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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팅달 May 20. 2022

113 주가 주신 나의 직업이 맘에 든다

나단이 다윗에게 아뢰되 하나님이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바를 모두 행하소서 그 밤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야훼의 말씀이 너를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역대상 17:2-4)


존 로스 선교사님은 1872년 중국 만주로 파송되었다가 대동강에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님의 소식을 듣고 조선 선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선교사님은 조선인들을 찾아가서 한글을 배웠고 한국인 번역가들이 한문 성경을 한글로 옮기면 그것을 헬라어 성경과 대조하여 다듬는 방식으로 1882년 최초의 한글 성경인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를 출간했다.  

또 선교사들을 위한 한국어 교재를 출간했고, 안식년에도 조선을 소개하러 다니는 등 조선 선교에 힘썼다. 일각에서 그에게 중국 선교에 더 전념하라고 조언할 정도였다. 로스 선교사님의 헌신으로 조선 땅에는 선교사의 입국보다 먼저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 보급되었고 그로 인해 생겨난 그리스도인들은 후에 선교사들을 도와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로스 선교사님이 중국 선교에 전념하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의 뜻은 로스 선교사님을 통해 한국 선교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다윗은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은 달랐다. 이렇게 하나님의 계획이 사람의 계획과 다를 때 우리가 할 일은 사람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순종하라. 그러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감사 QT 365 > 중에서



내가 20년째 작가라고 불리며 살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학생 때 교내 글짓기 대회에 나가면 무조건 상을 탔던 것 맞지만,   

그렇다고 특출 나게 글을 잘 써서 작가가 돼야지 했던 건 아니다.   

만약 작가가 되고 싶었으면 국문과나 문창과를 갔겠지... 난 국제학부 중에 중국학을 전공했다.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학마다 "국제학"을 지원해주는 프로젝트가 있었다나 뭐라나..)  

한문을 좋아하다 보니 중국에 관심이 많았고, 92년 한중 수교가 됐기 때문에 전망이 매우 밝아 보였다. 그 당시엔 중국에 대한 자료가 다양하지 않아서 좀 생소한 학과임은 분명했다. 그런데 경쟁률은 엄청 높았다. 그 이유는 3학년 2학기 때 전공자 모두가 중국 유명 대학의 교환학생으로 연수를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학은 중국, 국제관계학 등의 타 학과는 캐나다) 학과 전체 학생이 연수를 가는 것이니 만큼, 복수 전공하겠다고 지원하는 타 과생들도 많았고, 편입생들도 많았더랬다.


그런데... 이 좋은 기회를.... 난 가지 않았다!  

교수님들이 설득하셨지만 내가 못 가는 이유를 듣고 나선 어이없어했던 학과장님의 얼굴이 떠오르는구만.


이유인즉슨 3학년 때  

기독동아리 학교 대표!

동아리 본부에서 홍보팀장!! 을 맡고 있었고

2학기에는 우리 학교에서 CCM 콘서트를 하기로 내가 기획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였었다.

선배들로부터 2학년 말에 리더 제안을 받았을 때,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순복 하겠다고 결심은 했지만.

톡 까놓고 솔직히 교환학생을 포기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학과 동기들도 진짜 황당해했었으니까.


결국, 나만 중국에 가지 않아서... 나와 편입생+복수전공자들을 위한 강의가 생기기도 했다.   

위로가 됐던  교수님들이 중국학에서 나만 전공자니까, 대부분 A+ 주셨고,  학기는 성적 장학금을 받았다^^ 음하하하하하^^

중국에 갔던 대부분의 동기들은 학교를 휴학하고 중국에서 1년을 더 공부했기 때문에 난 동기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채 졸업을 했다. (당시 동기들은 중국어를 유창하게 말했다. 졸업 후엔 중국 관련 일을 일한다는 소식을 들었긴 했다)


신기한 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나의 미래를 포기했는데... 하나님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직업의 세계를  열어주셨다.


대학원을 준비하던 중 (IMF가 닥치고, 졸업생 취업이 약간 주춤 해던 때).   

친구 하나가 방송아카데미에 관심 있다며, 너도 보겠냐며  나에게 홍보책자를 건네줬다. 순간 확 끌렸다.   

아는 분의 소개로 <뽀뽀뽀> PD를 만나 PD가 되고 싶다고 했더니, 그 분이 뜬금없이 구성작가가 돼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열심히 하면 장기간 할 수 있는 괜찮은 직업이라고 조언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펼쳐진 방송작가란 직업의 세계.  

곧바로 MBC <일밤>에 막내작가로 취업이 되면서.  

여차저차 많은 프로그램을 맡았고, 분야를 바꾸는 과정에서 준비하는 이 순간도 작가님으로 불리며 글을 끄적이고 있다. 또 교회 다니는 선후배 작가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서로의 작품을 위해 방송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내가 작가가 된 그 중요한 계기는

중국 유학을 가냐 마냐였다.

만약 내가 중국을 갔더라면?  

아마 또 다른 나의 인생이 펼쳐졌겠지만, 지금처럼 매일 성장하고 있는 나는 없었을 것이다.




난 지금도 하나님이 방송작가란 직업을 나에게 주셨다는 것도 확신한다.

물론, 어릴 때부터 방송작가를 사모했던 친구 작가들은 그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지금도 인기 있는 프로를 만들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어쨌든, 이 직업을 통해 언제든지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5.5 교회 창립 64주년 음악회를 10년 만에 맡게 되었는데... 그 준비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 내 몸이 감각적으로 스킬을 기억한다는 거다. (많이 신기했다.)


만약 22살의 나를 만나 조언을 할 수 있다면 , 지금의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하나님께 순종했더니. 나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준비되어 있었어. 정원아 고민하지 말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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