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 메트로폴리스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는 국가의 경제, 문화의 중심이며, 국제 협력의 허브가 되는 큰 도시를 뜻한다. 책의 전면에 크게 쓰인 책제목이 도시이야기를 할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 표지에는 책에서 다루고 있는 타이틀 바로 위에는 대표 도시의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런던과 뉴욕, 아테네와 상하이의 모습이었다. 이 4가지의 도시들을 주축으로 도시이야기가 풀어지겠구나 라는 예측을 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지금 도시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타이틀 바로 위로 보이는 런던은 짙은 색채가 뚜렷한 빅토리아 시대 그림 같았다. 그 위로 파리와 바그다드, 아테네와 뉴욕이 그려져 있다. 가장 상단에는 상하이와 맨해튼의 마천루가 등장한다. 아래에서 위로 향하면서 점층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며 색감과 명도가 흐려지는 걸 볼 수 있는데, 도시의 역사적 중요성을 드러내기 위함으로 보인다.
'도시'라는 단어를 들으면 빼곡한 건물들 사이로 손에 커피를 꼭 쥔 채 바삐 움직이는 도시인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책에서도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런던과 파리를 중심으로 심도 깊게 다루고 있다. 커피는 도시에서 사교적인 활동을 하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요소로 17세기말 런던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카페는 새로운 소식을 접하고 뉴스에 목마른 이들이 자주 찾는 곳이자, 온갖 지위와 신분의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토론하는 곳이었던 것이다. 이는 런던을 거대한 상업도시로 도약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증권업자, 해운업자들은 가장 최근 소식을 종업원들을 통해 들을 수 있었고, 카페가 위대한 과학 성과를 보여주는 무대가 되면서 과학강의가 이어지기도 했다. 문학과 상업, 과학이 발달한 런던은 세계 최강의 도시이자 상업 대도시 반열에 올랐다. 카페는 혼자 시간을 보내기 좋은 사적인 공간이자,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공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도시의 자유로운 안식처이자 즐거운 사교의장이었다. 런던은 카페를 중심으로 도시가 성장했다면, 파리는 거리의 연극적인 요소를 통해 발전해 나갔다.
파리 사람들은 카페, 정원, 공원, 극장, 상점, 야외공연장 같은 공공장소에서 다양한 즐거움을 누리며 도시에서 펼쳐지는 연극을 구경하는 구경꾼의 역할을 하며 즐겼다. 근대 도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용어인 플라뇌르도 여기서 생겨났다. 프랑스어로 ‘플라뇌르’는 한가로이 거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도시의 인파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사람들과 동 떨어진 채 도시를 탐색하는 은밀한 관찰자의 모습을 말한다. 플라뇌르의 모습 또한 혼자서 은밀하게 관찰하는 사적인 자리에서 바라보는 대상은 공적인 공간을 오가는 이들이었다. 19세기 초반 언론인과 작가들이 만들어낸 명칭인 '플라뇌르'는 거리의 주인인 중산층을 상징하는 단어로도 쓰였다. 현대예술과 문학은 플라뇌르 영향으로 문학사상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도시가 발전을 하기 위해선 소통과 공감이 필요했다.
런던의 카페는 모두가 평등하게 소식과 의견을 주고받는 소통의 장이었고, 파리의 플라뇌르는 서로를 관찰하며 자신과 다른 점과 공통점을 찾아가는 공감의 장이었다. 하지만 런던은 근대화와 더불어 교통수단의 발달하자 중산층들의 교외로 나가면서 카페는 사라졌다. 파리는 급격한 대도시 개조작업으로 많은 시민들이 쫓겨났고 정비된 거리에 플라뇌르는 사라졌다. 도시는 발전과 쇠퇴가 반복된다. 높은 기술로 인해 사라지는 것이 있고 발전하는 것이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과학기술을 가진 지금에도 끊임없이 소통과 공감을 강조하는 건 지나온 역사를 통해 우리가 누렸던 것들을 되찾고 싶은 마음에서 일 것이다. 온라인에서 소통과 공감이 익숙한 요즘 SNS를 통해 소통의 장이 열리지만 런던의 카페처럼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이 모두 존재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AI기술의 발전으로 이 도시가 최첨단 시스템으로 가득 채우게 될 어느 미래에도 사람중심의 소통과 공감이 있는 그곳에서 우린 더 성장하고 발전할 것이다.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소통을 한다, 누군가는 대화를 통해 소통을 하고, 누군가는 글이나 그림으로 요즘은 영상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거나 어떤 사람인지를 가늠하기도 한다. 도시를 만날 때도 그렇다. 새로운 도시를 방문할 일이 있거나, 그 도시를 상기시킬 때 우린 가장 먼저 그 도시의 특징을 살피고 이해하려 든다.
책을 읽고 보니 표지에서 의아한 부분을 발견했다. 상대적으로 내용에서 작게 언급되는 상하이 도시의 이미지가 꽤 존재감 있게 그려져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비중 있게 다뤄졌던 라고스, 로스앤젤레스, 암스테르담, 우르크 도시에 대한 도시 이미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도시를 이미지화할 수 있는 대표되는 랜드마크나 건축물이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우리는 나라 혹은 도시를 상상할 때, 이집트의 피라미드, 파리 에펠탑, 런던 빅벤,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처럼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 중에는 건축물이 많이 있다. 아마도 많은 도시를 다 담을 수없는 제한된 표지 사이즈에 표현할 수 있는 대표 건축물들로 구성한 것 같았다. 독자들과의 소통을 위해 직관적으로 도시 건축물들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함께 담았고, 누구나 알만한 건축물들을 배치함으로써 공감을 끌어낸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나는 사이에도 공통 관심사를 찾는 게 가장 큰 핵심인 것처럼 독자와 저자 사이에 도시를 주제로 관심사를 찾으려는 모습이 보였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 일컬어지는 도시는 다양한 역사를 통해 우리가 모르는 도시의 탄생과 과정을 통해 매력적인 도시로 안내한다.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대가로 화폐, 숫자, 문자의 발명을 이룬 우르크, 상업과 교역의 중심이었던 암스테르담, 권력의 표현이자 공동체 장이었던 공중목욕탕과 흥망을 함께 했던 로마, 혼란스럽고 덜 발달됐지만 독창적이고 역동적인 도시 라고스 등 다양한 도시의 부흥과 위기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소통과 공감을 통해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을 모두 포용하는 곳이 곧 부흥의 시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