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아노말리
위아래의 찢어진 종이 사이로 상반된 하늘 이미지가 보인다. 프랑스어로 아노말리는 이상, 변칙, 모순을 뜻한다. 화창한 날씨의 하늘과 먹구름 가득한 하늘은 마치 다가올 어둠을 예견이라도 한 듯 섬뜩했다. 책 표지를 보자마자 르네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 떠올랐다.
일상적인 사물들을 예상하지 못할 공간에 나란히 두거나 크기를 왜곡시켜 신비한 세계를 만들어 내는 벨기에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빛의 제국'은 한적한 주택가의 어두운 밤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반적인 풍경화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 흐릿한 가로등불에 어스름하게 건물의 윤곽이 드러나는 밤거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청량한 하늘과 둥실 떠오른 구름이 기묘하게 느껴진다. 이 공간은 낮일까 밤일까? 어두워서 빛이 밝게 느껴지는 걸까? 밝아서 어둠이 더 짙은 무게로 느껴지는 걸까?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던지게 됐다. 해피엔딩일까? 새드엔딩일까?
꿈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
길몽이냐 흉몽이냐는 중요치 않다. 꿈에 등장하는 맥락 없는 이야기와 인물관계들이 너무 흥미롭다. 이야기를 할 때 누군가에게 듣거나 본인이 경험해 본 것들을 기본 바탕으로 다른 이야기를 더하거나 빼면서 상상하곤 하는데, 꿈은 그런 가이드라인이 전혀 없다. 이야기에 꼬리를 물고 이어가다 보면 내 생각이 굴레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미 이불을 나오기도 전에 세계를 구하기도 하고, 세계적인 거장이 되어 수많은 이들과 대담을 나누기도 한다. 아침식사시간에 가족들과도 스몰토크 주제로도 자주 활용된다. "혹시 인상 깊거나 재미있었던 꿈 꾼 적 있니?" 아이들에게 물었다. 마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대답했다. "엄마 제가 7번이나 꾼 꿈이 있어요. 롤러코스터를 타고 신나게 놀이동산에서 노는 꿈인데 가봤던 곳인 거 같기도 하도, 꿈을 많이 꿔서 내가 거길 갔다고 생각하는 거 같기도 해요!"
가끔 비현실적인 상황을 마주할 때 이게 꿈인가?라는 말을 하곤 한다. 2020 콩쿠르상을 수여하게 된 에르베 르 텔리에의 장편소설 '아노말리' 책은 꿈같은 현실과 현실 같은 꿈 중에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난데없이 만나는 사고로 시작한다. 2021년 3월 파리를 출발해 뉴욕으로 향하는 에어프랑스여객기가 예고 없는 난기류를 만나 추락 위기를 만났지만 무사히 착륙한다. 세 달 뒤 2021년 6월 동일한 여객기가 마치 도플갱어처럼 3월과 같은 기장과 승무원 그리고 탑승객까지 동일인물을 태우고 동일지점에서 난기류를 만나 동일한 곳에 착륙지를 향해 간다. 그러 던 중 이 상황을 인지한 미국정부는 비밀리에 과학자들을 소집하고 황당한 사건의 원인분석을 의뢰하며 여객기를 공군기지로 비상착륙시킨다. 비상착륙한 탑승객들은 뉴욕에 본인과 동일한 이들이 세 달 전에 도착 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큰 혼란에 빠진다.
내 존재가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을 차츰 받아들이며 각각의 인물들이 또 다른 나를 어떻게 맞이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SF 장르의 소설과 영화를 보다 보면 그럴듯한 세계관에 넋을 놓고 보게 된다. 때론 이런 이야기들이 시간이 흘러 현실화되면 찬사가 쏟아지곤 한다. 2002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054년 워싱턴을 배경으로 한다. 범죄가 일어나기 전 범죄를 예측해 범죄자를 단죄하는 최첨단 치안 시스템이 등장하는데 이는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든든한 존재가 된다. 이 시스템을 통해 범죄가 일어날 시간과 장소, 범행을 저지를 사람까지 미리 예측해 내고, 이를 바탕으로 특수경찰이 미래의 범죄자들을 체포한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제작 과정에서 미래학자들이 다수 참여해 실현 가능성이 높은 미래상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는데 2024년 현재, 빅데이터를 통해 범죄예방, 예측이 가능해지고 있다. 그 외에도 홍채인식과 자율주행차들은 과거 SF소설에나 등장했던 기술들이 일상이 되는 것을 경험을 한다. 이런 경험들은 과학소설이나 영화과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것처럼 책을 읽으며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또한 가까운 혹은 먼 미래의 일이 될 수도 있을까?라는 두려운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 처럼 도플갱어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글을 읽다 보니, 혹시 내가 프로그래밍된 로봇은 아닐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실제 소설에서 몇 가지 가설을 주장하는데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페르미의 역설'이라 불리며 우리 자신이 프로그램일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를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서로의 주장을 주고받는 장면이 나온다.
"이제 우리 자신이 프로그램일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시뮬레이셔닝 이런 시험을 던져 주는 것 같습니다. 이 시험을 잘 돌파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적어도 재미있게 치르기라도 하든가요"
"왜 그래 야합니까?"
"우리가 실패하면 그들이 시뮬레이션을 꺼 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의 시간이 착각에 불과하다면 우리의 한세기도 거대한 컴퓨터 프로세서에게는 찰나에 불과할까요? 그러면 죽음은 뭐죠?
그냥 한 줄 코드상의 엔드(end)?"
'메인 운영체계가 내가 자라온 환경을 연출하고 철저하게 계획 세워 나를 프로그래밍한 거라면?'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굉장히 창의적인 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영화 '트루먼 쇼'가 생각나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는 영화처럼 세트장벽을 만나게 하는 대신 서로를 만나게 했다. 누군가는 또 다른 나로 인정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을 부정하며 죽음의 비극으로 내 몰기도 했다. 많은 탑승객들이 다양한 자구책을 찾는 것을 보며, 사랑은 위기의 상황에서도 본인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동물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와 똑같은 얼굴로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는 내가 있다면 어떨까?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을 굉장히 두렵게 보거나 혹은 안 좋은 부분을 두각 해서 바라본다. 나는 어떨까? 내 부족한 면을 먼저 바라볼까, 긍정적인 면을 바라볼까? 나를 만나면 나는 어떤 말을 먼저 건넬까? 그리고 나와 어떻게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며 일을 나눠 할 수 있다니 효율성이 2배가 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가고 싶은 곳을 나누어 더 많이 다닐 수 있고 두 배의 경험으로 글감이 더 많이 생길 것이라며 생각해 보지만, 혹시라도 부정적인 생각으로 만난다면 상처 주는 말들을 내뱉지는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나를 만나는 날 좀 더 당당하고 긍정 가득한 상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 나를 만나게 된다면 꼭 안고 등을 토닥이고 싶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게 될지, 웃음으로 반겨줄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꼭 끌어안고 따스한 온기를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