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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signBackstage Nov 08. 2024

잔인한 무관심

길에서 찾은 노력 <횡단보도 앞 풍경>

반려동물을 키우자는 끝없는 요구를 단칼에 거절했다. 다른 것보다 그들과의 이별이 두려웠다. 그런 이유라면 대표 장수동물인 거북이를 키우는 건 어떻겠냐는 둘째 아이의 설득에 귀여운 가족이 한 마리 생겼다. 관리만 잘해주면 50년도 산다는 거북이가 오늘 아침 숨진 채 발견되었다. 우리 집에 온 지 정확히 2년째다.

둘째 아이는 자기 생각을 잘 이야기하지도 않고 혼자 책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랬던 그가 집에 오면 가장 먼저 거북이를 보며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자기가 읽던 책을 보여주며 읽어 주기도 했다. 아이에게 좋은 친구가 생긴 것 같아 좋았다. 500원 동전보다 조금 큰 어린 거북이 한 마리의 발길질 몇 번에 집안이 따뜻해졌다.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과자 "꼬북칩'에서 이름을 따와 '북칩이'라 이름 지었다. 가끔 먹이를 안 먹거나 일광욕을 잘 안 하면 "꼬북칩!"이라고 정색하며 부르곤 했다. 마치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끔뻑이며 우리를 쳐다보는 귀여운 눈 맞춤이 즐거웠다. 하지만 서로 밥을 주겠다고 싸우던 시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서로 밥 주기를 미루던 그날은 정화기가 작동하지 않았다. 정화기 아래에서 수조 물을 빨아들여 정화장치를 거쳐 위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구조인데 물이 위로 뿜어져 나오지 않았다. 가끔 구멍에 큰 자갈이 끼는 경우도 있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이틀간 먹이 주는 걸 깜박했다. 그 이틀 동안 우리 가족 모두가 북칩이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이틀째 되는 날 먹이를 주려고 보니 북칩이가 어디에도 없었다. 수조의 높이가 높아 위로 탈출할 순 없었다. 북칩이는 정화기 밑에 깔린 채 발견되었다. 정화기 설치할 때 북칩이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북칩인 무관심이라는 잔인하게 무거운 무게에 눌려 숨졌다.

둘째 아이는 목이 축 쳐진 북칩이의 등딱지와 배부분을 붙들고 손가락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대로 빨대를 이용해 입에 숨을 불어넣는 인공호흡도 시도했지만 사후 경직이 왔는지 입은 벌려지지 않았다. 동물병원으로 빨리 데려가자고 통곡을 하던 아이의 눈물이 뚝 떨어져 북칩이 몸에 닿았다. 순간 숨이 돌아오는 기적을 잠시 바라며 흐린 시야로 북칩이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울던 우리 가족은 두 손 위에 조심스레 북칩이를 올려놓고 우리 가족에게 와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북칩이에게 거북이 관련 책 읽어주는 모습


무관심이 가장 잔인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말이다.


그동안 나는  참 무관심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철저하게 다른 이들과 나와의 삶은 분리해 살아왔었다.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상대가 부담스러워할 거라 여기며 말이다. 그리고 삶이 바빠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질 마음의 여유도 없이 살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 변화를 평소에는 잘 못 느끼고 다녔었다. 사람은 오랜 세월에 걸쳐 나이 들지 않고 어느 한순간 문득 나이가 든다는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 어느 날 갑자기 매일 다니던 길과 풍경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타는 엘리베이터엔 스마트패널에서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광고를 강제 듣기를 하며 스마트 폰을 보는 이들로 가득했다. 다른 층에서 누가 타는지 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가끔은 지인이 엘리베이터에 탄 줄도 모른 채 내리는 이도 있었다. 매일 지나다니는 횡단보도 앞에는 그늘막과 바닥신호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건너편 학교 앞 횡단보도에는  조명 불이 켜진 듯 담벼락에 노란 페인트 칠이 되어있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병아리 부화기 안에 따뜻한 조명이 켜져 있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안의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횡단보도 앞에서 따뜻하고 촉촉하게 바뀌었다. 


보행자들이 신호를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을 피하게 해주는 그늘막과 스마트폰을 자주 사용하는 보행자들의 신호 바뀜을 알려주는 바닥 신호등, 키가 작아 잘 보이지 않는 어린이들이 신호를 대기하며 안전하게 기다릴 수 있는 옐로카펫은 보행자들의 행동패턴을 관심 있게 살핀 결과물들이었다. 보행자들을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게 사고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공공시설이었다. 매년 평균 3천 건이 넘는 횡단보도 보행자 사고가 일어나는데 옐로카펫 설치 횡단보도에서 자동차 주행 속도가 17.5% 줄어들었다고 한다. 관심을 기울여 설치된 안전장치들은 당신의 생명은 소중하다며 따뜻하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https://blog.naver.com/jdind1233/222879581713
관심은 사람을 살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북칩이를 보낸 다음날 아이의 눈물은 멈췄고 그날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마음이 많이 정리된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아이였기에 괜찮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이 마음 깊숙이 있을 이별의 아픔이 곪지 않게 환기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의 행동과 말에 귀 기울이며 따뜻하게 이런 마음을 건네고 싶다. 

엄마는 네 아픔과 슬픔이 잘 지나갈 수 있게 항상 곁에 있을 거야, 
그리고 네 마음에서 절대 한눈팔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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