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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팅달 Apr 19. 2022

107 부활절과 엄마의 전도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 (열왕기상 13:33-34)

북아프리카에 터를 잡았던 반달족은 이단인 아리우스주의를 신봉해 정통 기독교에 적대적이고 과격한 종족이었다. 

이들은 말년의 어거스틴이 거주하던 히포를 공격했었는데 어거스틴의 친구 포시디우스의 말에 따르면 어거스틴은 생애 마지막 몇 달을 반달족의 침입으로 비통하게 보냈다고 한다. 반달족은 당시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던 로마에까지 침공해 살인과 약탈을 저지르고 도시를 파괴했다. 반달족의 포악함은 널리 알려졌고 지금까지도 그 악명이 전해져 이제 반달이란 이름은 파괴 및 범죄와 동의어가 되었다. 오늘날 문화재나 공공시설을 파괴하는 범죄를 반달족의 행위와 같다고 하여 반달리즘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도 불명예스러운 이름이 나온다.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여로보암이다. 여로보암은 오늘 말씀에서와 같이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아 하나님께 심판받았다. 이후 성경은 불순종한 이스라엘의 왕들이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다"라고 표현한다.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불순종과 죄악을 대표하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명예로운 이름도 있다. 바로 다윗이다. 성경은 하나님께 순종한 왕에게 "다윗의 길을 따랐다"라고 칭찬한다. 우리의 이름도 많은 이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우리의 이름이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억되기를 소원한다. 


<감사 QT 365> 중에서



부활절 계란을 주면, 전도하기 쉽다고 말씀하시는 엄마. 

부활절이었던 이번 주일은 오래간만에 교회가 성도들로 북적였다. 교회에서 나눠주는 계란과 떡을 받아서 병원에 가져다 드렸다. 물론 엄마는 드시지 못한다. 하지만 간병하시는 여사님이 드시는 것이 곧 엄마 자신이 먹는 것과 같다면서 꼭 여사님 가져다주라고 부탁하셨다. 


그런데 오후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계란을 좀 더 가져오라고.... 교회에 남은 계란이 있으면 스무 개만 가져오라고. 마침 4시에 부활절 연합예배를 우리 교회에서 한다고 해서, 예배에 참석할 겸 다시 교회로 가서 계란을 가져다 드렸는데...  


"왜 내 이름 안 썼냐?"

"응? 물리치료사랑 간호사 선생님들 주려던 거 아니야?"

"전도하려면, 계란 포장지에 내 이름을 적었어야지."


아차. 엄마 이름 적는 걸 깜빡했다. 내가 요즘 정신이 이렇다. 

빼빼로데이, 크리스마스 때도 선물을 나눠주시겠다고 해서, 초콜릿과 과자를 포장해서 한 박스를 가져갔었다. 

엄마 이름을 적었으니 선물 받은 사람들이 엄마의 이름을 부르며 잘 먹겠다고 하셨다던데...

이번에도 그걸 원하셨나 보다.

사실 나도 꽃교엄마라고 불리는 것보다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게 더 좋다. 

사람들이 그냥 할머니라고 불러주는 것보다. 최 XX권사님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게 엄마로서는 좋으셨을 텐데, 내가 엄마의 이름을 적는 걸 깜빡했다. 그래서 여사님은 적어주셨다는데... 한글을 예쁘게 쓰질 못했는지 엄마는 오늘 아침에도 같은 말씀을 반복하셨다. 


"계란 나눠주면서 교회 가자고 했어?"

"응. 두 명을 잡았다. 이번 주일에 나랑 가겠대." 

"엄마랑? 엄마는 병원에 누워계신데 어떻게 가...  연락처 달라고 해. 내가 전화해서 데리고 갈게."

"내가 갈 거야... 그렇게 약속했어."

"코로나 때문에 엄마는 욕창이 더 번져서 휠체어에도 간신히 앉으시면서... 어떻게?" 

"... 그 둘을 구원시키려면 내가 가야 하는데...."


전도의 마음이 식지 않은 엄마. 그 마음이 어떨지 안다. 이미 엄마도 알고 계신다.  

담임목사님도 설교 때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마지막까지 병원에서 전도를 많이 하셨다고 하셨는데, 

엄마의 모습도 그러해 보였다. 

발음도 제대로 안되지만 마지막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예수의 복음을 전하시겠다는 고귀한 사명... 

현재 간병인 여사님과 병실에 계신 또 다른 여사님을 전도한 엄마. 더 많은 알곡들이 병원에 있다면서 그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한다고 얘기하셨다.

그런 엄마의 열정을 난 전화로만 응원할 뿐이다.  


어제부터 거리두기가 끝났는데. 

언제쯤 요양병원에 면회가 가능할는지...

엄마 손을 만져본 건 1월 대학병원 퇴원 날이 마지막이었다. 엄마와 영상 통화하는 것도 그나마 감사하지만 엄마의 촉감이 너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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