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찾기

두 협곡 사이에서 찾은 노력 <육각형 오두막>

by DesignBackstage

사고 싶은 청바지를 온라인스토어 장바구니에 두 달째 담아 놓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쉬도 때도 없이 뜨는 청바지 알고리즘 광고를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바구니에는 청바지 위로 수영복부터 귀마개까지 사계절 내내 고민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작은 결정에 쉽게 구매버튼을 못 누르고 망설이지만 중요한 결정은 빠르다. 최근 이사를 위해 집을 보고 온 뒤 일주일 만에 모든 이사일정을 잡았다. 공황장애가 왔던 퇴근길에 사직서를 내야겠다 마음먹고는 그 달에 퇴사했다.

항상 그랬다. 작은 결정에는 우유부단했지만 큰 결정에는 무모하리 만큼 대담했다.

작은 결정에 망설여지는 건 결국 주변 상황을 살피고 배려하려는 마음 때문이다. 맘에 드는 청바지를 사려하면 이달 아이 학원을 하나 줄여야 하는 건 아닌지, 너무 어려 보이는 스타일이라 다른 이들이 불편하게 느끼지 않을지 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큰 고민에 대해 빨리 결정할 수 있는 건 다른 상황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결정에는 내가 어떤 상황인지 내게 필요한 선택인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면 된다. 주변 목소리나 현재 상황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수 없이 뻗어져 있는 생각의 갈래를 하나씩 제거해 가며 생각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하지만 바삐 돌아가는 각자의 생활에 잠시 마음의 소리를 들어볼 시간과 여유를 찾기는 어렵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미네소타 대학의 조앤 마이너스 레비 교수는 천장 높이를 다르게 한 후 실험 참가자들에게 창의적인 문제와 구체적인 내용에 집중해야 하는 문제를 풀도록 했는데 천장이 낮은 방 참가자들이 내용에 집중하는 문제를 더 잘 풀었다고 한다. 모든 감각을 하나로 모으기엔 낮은 천장이 있는 비좁은 환경이 유리했던 것이다.


보스니아의 거대한 산 위에 작은 오두막이 서있다. 두 산 사이 협곡에 자리 잡은 이곳은 경이로운 대 자연의 풍경에 압도된다. 대자연 앞에 서면 나약해지는 자신을 느끼며 움츠려 들기 마련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5명이 비좁게 들어갈 수 있는 육각형 형태의 작은 오두막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더 뚜렷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필터 아키텍처의 비빅 조란 시믹 캐빈/ Bivouac Zoran Simic Cabin>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면 처음 만나는 자연의 웅장함과는 다르게 산 봉우리나 산 가운데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은 암석에 집중하며 풍경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만나는 세계도 그런 것 같다. 나를 감싸고 있는 많은 일들이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질 때 잠시 로딩이 느려지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가장 급한 것들부터 하나씩 집중하다 보면 생각이 하나로 모아진다.

육각형 오두막 구조를 보면 성인 한 사람이 온전히 설 수 없는 공간이다. 자연의 거대함과 대비되는 공간 압박감이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 ‘고민이 쏟아질 때 제일 먼저 나만의 오두막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앉는 순간 내 몸이 푹 꺼지는 소파가 될 수도 있고, 카페 안 기둥에 가려진 모퉁이 코너자리가 일 수도 있다. 이불을 뒤집어쓴 이불속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푹 눌러쓴 모자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어떤 공간에서 몰두했던가 기억을 되짚어보거나 돌아다니며 찾아보자. 언제든 갈 수 있고, 쉴 수 있는 오두막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의 오두막은 집 밖을 나와 걸어서 8분이면 도착하는 비엔나커피 전문점이다.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운영하는 이곳은 다른 카페보다 운영시간이 길어 언제든 찾을 수 있어 접근성이 좋다. 카페에 들어서면 붉은 벽돌로 세워진 기둥이 여러 개 있다. 그중 카운터에서 바라봤을 때 가장 왼쪽에 세워진 기둥 옆에 자리를 잡는다. 천장은 높은 편이지만 벽과 기둥사이의 좁은 공간이 꽤 안락하게 느껴진다. 카운터뿐 아니라 다른 테이블에서도 이 자리가 기둥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운동 후 추레한 옷차림으로 있어도 전혀 눈치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둥에 기대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책 주인공이 되어있었다. 이사를 가면 더 이상 이 오두막에 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공허해졌다. 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글쓰기와 업무에 집중했었지만 거품이 많이 올라간 비엔나커피를 마시며 천천히 맛과 공간 그리고 내 생각들에 대해 천천히 음미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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