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팬티가 궁금해?

패션에서 찾은 노력 <말리아노 백>

by DesignBackstage

이사를 간다는 말에 지인들이 물었다. "집을 사서 가는 거야?" "융자는 얼마나 끼고?" "아파트 시세는 어떻게 돼?" 생각지 못한 질문공세에 눈앞이 하얘졌다. 졸업 후 첫 회사 면접질문으로 남자친구 있냐는 물음에도 당황하지 않았던 나였는데 말이다. 연차가 쌓이고 삶의 무게가 쌓이면서 내게 함부로 대하는 이들이 줄다 보니 잊고 있었다. 무례한 사람들도 같이 나이 들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상대의 마음이나 민감한 개인 사생활을 들춰내려 하는 이들은 어떤 마음일까? 상대를 정말 알고 싶은 마음일까? 단순 호기심일까? 친해지고 싶다는 신호일까? 어떤 마음이든 상대에 대한 배려는 없어 보였다. 속마음을 털어놔 보라고 채근하는 이들 앞에선 더 꽁꽁 숨게 된다. 하지만 서로의 속마음을 공유해야만 친해진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나도 이만큼 털어봤으니 너도 한번 이야기해 봐 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친한 관계에서 남들에게 터놓지 않는 이야기를 내게 하면 상대에게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관계가 단단해지지만 친하지 않은 상태에서 감당하기 힘든 비밀을 듣게 될 때는 어떻게 반응을 해줘야 하는지 어쩔 줄 모르게 고민하다가 어색하게 뚝딱거리곤 한다.


말리아노 25FW 컬렉션

국내에서는 아직 익숙하지 않지 않은 브랜드의 컬렉션을 우연히 보다가 나는 뚝딱거리다 못해 허둥댔다. 패션쇼 현장에서 모델 손에 들린 가방 때문이었다. 가방에 팬티가 끼여 있었다. 백스테이지에서 모델이 급히 옷을 갈아입다 속옷을 던진 걸까?라는 다소 황당한 생각을 하며 다시 한번 찬찬히 가방을 훑어보았다. 좌우대칭에 맞춰 꽉 낀 팬티는 꽤 성의 있게 가방에 다소곳이 입혀 있었다.

일반적으로 속옷은 다른 이에게 쉽게 보여주지 않지만 이 무대에서는 달랐다. 가방이 팬티를 입은 채 런웨이를 활보했다. 이탈리아의 브랜드 '말리아노'의 2025FW 컬렉션에서 선보인 이 제품은 쇼핑백 형태의 가방에 톤온톤 컬러의 팬티를 입혀 속옷이 보일 듯 말한 조화를 만들어냈다. 말리아노는 1980년대 이탈리아 반문화적 성향에서 영감을 받은 브랜드로 세련되고 경박한 매력을 동시에 지녔다는 평을 받고 있다.

. 말리아노 25FW 컬렉션

팬티가 왜 그 자리에 있는 걸까 생각하며 무대에 집중했다. 시니어 모델의 냉소적인 표정과 걸음걸이에서 세월을 견딘 단단함이 느껴졌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난 이 가방을 들고 거리를 활보할 거야!’라는 굳은 다짐이라도 한 듯이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비포장도로를 연상시키는 무대를 걸어가는 모델은 마치 자신의 생애를 걸어오며 느낀 인사이트들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 같았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내 속마음, 개인적인 사생활, 숨기고 싶은 기억들은 마치 내가 입은 속옷처럼 보여주고 싶지 않아. 부끄럽기도 하고 이런 내 상황을 사람들이 우습게 볼 것 같아 두렵기도 해. 하지만 나와 연결시키지 않고 드러내 보면 사실 별거 아니야. 이 팬티백처럼 말이야! 감추려고 하지 말고 한번 꺼내 봐! 팬티는 꼭 내 몸에 입고 있을 필요 없고, 네 속마음은 꼭 네 마음인 것처럼 말하지 않아도 돼! 일단 공개하면 오히려 별게 아닌 게 되거든! 그러면 숨을 필요도 없고 좀 더 자유로워진 너를 만나게 될 거야! 무거운 삶이 한결 편해지고 생각도 자유로워지는 걸 느끼게 되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 모든 게 사실 다 별거 아니야 라는 냉소적인 태도가 필요해! ’



‘그냥 다 별거 아니야!’라고 내게 다독여주는 말인 것 같았다. 누군가 특별한 의미 없이 던지는 말에 당황할 필요도 없지만 나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도 신경 쓰인다면 팬티백으로 시선을 분산시키고 온전한 나를 즐기는 것도 방법이다. 적당한 나의 치부는 모두가 볼 수 있게 들고 다니는 거다. 그러면 더 이상 사람들은 뭘 들추려 하지 않는다. 삶이 투명하게 아름답고 모든 게 완벽해 보일수록 흠집을 내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적당한 선에서 나의 귀여운 치부를 자연스럽게 드러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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