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악의 꽃
팬톤사에서 2023 대표 색으로 비바 마젠타로 선정했다. 두려움 없이 활기차고 낙관적인 분위기를 일으킨다고 하는 이 색은 이름에서 처럼 에너지가 넘친다. 나 또한 마젠타 색 재킷을 입을 때마다 자신감이 솟구쳤던 경험이 있다. 빛의 색조합을 뜻하는 RGB 방식으로 색을 표현하곤 하는데, 이는 빛의 삼원색 Red, Green, Blue를 섞어 색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빨간색과 파란색을 최대치로 섞으면 바로 마젠타 컬러가 되는데, 따뜻함을 대표하는 레드와 차가움을 대표하는 블루컬러가 만나 많은 이들이 핫 핑크 혹은 꽃분홍색이라 불리는 마젠타 컬러가 되는 것이다. 이색은 따뜻함과 차가움을 모두 섞여 있을 때 자신감 넘치는 컬러가 되는 것이다.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악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주제로 쓴 시이다. 1857년 출간된 이 시집은 당시 수치스럽게 여겨지던 섹스와 죽음, 우울, 도시의 붕괴, 사라진 순수성 등의 주제를 다루며, 시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기존의 틀을 깨며 주목을 받았다. 가장 현대적인 시인이라 칭했었지만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작품에서 보들레르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한듯한 시 한 편이 꽤 오래 기억에 남아 되새김질을 여러 번 했다.
<알바트로스>
뱃사람들은 아무 때나 그저 장난으로,
커다란 바닷새 알버트로스를 붙잡는 다네,
험한 심연 위로 미끄러지는 배를 따라
태무 심하게 나르는 이 길동무들을.
그자들이 갑판 위로 끌어내리자마자
이 창공의 왕자들은, 어색하고 창피하여,
가엽게도 그 크고 흰 날개를
노라도 끄는 양 옆구리에 늘어트리네.
이 날개 달린 나그네, 얼마나 서투르고 무력한가!
방금까지 그리 아름답던 신세가 어찌 이리 우습고,
추레한가!
어떤 녀석은 파이프로 부리를 때리며 약을 올리고,
또 다른 녀석은 절름 절름, 하늘을 날던 병신을 흉내 내네!
시인도 그와 다를 것이 없으니, 이 구름의 왕자,
폭풍 속을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건만,
땅 위의 야유소리 한가운데로 쫓겨나선,
그 거인의 날개가 도리어 발걸음을 방해하네.
알바트로스는 새 중에 가장 큰 날개를 가지고 있어 수평비행 시 시속 127km/h을 기록하여 가장 빠른 새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지상으로 내려오면 큰 날개를 지탱하기 어려워 뒤뚱거리며 다니는 모습이 꼭 바보 같다 해서 “바보새”라고도 불린다. 보들레르는 감각적인 재능으로 평단에서 하늘 위 알바트로스였지만 질타받는 현실의 대중 앞에서는 갑판 위 절름이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각자 만의 무대에서 한 번쯤 주름잡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던가! 하지만 새로운 곳이라면 누구나 서툴기 마련이다.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구나 하늘 위의 모습과 지상의 모습이 같은 이들은 없다. 내가 멋지게 비상할 수 있는 그 무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면 다른 무대에서 나를 빠르게 적응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재정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방금까지 그리 아름답던 신세가 어찌 이리 우습고 추레한가!'
각자만의 무대는 다르게 찾아온다. 누군가의 무대는 저 높은 하늘이지만 다른 이는 아스팔트 길 일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날 수 있는 사람인가 달릴 수 있는 사람인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당하게 표지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마젠타 컬러 표지가 아이러니할 정도 보들레르는 자신을 너무 처량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객관적인 시점에서 멀리 떨어져 바라볼 수 있음이 얼마나 용기 있는 행동인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건 정말 용기사람만 할 수 있는 행동이다. 표지에 반을 차지한 핑크 베이지 컬러는 스킨 톤이다. 거추장스러운 겉치레 들로 나를 포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라는 의미는 아닐까,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때 용기 있는 자가 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객관적인 시선을 통해 자신이 가진 좋은 점과 부족한 점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나의 장점을 바라보는 따뜻한 신선이 담긴 레드컬러와, 나의 부족한 부분을 차갑게 바라보는 시선이 담긴 블루컬러가 모두 합쳐졌을 때 마젠타 컬러가 된다.
자신감은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인정할 때 표현 된다. 강렬한 저 표지 색은 보들레르의 과감한 주제선정과 문학적 표현의 장점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대중들에게 기피되는 현실의 단점을 함께 담았다.
이는 레드와 블루색이 모두 담기며 강렬한 마젠타 컬러로 위풍당당하게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