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esignBackstage Jul 31. 2024

호들갑 사랑

<소설> 꽃으로 말해줘

 

와 진짜 대단하다!
어쩜 그렇게 잘하니?

아빠가 호들갑을 떨면서 현관문을 여니 엄마는 눈이 똥그래져서 아빠와 나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많이 늘었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엄마 눈빛이 꽤 날카로웠다. 초등학교 1학년때의 일이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한 시간 동안 나는 엄마와 줄넘기 연습을 했다. 늘지 않는 줄넘기 실력에 별다른 말이 없던 엄마는 잠깐 혼자 연습하고 있으라고 말을 남기고는 자리를 떴다. 엄마가 사라지는 걸 확인한 후 나는 줄넘기를 바닥에 던져놓고 아파트 경비실 옆 화단에 피어 있는 맨드라미 꽃을 보며 숨을 돌리고 있었다. 맨드라미 꽃은 마치 닭 벼슬이 여러 개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닭이 울 때 벼슬이 흔들리는 것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맨드라미가 소리 내어 울 것만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나왔다. 다시 줄넘기 연습이 시작되었다. 버둥대는 내 실력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지루했던 연습시간은 즐거운 놀이시간으로 바뀌었다. 아빠가 시범을 보였고, 내가 잘 따라 하지 못하자 내 모습을 흉내 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한참을 웃었다. 같이 박자를 맞춰 연습을 하다 집에 들어갔다. 아빠는 엄마 앞에서 내가 줄넘기 3개를 연달아했다며 칭찬을 쏟아 내셨다. 박자감이 좋다 느니, 줄넘기 자세가 안정적이라 느니, 어린 나이였지만 아빠의 칭찬이 좀 과하다는 생각에 쭈뼛했던 기억이었다. 

그랬다.
아빠는 나를 예의주시하다가 작은 칭찬 거스러미라도 보이면
기특해하며 대단하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자랑하고 싶은 게 있으면 나는 아빠한테 가서 조잘거렸고,
아빠는 그에 질 세라 데시벨을 한껏 올려 나를 추켜 세워주곤 하셨다.

나는 자존감 충전소가 있어 기뻤고,
아빠는 장점 찾기 놀이를 하느라 즐거웠다.
어린 나이의 나는 부모의 사랑이란 항상 이렇게 요란하고
당연한 것이라 여겼었다.   


<꽃으로 말해줘>의 주인공 빅토리아는 태어나면서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아로 여러 차례 입양을 가게 되지만 거칠고 폭력적인 성격 때문에 거절당하고 여러 보육원을 전전한다. 그런 그녀는 점점 자신의 감정표현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다 꽃말에 의미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전달하는 빅토리아 시대부터 시작된 꽃말에 매혹되어 조금씩 세상과 소통한다. 꽃집에서 일하며 그녀는 꽃말을 활용해 손님들에게 환심을 산다. 한때는 시인이었지만, 글도 쓰지 않고 무기력한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에겐 ‘소중한 기억들’ 페리윙클 꽃을, 사랑스러웠던 아이가 심술궂게 변한 손녀 생일선물로 ‘다시 찾은 행복’ 은방울꽃을 추천하며 다른 이들과의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 요람에는 ‘엄마의 사랑’ 이끼를 깔아주며 자신만의 사랑을 나누는 법을 터득한다. ‘증오’의 엉겅퀴, ‘슬픔’의 금잔화 같은 삶을 살았던 그녀는 장미의 ‘사랑’과 초롱꽃의 ‘화해’를 표현할 줄 아는 여인으로 성장한다.


<꽃으로 말해줘> 책 표지에는 비비드그린 컬러의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진한 핑크색의 거베라를 들고 서있다. ’ 수수께끼’ 꽃말을 가진 거베라처럼 이 책은 주인공이 마음을 열기까지 베일에 싸인 사건들을 수수께끼처럼 풀어낸다. 표지 소녀의 핏기 없는 피부표현이 서늘해 보여 마치 추리소설 표지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는 감정이 메마른 빅토리아의 상태를 보여주는 듯했다. 꽃과 대비되는 그린 컬러배경색은 차갑고 냉정해 보이는 주인공을 나타내며, 꽃을 통해 따뜻한 사랑을 찾고 있는 상반된 감정들로 잘 표현됐다. 사랑을 표현하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이 작품은 부모와 자식 간의 맹목적인 사랑이 결코 모두에게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받지 못한 사랑을 나누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화해가 필요한지 또한 절실히 알게 되었다.   






 방학이라 신난 아이들의 사진을 아빠한테 메시지로 보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이렇게 답장이 왔다. “아이들 보며 행복해하는 네 모습을 보니 너무 좋구나!” 

아빠는 손자사진 보다 내 행복이 먼저 보였던 것이다.
화단 옆 맨드라미의 꽃말 ‘시들지 않는 사랑’처럼
나는 시들지 않는 활짝 핀 사랑을 아직도 받고 있다.
덕분에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내 사랑을 충분히 나눌 수 있었구나 생각하니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이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덮어씌워졌다.
맨드라미 꽃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그날 사실,
나는 줄넘기가 아닌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