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퇴사를 하게 된 진짜 이유

내 에너지를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

by DesignBackstage

인테리어 관련회사 대기업 디자인실 차장 14년 차인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나의 마지막 퇴사 날의 모습은 상세하게 그려왔었지만, 퇴사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었다. 하지만 퇴사가 임박해 왔다는 시그널이 포착되면서 그 시기가 얼마 안 남았음을 알 수 있었다.


가장 행복할 때 느껴지는 불안함

생각해보면 퇴사 5년 전 처음으로 큰 프로젝트를 맡았던 그날 전력 질주하려고 마음먹은 그날,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퇴사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참 바보같이 연애할 때에도 가장 최고로 행복한 시기에 이별을 생각했었다.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걸 알기에 아쉬움을 남기지 말자는 생각에 애정표현을 더 적극적으로 했던 기억이 난다. 이 또한 비슷한 맥락인 줄은 모르겠으나 누구나 욕심내던 최고의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됐던 그날 나는 나의 퇴사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프로젝트 책임자로서 바통을 건네받은 순간, 어디 한번 끝까지 뒤돌아보지 말고 달려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돌이켜보면 퇴사하기 5년 전은 정말이지 너무 행복했다.


회사를 대표하는 홍보행사를 총괄하게 되어 무게감은 당연히 막중했지만, 회사 사명이 바뀌는 전 중요한 시기였기에 회사의 아이덴티티와 브랜드 이미지를 메이킹한다는 생각에 오너쉽도 생겼었다. 트렌드를 읽고 분석하여 업황에 따른 발 빠른 제안도 할 수 있는 이 일이 너무 즐거웠다. 심지어 팀워크도 좋아서 회의만 하면 무한한 아이디어와 영감들이 휘몰아쳤다. 업무내용들을 잘 정리해서 콘텐츠를 만들어 책도 내고 유튜브 채널도 운영해보자며 팀원들끼리 다양한 동기부여로 똘똘 뭉친 그야말로 무적팀이었다. 우리 팀의 업무를 회사에서도 중요히 여기며 든든한 예산지원으로 매해 업그레이드된 콘텐츠들을 만들어 제안할 수 있게 되었다. 업계에서 주목받는 일들도 종종 있었고 언론매체에서도 인터뷰 및 강연 요청도 꾸준히 이어졌다. 일에 대한 뿌듯함과 관록 할 만한 성과들을 뽑아내며 경영진 분들과의 함께하는 회의가 늘어나고 그야말로 내가 중요한 위치에 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참을 수 없는 나로서는 매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시도를 했었고 인테리어 업계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빅데이터, 스몰데이터 분석을 활용 안 인테리어 트렌드 분석과 인플루언서들과 함께 진행하는 자사 홍보 인터뷰 등 지금은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이슈들이지만, 그때 당시 업계에서 최초로 혹은 새롭게 진행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모든 시선이 우리 팀에 집중이 됐었고, 그렇게 화려하고 대담했던 내 회사생활에 조금씩 삐걱거림이 점점 강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나를 안 좋게 보는 시선들이 늘어났다.

칭찬과 험담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주로 상대방이 없는 자리에서 많이 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은 명확하다. 칭찬은 그 자리에서 휘발되고, 험담은 바이럴이 된다. 너무나도 고맙게도 나를 좋게 봐주시는 동료분들이 많았다. 업무 외에 다양한 인사이트도 함께 나누며 힘들고 고되지만 좀 더 발전적인 미래를 그려보자며 다른 팀의 동료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어 왔었다.


반면에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당연하다 생각이 든다. 수많은 슈퍼스타들도 안티팬들이 있고, 정치인들도 지지율의 등락이 있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평범한 직장인인 나를 다 좋게 보는 건 말이 안 된다. 눈에 띄게 나를 견제하고 좋지 않게 말하고 행동하는 이들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지도 좋게 보이지도 않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만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이 등을 돌리고 차디찬 말들을 건넬 때, 내가 그간 해온 업무방식과 태도들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반복되은 최고의 실적들로 주목받고 인정받았던 날들이 거세질수록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내 그림자처럼 느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왜 하지 못했을까. 때론 그들은 내게 쏠린 시선으로 중요한 업무를 해냈음에도 이슈가 되지 못한 사황들도 더러 있었다.


반성과 번뇌는 이미 험담의 바이럴이 퍼지고 난 뒤에나 돌이켜보게 되었다. 분명 함께한 이들 덕분에 이렇게 인정받는 날들이 오게 됐는데 말이다. 내가 고마운 제스처를 취했지만 그들에게 닿지 않은 건 분명 내 소통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고마운 감상적 표현이 아닌, 이성적인 성과와 명확히 드러나는 회사의 보상을 기대했는 줄도 모른다.

모름지기 회사란 이익을 내야 하는 집단으로 개개인의 이익도 당연히 이루어져야 지속 가능한 생활이 가능해지는 건 당연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주마 같이 달리던 내가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고, 업무의 이해를 위해 고민하는 시간보다 주변인들이 불편해하진 않을지에 대한 관계에 대한 시간을 더 많이 쓰게 되는 날들이 많아졌다.

회사 업무를 하는 것인데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가면서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주기가 짧아졌었다.


생각 없이 반복되는 무기력한 업무를 해야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난 좀 피곤한 스타일인 것 같긴 하다.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강한 갈증이 있었다. 같은 업무가 반복됐지만, 한 번도 같은 패턴으로 일한 적이 없었다. 프로세스를 달리하거나, 팀 구성을 달리하거아, 새로운 분석법을 도입하는 등 프로젝트마다 최적의 조합과 업무방식을 다각도로 시도했었다.

이런 업무 스타일을 가진 내게 정말 어려운 미션이 생겼다.

갑작스럽게 발령이 난 새로운 팀장은 업무 스타일이 대단히 보수적이었다.

새로운 것을 제안했다가는 너무 튀려고 한다. 예산은 어떻게 받아 올 것이냐, 예상실적은 어떻게 되느냐, 개런티 할 수 있느냐, 등등 다양한 이유로 거절되었다. 하지만 경영진 앞에서는 내가 제안했던 업무를, 심지어 안된다 거절했던 안들을 포장하여 자신의 의견인양 발표하고 칭찬을 받고 있었다. 뭐 팀장이니 팀원의 의견을 취합하여 대표로 발표함이 마땅하나, 그러면 그렇게 면박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시장에서 앞서가는 차별화된 디자인 전략 보고서를 쓰는데, 매번 다른 것에 대한 제안을 올리게 되면 여러 가지 이유로 반려되었고, 매년 연말마다 쓰는 연간 보고와 중장기 계획은 제목의 해당 연도 그리고 그해에 이슈 되는 키워드만 바꾼 채 같은 계획을 세워야만 안전하게 무사통과하게 되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팀장이 원하는 대로 의견을 제시하면 묵인되거나 폄하하는 발언을 하는 그와의 관계들 속에 의견 없이 시키는 일만 기계처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물론 이 또한 무의미하다고 보긴 어려웠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꼬박꼬박 적지 않은 월급도 나왔고, 비위만 잘 맞춰서 리액션을 해주면 품의도 곧잘 받고 회사에서 주는 복지혜 택또 한 나쁘지 않았다.

딱 한 가지가 부족했었다. 하지만 수많은 장점 중에 한 가지 그걸 내가 무시하고 다니면 그만이었다.


내가 없어진 것 같은 느낌

어느 날 문득 모니터 옆에 화초가 하나 보였다. 왼쪽은 파랗고 오른쪽은 누렇게 입이 변해있었는데, 소름 돋게 누런 잎은 팀장 자리 쪽을 향해 있었다. 그 누런 잎이 그냥 나 로보였다. 물을 못 마셨는지, 햇빛도 못 받았는지 말라죽은 그 잎이 나로 느껴져서 가슴이 먹막해졌다. 회사에서 꼬박꼬박 주는 월급(물)을 타 먹고 있지만 에너지(햇볕)를 받지 못하고 누렇게 변해서 덩그러니 움직이지 못하는 화초나 다를 게 없었다. 아직 생명은 있지만 언제까지 살아남을지 모른 채 시간이 맥락 없이 흘러갔다. 괜찮았다. 멍하니 무념무상으로 2달은 잘 버티며 회사를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숨이 턱 막혔다. 숨이 멎은 느낌이 아니라 진짜로 숨이 쉬어지지가 않았다.


출퇴근이 힘들어진 공황장애

내 MBTI는 ENTP이다. 갑자기 고백을 하게 된 이유는 나는 내 성향이 항상 밝고 나약하지 않으며, 매사에 긍정적으로 임하고 창의적이고 열정적이다 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물론 단점도 많다. 말이 많고 자뻑이 심하며 추진력이 강해 일에 적극성은 띄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제안도 많이 한다.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해야 하는 성격 탓에 이것저것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으로 진득하게 한우물 만파는 성격이 안되는 것도 단점이다.

여하간 회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상당히 많았지만 그것들이 내 삶을 흔들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상당히 많이 받고 있었다. 정신력으론 한계에 부딪혀 몸으로 신호가 왔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에 3 정거장을 갈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평생 처음 느껴본 신체적 변화였다. 집에서 회사까지 27개의 정거장.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데 3 정거장 정도만 지나면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고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출근시간은 평소보다 30분이나 빠르게 나와야 했고 퇴근시간은 3-40분씩 늦어지기 시작했다.


출퇴근 2시간 포함 10시간을 회사에서 누렇게 보내고 잠자는 시간 8시간을 빼고 오롯이 남은 나의 하루 6시간. 그 시간에 회사에서 발산하지 못했던 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소비해야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난 그 시간에도 불필요한 업무와 부당했던 업무 피드백을 곱씹어 되뇌었고, 회사에서의 무기력함을 이어가고 있었다. 난 버티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내가 나의 장점으로 보고 있는 추진력 넘치는 에너지가 갈 곳을 잃었고 나도 내가 누구인지 잃었다. 사실 길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끊어진 길을 걷고 있었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하기 4개월 전 나는 퇴사 위시리스트를 차곡차곡 만들어갔다.


내 퇴사의 진짜 이유는 나를 끊어진 길 위에서 더 이상 위험하게 서성이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진짜 내 모습을 되찾기 위해선 환경을 바꿔야 했다!만나는 사람, 일하는 공간, 모든 걸 바꿀 수 있는 건 바로 퇴사뿐이었다.



봄길_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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