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적인 내편 찬스
십 년 동안 해온 일 들이 사실은 아무 일도 아니 였단 생각이 드는 순간 몰려오는 거대한 한숨은
나를 단숨에 집어삼킨다. 허울 좋은 빈 껍데기에 둘러 쌓여 진짜 껍데기 밖의 세상을 직면했을 때,
너무 밝다 못해 따가운 햇볕에 온몸이 타들어 가는 기분.. 그렇게 오늘 몸살이 시작됐다.
10년간 다닌 회사에서 대단한 걸 하는 양 그렇게 온갖 생색을 내고 다녔던 것 같은데
회사라는 허울에서 벗어나 보면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만 같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랍시고, 인테리어 시공을 해본 것도 아니고,
스타일링 제안과 디자인 기획이 전부였던 것 같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한답시고,
여기저기 발품 팔고, 설득하고, 관련 책도 엄청 읽으면서 기어이 하고야 말았는데,
결과 앞에 부족한 부분이 보이고, 그냥 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존재 자체가 너무 소모적이라 생각되던 오늘 숨을 들이 마신 적이 없는데 숨이 멎은듯한 느낌이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에 대한 회의감과 나 자신의 방향성을 잃고 밥을 먹으며 무심코 던진 말
" 난 너무 일을 벌이는 거 같아.. 내가 벌인 일에 내가 갇히고 있는 거 같고..
"같이 밥을 먹던 동료가 무심하게 또 던져준다
"그게 네 강점이잖아" 순간 나도 몰랐던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들은 것 같았다.
맞아 난 일 벌이는 걸 잘하잖아, 그걸 왜 강점이라 생각 못했지?
너무 고마웠다. 내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그 친구가 해주었다.
가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봐 주기보단 호의적으로 바라봐주는 친구가 혹은
동료나 지인이 있다면 가끔 그들 찬스를 쓰기를 추천한다.
지하 125층까지 파고들어갈 만큼 암울하고 숨고 싶을 때, 그들은 상황에 따라 100층 정도는 거뜬히 올려 주곤 한다. 눈앞이 깜깜하고 암울했는데 거뜬히 올려준 지하 35층은 검붉은
건강한 핏빛 색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뜨거운 울렁거림과 기분 좋은 현기증을 끌어안고 배시시 웃었다.
힘들 때마다 왜 이렇게 나 혼자 해결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존재나 말에 의해 위로를 받을 때
나 자신이 너무 못나고 의존적인 것 같아 또 자책하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은 그냥 동료한테 질척거리고 기댄 채 끄적여 본다.
그래서 오늘 좀 글 판 한번 벌려 봐야겠다. 일을 벌이고 수습하고 반복되면서
그렇게 성장할 거라 믿는다. 그러다 보면, 나의 또 다른 강점이 생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