서성이며 나를 바라보길래 “왜 그러고 있어? “라고 물으니 "거실에서 핸드폰 보면 애들에게 안 보이게 들어가 있으라 하고, 방안에 들어가 있으면 누워있지 말고 나와서 애들하고 대화도 하라 고하니 들어가 야하나 말아 야하나 생각 중이었어"라는 말에 서로 마주 보며 한참을 웃었다. 그런 주말을 보내던 그는 와이프의 잔소리 없는 이틀의 시간이 극진한 간호로 느껴졌던 것이다.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는 충만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모든 게 넘쳐나는 세상에서 고객에게 제안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말하는 저자의 강력한 메시지는 하나였다. 판매자 입장이 아닌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고 기획하는 것이 곧 자본이 되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니 라이프 스타일을 파는 공간으로 유명한 츠타야 서점의 기획자인 그는 판매자 중심의 서점형태를 완벽하게 소비자 중심으로 바꿨다. 기존의 서점은 역사, 소설, 자기 계발, 에세이 분야별 출판사 혹은 제목순으로 나연 되어있었지만 이는 판매자가 관리하기 쉬운 진열방식이었다. 하지만 츠타야 서점은 소비자가 여행책자를 보러 간다면 가까운 미래, 혹은 조금 먼 미래가 됐든 분명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생각했다. 여행 책 한켠에는 여행가방과  여행 시 필요한 여권 지갑등 다양한 상품들이 함께 진열되었고, 예술 책 코너 한켠에는 전시회가 열리는 방식이었다. 오로지 소비자의 관심사와  그들의 의도에 집중했다. 소비자들은 츠타야 서점에 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머물수록  소비도 높아졌다. 소비자 시선으로 생활 속 언어를 사용해 정성스럽게 나눈 장르별 분류법은 많은 이들에게 강하게 어필하며 라이프스타일라이브러리라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갔다. 아무리 좋은 음식과 공간도 상대 입장에서 고려하지 않으면 좋은 제안이 아니라는 가장 기본적 사실을 되새겨주었다. 심층적으로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정성이 필요했다.


극진한 간호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결국 내입장에서 바라봤기 때문이었다.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쉼이 무엇인지 미쳐 사려 깊게 생각하지 못했으나, 뒷걸음치다 그의 입장에서 간호를 하게 된 것이다. 뜻밖에 부부간 대화에도 절제가 필요하다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소비자 중심의 제안력과 절제력으로 의도하진 않았지만 지적 간호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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