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집순이인 날, 밖으로 끌어당긴다. 왠지 밖에 나가줘야 할 것 같아서 괜한 핑곗거리라도 대서 나오기도 한다. 책 한 권 들고 나와 아무 벤치에 앉아 들여다보지만 그냥 나온 것 자체에 의의가 있다. 햇살 받으며 유유자적 걷다 보니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갓 새순이 돋은 나무에서 생명의 기운을 느끼니 풍성한 마음이 든다.
햇살에 반짝이는 연두
그러나 이 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지고, 감사함을 찾는다고 해서 불안이 없는 건 아니다.
불안의 정도는 늘 다르지만 생에서 불안은 인간에겐 숙명인 거 같다.
당면한 과제에 대한 불안,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면, 현실적 불안이다.
지금 내게 현실적 불안은, 임신의 문제.
내 나이 43세. 결혼이 많이 늦었고 바로 임신 준비에 돌입하지도 않았다.
시험관 진행 중으로 유산 이력이 있다. 이제 잘 될 수 있을까?
저렇게 새순을 피워낸 나무를 보면 왠지 모를 환희와 동시에 불안이 밀려온다.
그리고 나이 듦과 실존 자체에 대해 불쑥 떠오르는 불안.
또 내가 혼자임을 자각하는 그 순간의 외로움.
실존주의에서실존적 불안이라 부르는 그것.
지금에 와선 실존적 불안이 굉장히 피부로 느껴진다.
달라진 신체와 나도 모르게 조금씩 변한 정신세계로 인해 더더욱.
행복하거나 감사하다고 해서 인간의 삶에서 불안이 없진 않다.
확실히, 감사의 반대말은 불안이 아니다.
브런치가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까?
시험관을 진행하며부쩍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영화도 보고, 글을 쓴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블로그에 독후감도 남긴다.
책을 읽고 비판하는 글을 쓰더라도, 몰입 자체로 불안을 재울 수 있었다.
그래서 브런치에도 들어왔다. 블로그보다 상업성도 없고 더 좋은 거 같다. 계속 쓰자. 여기서도 쓰자.
그런데 오늘 많은 시간을 브런치 글들을 보면서 시간이 흐르니
여기서 과연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낮에 내가 올린 글이 조회수 2000에 가까워지면서 조회수를 확인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런데 조회수에 비해 왜 라이킷은 적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또 다른 불안의 형태가 아닌가?
애초에 이러려고 여기 들어온 것은 아니다.
또다른 아지트를 찾아 들어왔다.
무엇보다 브런치를 둘러보다가 정작 내가 픽해놓은 위대한 책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
브런치 글 쓰기(읽기) vs 고전 읽고 쓰기, 선택하라면 당연히 나는 고전 읽기를 선택할 거 같다.
브런치 글 쓰기(읽기)vs 읽어야 할 '김연수, 진은영, 박완서, 다키카와 가즈히로' 책 읽고 쓰기를 고르라면 후자를 선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