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처세> 다산의 마지막 공부: 마음을 지켜낸다는 것
마음을 비워, 그러면 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트집을 잡는 직장상사 앞에서, 말하는 것과 반대로 행동하는 아이 앞에서,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지인 앞에서 외치는 주문이다. 마음이라는 게 쉽게 비워지는 것이 아니지만 여러 번 훈련해 보니 가능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법인 ‘멍 때리기’는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나만의 무기였다. 그러다 보니 점차 관계는 단절되고, 누군가를 만나는 게 꺼져졌다. 성리학 입문서 <근사록> 에는 살아감에 있어 단지 ‘사사로운 마음이 없어야 한다’고 실려 있다. 무심이 아니라 무사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흔히 수양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비운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정작 마음을 비우고 나서 올바른 마음으로 채우지 않으면 금방 다른 욕심이 들어서기 때문에 마음을 비우는 것에서 끝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비워진 마음에 욕심이 채워진다는 건 무슨 뜻일까?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며 나를 채찍질하는 건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 마음을 지켜낸다는 것>를 읽기 전까지 말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 퇴계와 다산이 공부의 마지막 경지로 여기며 읽었던 마음에 대해 다룬 유교경전 <심경 心經>을 바탕으로 쓴 마음 해설서이다. 공자는 다음 네 가지 정신적인 욕심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기 싫은 자존심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고집하는 자만심
확실하지 않은 것을 자기 의도에 맞게 미루어 넘겨짚는 이기심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심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트집 잡았다고 생각했던 상사 앞에서 나는 그 업무에 대해 잘 몰라서 묻지 않고 임의로 해결하려다 시간이 지체된 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기 싫은 자존심이었다. 나보다 한 살 많았던 선배는 나를 못 마땅히 여겼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매 번 내가 맡게 된 것에 대한 복수심이었을까! 본인이 팀장이 되자마자 내게 벅찬 업무를 맡겼다. 그동안 내가 해온 업무와 만들어 놓은 매뉴얼은 철저히 무시한 채 성과가 보장되지 않는 전혀 새로운 업무 내게 맡겼다. 당연히 해보지 않았던 업무였기에 나는 헤맬 수밖에 없었다. 나를 골탕 먹이려는 의도라 여겼기에 완벽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존심을 날카롭게 세운 팀장이 툭 내뱉은 말이 매번 나를 푹 푹 찔렀다.
말하는 것과 반대로 하는 아이의 행동은 내 생각만 옳다고 여기며 고집하는 자만심 때문이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는 아이를 보며 혀를 찾다. 중2 아들은 엄마가 부르면 대답을 잘하지 않고 왜 대답을 하지 않냐 물으면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것을 전혀 못한다 말했다. 그러던 녀석이 음약을 들으며 공부에 집중한다는 건 앞 뒤가 안 맞는 말 아닌가! 아들은 내가 하는 말의 출처를 꼭 묻곤 했다. 그냥 반대로만 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라 여기며 터부시 했었는데 '훗타슈고'의 <나는 왜 생각이 많을까?>라는 책을 읽다 멈칫했다. ‘작업 중에 음악이나 라디오를 틀거나 가족목소리, 바깥에서 나는 소리가 들으면 뇌에 자극이 된다.’ 며 의식 전환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내 생각이 옳다 여기며 고집했던 자만심에 숨고 싶었다.
성당에서 봉사 활동을 몇 년째하고 있다. 주로 아이들 간식봉사나 성당 청소등 미사를 드리기 전 조금 부지런히 움직여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봉사자 중에 한 분이 항상 밝은 얼굴로 반겨 주셨다. 봉사에 매번 빠지지 않고 오시며 매번 긍정적인 말들로 다독여주고 인자하신 분이었다. 아이들 나이가 비슷해서 육아 고민 이야기를 하면 항상 믿고 기다려 주라는 말과 아이가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 그걸로 된 거 라며 성모마리아와 같은 말을 항상 건네주었다. 본인의 아이 칭찬 만하는 그녀는 딸과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며 그날따라 빨리 봉사를 마치고 서둘러 나갔다. ‘아이가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잘하고 엄마와 사이까지 좋다니, 그러니까 저렇게 여유로운 말을 하는 거지!’ 라며 속으로 부러운 마음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의 딸은 뇌 관련 질환으로 한 학년을 누락하고 뇌 수술을 했다고 한다. 서둘러 봉사를 마치고 갔던 그날은 그녀의 딸이 삭발을 하고 지내기를 힘들어해 그녀와 가발을 맞추러 가는 날이었다고 했다. 확실하지 않은 것을 나의 의도에 맞게 넘겨짚는 이기심이 그렇게 부끄럽고 치욕스러웠을 때가 없었다.
내 삶은 사사로운 마음으로 가득했었다. 마음의 공부를 통해 하나씩 덜어지는 욕심은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게 해 주었다. 표지를 들여다보면 여러 권의 책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의 여백으로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는 마치 눈동자를 나타내는 듯하다. 마음의 공부를 통해 세상을 비라보는 눈을 떠보라는 듯이 말이다. 퇴계가 서른 즈음에 처음 접한 <심경>을 새벽마다 매일 읽으며 마음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처럼 심경을 매일 읽을 수 없다면 내가 누군가를 바라볼 때 네 가지 욕심으로 바라보지 않는가 생각해 보면 되지 않을까? 오늘도 무사심을 통해 새로운 눈으로 내 마음을 살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