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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 Jul 17. 2022

주사 트라우마

난임과 공포의 주삿바늘

 아마도 어렸을 적 B형 간염 예방접종을 맞았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언저리 시절 보건소에서 항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피검사를 했다. 내가 어려서 핏줄이 잘 안보였던 탓인지 초보 간호사의 미숙 탓인지 간호사가 주사기를 팔에 찔러 넣고 당기는데 피가 딸려 나오지 않았다.


 간호사는 당황한 듯이 주사기를 팔에 찔러 넣은 채로 바늘로 이곳저곳을 쑤셨다. 결국 피는 나왔는데 내 팔에는 바늘구멍 몇 개가 생겼고 피가 몽글몽글 맺혔다. 다음날이 되니 팔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이날 이후로 나에게 주사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가벼운 예방접종 주사부터 피를 뽑는 주사까지 모든 주사는 나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막상 주사를 맞으면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 그래도 매번 두려웠고 매번 무서웠다. 그 와중에 살겠다고 주사 맞을 때 안 아플 수 있는 방법 하나를 찾았다. 바로 주사 맞기 전 주사 맞을 부위를 힘차게 때리는 것이다.


 특히 이 방법은 엉덩이 주사를 맞을 때 힘을 발휘한다. 엉덩이를 세차게 몇 대 때리고 주사를 맞으면 거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손으로 엉덩이를 때릴 때의 아픔은 익숙하지만, 주삿바늘을 엉덩이에 찔러 넣는 아픔은 익숙하지 않아 익숙한 아픔으로 익숙하지 않은 아픔을 대체해 버린다. 이러면 참을만하다.


 생각해보면 주사에 대한 공포는 절대적인 아픔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아픔과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주사에 대한 공포가 뜻하지 않게 옅어져 간다. 바로 난임시술로 인해서.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을 하기로 결정하기 전에 가장 두려웠던 것이 빈번한 주사였다. 심지어 배에 스스로 주사를 놔야 한다. 섬뜩한 공포였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주사를 극도로 무서워하는 내가?



 그런데 일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배에 주사를 놓을 때 뱃살을 있는 힘껏 쥐면 그로 인한 아픔이 생각보다 커서 주삿바늘의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유레카! 그리고 주사의 익숙하지 않은 아픔이 잦은 호르몬 주사로 인해 익숙한 아픔으로 바뀌면서 더 이상 주사가 공포로 다가오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난임으로 인한 잦은 호르몬 주사가 오래된 주사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난임으로 인해 임신에 대한 의학 정보에 관심을 많이 가지다 보니 배란, 수정, 착상 등 중학교 과학시간에 배운 생물학적 지식을 실생활에서 몸소 체감하며 아주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힘든 일이 있으면 그 안에서 분명히 얻는 것이 있다. 난임시술로 인해 내가 얻는 것은 주사 트라우마 극복, 의학 지식, 그리고 남편과의 끈끈한 애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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