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전공 시장에서 찾은 노력 <젠틀몬스터>
친구사이에서 모녀사이가 된 적이 있다.
대학교 때 유난히도 모든 게 잘 통하던 같은 과 친구였는데 식성도 취향도 비슷해서 짧은 시간에 금세 친해졌다. 항상 붙어 다니며 모든 일상을 공유했고 자연스레 패션스타일도 비슷하게 맞춰졌다. 유일하게 그녀와 나의 다른 점은 키였다. 나는 학과에서 가장 큰 키였고, 그녀는 가장 작은 키였다. 키 차이는 유일하게 맞춰지지 않는 부분이었다. 한 번은 그 친구와 우연히 같은 옷을 입고 온 적이 있었다. 폴로셔츠에 면바지 닥터마틴 신발까지, 모든 아이템이 똑같았고 친구들은 엄마와 딸이 맞춰 입고 온 것 같다며 웃었다. 그때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자주 입었던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입었었다. 유행을 따른다는 건 누군가에겐 시대감성에 민감한 트렌드세터로 보였을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자신의 스타일과 맞지 않아 친구를 모녀사이로 둔갑하게도 했다. 수동적인 패션이 사람을 우습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나의 쇼핑 아지트가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하는 홍대 앞으로 바뀌었다. 매장 직원이 추천해 준 블라우스를 입고 나왔는데 직원은 목 부분의 쭉 늘리더니 내 어깨에 툭 걸쳐 놨다. 난생처음 입어보는 오프숄더였다. 그리고 옷 포장할 때 쓰는 리본을 길게 자르더니 헤어밴드처럼 묶어주었다. 당시 외모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딱 두 가지의 큰 고민이 있었다. 넓은 어깨와 툭 튀어나온 광대뼈였다. 조금이라도 좁아 보이려고 움츠린 어깨와 옆머리로 한껏 가린 두 뺨은 그나마 나의 결점을 감출 수 있는 유일한 패션 스킬이었다. 그런 내게 어깨를 오픈하고 머리를 귀 뒤로 넘긴 채 서있는 건 속옷 한 장 걸치지 않고 서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거울을 본 나는 완전히 달라진 나를 볼 수 있었다. 넓다고 감췄던 어깨를 드러내니 오히려 얼굴이 작고 환해 보였고, 가려 놓았던 뺨을 드러내니 이목구비가 또렷해 보였다.
친구와 도산공원 쇼핑을 하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 있어 기웃거렸다. 그러다 유수풀 위 튜브처럼 떠 밀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공사가 덜 끝났는지 철재 구조물들이 드러나 있었다. 위험해 보여 돌아 나오려고 하는데 웬일인지 콘크리트 구조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보였다. 두리번거리다가 안내문을 발견했다. ‘이 공간은 <프레드릭 헤이맨>의 3D작업을 실물화해 놓은 설치작품으로 기존 리테일 공간이 가지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브랜드의 철학을 담았다.’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 하우스도산점이었다. 방문했던 2021년 당시 과감하게 펼쳐낸 공간을 보며 기분 좋은 충격에 빠지곤 이 브랜드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젠틀몬스터’의 수장을 맡고 있는 김한국 대표는 2011년 안경 사업을 시작했다. 안경은 ‘시장지배 사업자가 없고 브랜드도 없다’는 배경에서 호기롭게 시작했다. 그런 그가 직접 제품을 들고 다니며 영업을 했지만 매번 거절당했다. ‘내가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찾아오도록 직접 매장을 만들어보자.’라는 그의 결심으로 상업공간이 예술공간이 된 것이다. 그는 패션이나 건축을 공부한 적 없는 신문 방송학과 출신의 직장인이었다. 다니던 회사도 안경과는 접점이 없는 금융회사와 영어교육 회사였다. 안경사업에 뛰어들 때 주위의 불안한 시선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열정적인 그는 샘플작업을 하는 데에도 몇 개월이 걸리던 당시 국내상황에 많이 당황했다. 소비자가 샘플을 보고 제품 결정하기 쉽도록 다양한 종류의 안경을 빠른 시간 내에 샘플생산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샘플 생산만 가능한 중국 공장을 차리기도 했다. 또한 안경은 사람들이 직접 써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집으로 안경을 보내고 써본 뒤 판매를 유도했다. 기존 시장에서는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이었고 그는 그 시장을 몰랐기에 철저히 소비자입장으로 사업을 진행했던 것이다. 이런 시도들이 쌓여 지금의 ‘젠틀몬스터’가 된 것이다. 그는 비 전공자라는 단점을 완벽하게 자신만의 강점으로 만들어냈다. 그는 비전문가였기에 시장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파격행보가 가능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브랜드의 비범함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처럼 사업과 무관해 보이는 소믈리에, 미디어 아트전문가, 파티시에, 로봇 공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직원들과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이 모여 창의적인 폭발을 계속 시도하는 것이다.
비범 해진다는 것은 자신만의 특별함을 갖춘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특별함은 나의 장점을 부각하는 것보다 나의 단점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때 빛을 발한다. 김한국 대표는 자신은 비 전공자였지만 자신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워가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다기보다 부족한 부분을 여백으로 남겨두었다.
마치 비움으로써 더 중요한 것을 담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같았다.
패션에서 가장 중요하건 자신감 있는 태도라고 말한다. 익숙하지 않은 이상한 패션조합도 런웨이를 걷는 듯한 모습으로 등장하면 수긍하게 된다. 나의 단점을 감추기에 급급했던 그 시절 나는 나의 단점은 나만의 개성이고 오히려 매력으로 느껴질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이젠 어떤 자리든지 크게 위축되지 않는다. 누구나 부족한 부분은 있기 마련이고, 나의 부족함은 남들과 차별화되는 동력이 될 테니 말이다. 온화하고 순하다는 뜻의 ‘젠틀’과 괴물을 뜻하는 ‘몬스터’를 합친 ‘젠틀몬스터’ 상반된 단어의 조합은 브랜드가 가진 파격적이고 예상치 못한 것들의 조화를 말하고자 함도 있겠지만, 각자의 평범해 보이는 삶 속에서 감추고 싶은 것들을 드러내라는 뜻으로 느껴진다. 그 감춰진 그것들을 당당히 드러냈을 때 내 안의 괴물 같은 존재감으로 파격행보가 가능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