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문득,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어릴 때는 한없이 커 보였던 할아버지였다. 여기저기 주례를 다니시고, 사업을 왕성하게 하시던 모습도 멋졌지만, 항상 당차고 당당하고 바른 생각을 가진 모습이 너무나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건 겉모습에 불과한 것이고, 훗날 할아버지 사업이 기울고, 나중에 사업을 접으신 뒤 예전의 잘 나가던 모습이 아닐 때에도, 난 여전히 할아버지는 그 자체로 빛나는 분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내게 참 특별했는데, 그건 무엇보다 나를 전적으로 믿어준다는 그 든든함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줄곧, 내가 아기 때부터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너같이 교양 있고 멋있는 사람은 없다, 기품이 있다'라고 하셨다.
아기가 무슨 교양이 있겠는가 ㅎㅎ
어쩌면 그렇게 자라라는, 나에 대한 할아버지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정말 그렇게 믿고 계셨다.. ^^
내가 안 된 일이 있을 때도 할아버지는
"항상 당당하게 살아라, 너 같이 멋있는 여성은 없다"라고 이야기하셨고,
할아버지 임종 며칠 전, 제대로 걷지 못하고 이제 정신이 희미해져 가시는 와중에 내가 곧 결혼할 거라고 말씀드리니
"네가 고른 사람이면 분명 좋은 사람이겠지.. 안 봐도 우리 손녀딸이 잘 골랐을 거다"라고 하셨다.
그날 내가 할아버지께 갔을 때, 처음에는 내가 누구인지도 몰라보셨을 정도로 정신없는 모습을 보이셨는데...(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다시 내가 손녀딸이라고 하자
"아 우리 손녀가 이렇게 예뻤구나"라고 하시며 뒤이어하신 말씀이, 저 이야기였다.
가끔 하늘을 보면 할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살아계실 때, 항상 '나는 너네 잘되라고 하늘을 향해 매일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계신 곳에. 살아있는 동안에는 늘 하늘을 향해 있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사실 기독교 신자라고 하기도 힘들고, 무신론자라고 하기도 힘든 애매한 종교 관념을 갖고 계셨지만 그저 그 말씀에서, 우리를 얼마나 생각하신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땐 사실 그 말씀에 의미를 두진 않았는데, '하늘'의 의미가 이젠 다르게 느껴진다.
이 땅을 딛고 사셨을 때 하늘을 향해 기도 올린다던 그분이 이젠 이곳에 없지만 하늘 어딘가에서 날 지켜보시지 않을까 싶다. 하늘을 향해 기도드린단 얘길 하실 때 하늘을 바라보고 가리키시곤 했는데, 이젠 그 하늘에 계시겠지..
나는 '지지체계', '지지'라는 말이 좋다. 흔한 말이지만, 이 단어가 주는 울림이 좋다.
나의 지지체계 중 한 분은, 할아버지였다.
무척이나 그립고 보고 싶다..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부르시던 목소리가 그립다.
지지(支持)
1.
어떤 사람이나 단체 따위의 주의ㆍ정책ㆍ의견 따위에 찬동하여 이를 위하여 힘을 씀. 또는 그 원조.
2.
무거운 물건을 받치거나 버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1번의 의미로 사용할 때가 많지만, 결국 어원적으로는 2번의 의미에서 파생되었을 것이다.
무거운(?) 나를 받치고 버티게 해 주었던 힘.
지금도 그 존재가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다.
언제 만나더라도, 엄지손가락 치켜세워 주시며 우리 손녀딸 최고라고 해주시던 모습, 그게 은연중에 날 살아가게 해주는 힘이 된다.. 내가 한없이 힘들고 낭떠러지에 있는 거 같은 우울을 겪었을 때도 이런 보이지 않는 힘 덕분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 외에 내 자존감의 근원이 되는 분. 나의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