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두 가지조건

서귀포 기적의 도서관

by DesignBackstage
P20210730_210819242_EB31E936-122B-4807-80E5-B76DCB2208E7.JPG 서귀포 기적의 도서관

1. 바다를 매일 갈 수 있게 해수욕장과 가까울 것

2. 마당에서 뛰어놀 수 있거나 집 앞 산책길이 있을 것


도시 생활을 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학원생활과 반복되는 루틴이 아닌 자연의 모습에 흠뻑 젖어들게 해주고 싶었다. 매일매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하늘과 바람 아침마다 들려오는 새소리와 밤마다 지저귀는 곤충들 소리로 자연스럽게 잠이 드는 한여름밤의 꿈을 그리며 제주살이를 준비했다.


떠나기 전 내가 생각하는 제주살이는 이랬다.

수심이 낮고 파도가 잔잔한 금능 해수욕장이나, 평대리 해수욕장에서 아이들이 모래놀이를 하거나 물놀이를 하고 있으면 나는 흐뭇한 미소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고즈넉하게 적적할 지리에 파라솔을 펴고 앉아 모래사장 위 큰 타월에 배를 깔고 생과일주스 한잔을 마시며 노트북을 펼치고 글을 쓰는 장면.

사실 이는 내가 생각하는 퇴직 후의 로망이기도 했던 상상 속의 이 장면이 나를 강력하게 제주살이로 이끌었다. 나의 첫 번째 조건은 무조건 해수욕장가 가까울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7-8월 제주살이를 하면서 해수욕장을 간 것은 딱 2회에 그쳤다.

수심이 낮고 파도가 잔잔한 평대 해수욕장에서 아이들이 모래놀이, 물놀이를 하고 나는 흐뭇한 미소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까지는 순조롭게 진행했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파라솔이 비치는 곳과 아이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 가지고 있던 양산을 적당히 가져온 가방 사이에 끼워 넣고는 아이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고, 책이나 노트북을 펼치기에는 너무 더운 날씨일뿐더러 여유나 고즈넉함을 말하기에는 체감온도 40도를 웃도는 날씨였다. 바닷가에서 책이나 노트북을 펴리라 생각했던 내 생각은 사치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운 날씨에 나도 모르게 같이 물가에 뛰어들었고, 파면 팔수록 물이 차오르는 모래놀이를 하며 한라산 백록담 같다며 같이 삽을 들고 삽질을 시작했고 좀 더 빠르게 물을 채우기 위해 수로까지 만드는 열정을 쏟다 보니 해가 저물어 갔다. 해수욕을 끝내고 팔과 다리에 뒤엉켜 있는 모래를 바닷물에 대충 털어내고 숙소로 왔다.

P20210726_150301454_DAF798FC-CC5E-454D-BABF-D841AEB118E2.JPG

두번째 조건으로 여겼던 숙소 앞 산책길은 만족스러웠다.

숙소 앞 7번 올레길은 들어가는 초입이 대단히 웅장했다. 어른 키를 훌쩍 넘기는 좁은 현무암 돌담길을 따라가다 보면 갑자기 탁 트이는 시야와 눈앞의 바다 저 멀리 보이는 문섬까지 마치 기대 없이 동네 골목길을 걷다 우연히 고개를 들었을 때 만나는 딥 오렌지 컬러의 노을 장관을 본 것처럼 극대화되는 상황이 마치 판타지 영화 속 같았다.

해수욕장도 15분내에 위치하고, 숙소 앞 올레길을 걷다 만나는 바다 풍경은 제주살이의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켰다. 하지만 뭔가 마지막 퍼즐 조각을 잃어버린 것처럼 뭔가 불완전한 느낌이 들었다. 함께 일정도 세워보고 맛집도 가보고 며칠을 했지만, 그냥 긴 여행을 온 느낌이지 제주 살이 느낌의 오리지널리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비 오는 어느 날, 멀리 가는 일정이 부담스러워 주변에 갈만한 곳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서귀포 기적의 도서관"을 향했다. 도서관 앞에 있는 문부공원에서 아이들과 산책을 하다가 가게 되었는데 아이들 도서 위주로 도서가 진열되어 있었고 원형의 구조 가운데에는 중정이 있어 비 오는 풍경도 오롯이 실내와 에서 구경할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았다, 비 오는 소리 ASMR에 이끌리듯 도서관 구석에 각자 관심 있는 도서를 찾아와 한참을 읽었다.

여행지에 와서 읽는 책이라니, 예쁜 카페에서 잠깐 사진 찍고 조금 읽거나 혼자 여행을 어쩌다 가게 되면 숙소에서 이불 밖으로 발을 빼꼼 내밀고 읽는 독서와는 완전히 다름 경험이었다. 내가 처음 가는 도시에 속한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각자만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 그곳에서 또 다른 여행 계획을 세웠다는 것은 내가 책을 읽으며 책 속에 인용구 구절의 책을 연계해서 읽어가는 방식과도 닮아있었다.

제주 지형에 관한 책을 읽다가 기생화산의 하나인 산방산에 대한 정보를 읽던 둘째가 산방산을 보자고 제안했다.

억지로 산방산의 유래를 알려준 것도 아니고 본인이 고른 책에서 흥미를 느끼고 직접 체험하러 가자하니 순간 제주여행은 이 에피소드 하나로도 많은걸 얻어가는구나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초등학생 아이들과 제주살이를 계획하고 있다면 조건 하나를 더해보면 좋을 것 같다


3. 도서관과 숙소가 가까울 것


실제 동네 도서관 아이디가 있다면 통합 아이디 신청을 하고 가면 제주 도서관에서도 대여가 가능했다. 다음 동선에 반납하는 시간을 놓치까 두려워 대부분 보고 싶은 책을 보고 오는 형태였지만, 잠들기 전 읽을 책을 미쳐 챙기지 못했다면 대출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수 많은 에피소드 중 아이들과 함께 제주살이를 시작했구나 라는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제주살이 역할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