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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팅달 Jun 14. 2022

133 500일의 희망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1991년, 교회에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하여 전신 마비가 된 청년이 있었다. 

출처: 한국일보 2020.6

이 청년은 장애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자신을 빨리 주님 곁에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주신 응답은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이었다. 이 말씀은 그에게 소망이 되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굳세게 하시며 도와주시고 붙들어주실 것을 믿었다. 


이후 그는 눈의 움직임을 감지하여 컴퓨터에 글자를 쓸 수 있게 만들어진 특수장치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라인을 통해 신학 과정을 마치고 문서 선교사로 귀하게 쓰임 받게 되었다. 현재 미국 메릴랜드주에서 문서 선교 사역을 하고 계신 윤석원 선교사님 이야기다. 윤선교사님은 박수민 선교사님과 함께 쓴 책.  <꼼짝할 수 없는 내게 오셔서>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너무 힘들고 주저앉고 싶을 때 나의 빈 잔을 가득 채워주시는 분, 나의 사랑, 나의 힘이 되어주신 주님. 오직 그분만 내 뜻과 정성 다해 찬양하며, 한 걸음씩 주님께 다가가겠다" 


비록 그의 육신은 꼼짝할 수 없을지언정.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진정한 자유와 소망을 누리며 위대한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주님과 함께할 때 우리의 삶은 오직 소망과 감사로 채워지게 된다.


<감사로 시작하는 365> 중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생각한다. 나를 위해 죽으실 때 얼마나 아프셨을까. 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야.”     


엄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날부터 벌써 500일이 흘렀다. 

물 한 모금 입으로 먹지 못해도 엄마가 지금까지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다.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이틀 앓고 3일째 죽는 것이 행복한 인생이라는 뜻)를 

늘 외치셨던 것이 어제 일만 같은데,,, 500일이나 누워계시니 많은 생각이 떠오르실 것 같다.      


“오늘 아침 TV에서 애 엄마가 나처럼 멍청하게 누워있고, 고등학생 딸은 엄마가 죽을까 봐 얼마나 울던지.... 꼭 널 보는 것 같아서 내가 많이 울었다. 넌 그러지 마. 내가 죽더라도 울지 마!”     


엄마가 울지 말라고, 손을 움직이셨다. 엄마의 그 말에 또 한 번 울컥.

영상통화 밖으로 눈물을 훔치곤 얼른 화제를 희망으로 바꾸었다.      


“엄마! 집에 못 오신지 500일이나 된 거 있지? 얼른 오셔야지.”

“(집은) 잘 있냐?”

“당연하지. 집주인이 없으니 내가 청소하느라 힘들구만.”     


오늘처럼 말씀도 잘하시고, 정신이 또렷한 날이 이어지다가도 

갑자기 의식을 잃어 응급실에 가야 되는 순간이 반복되어.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엄마가 버틸 수 있는 힘은

딸의 규칙적인 연락이라며 좋은 딸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최악의 상황인 것을 환자 본인이 가장 잘 알지만, 

자신의 회복을 바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절대 희망의 정신줄을 놓지 않으신다고도 말씀해 주셨다.      


얼마 전, 요양병원에 계시던 어머니를 천국 보낸 선배와 점심을 먹었다.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누워 계신 부모님들이 삶을 놓는 이유는 

자식이 어느 순간 연락을 하지 않는 것. 가족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란다. 

또 자녀들이 돈이 없다고 병원비 걱정을 하는 순간에도 삶의 의지를 꺾어버린다고...

그래... 충분히 그럴 것도 같다.  

    

“이번 주만 벌써 셋이야. 5층에서, 7층에서, 어제는 내 옆에 할머니가 가셨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엄마는 그분들이 돌아간 것을 얘기한 것이다. 

좋은 소식보다는 몇 층에 누가 죽었다는 얘기뿐이고, 

코로나로 인해 가족도 지인도 친구도 만나지 못한 채 병실 안에만 갇혀 있으니 

얼마나 우울한가. 

병원 안에서는 희망이 있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엄마가 매일 기도와 예배로 

간병인들과 병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려는 

그 열정을 보며      

‘소망이 있으셔서 다행이다.’

'감사하고 고맙다'

'자랑스럽고 멋지다'

라고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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