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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팅달 Nov 12. 2022

219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구원이다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은 구원이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데살로니가후서 2:12-13)


1976년에 개봉된 <카산드라 크로싱>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제네바에서 스톡홀름까지 유럽을 횡단하는 한 열차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건은 이 열차에 전염력이 매우 강한 폐렴성 흑사병에 노출된 사람이 타면서 시작된다. 치료제가 없는 질병이 유럽 전역으로 퍼질 것을 우려한 당국자들은 승객들이 타고 있는 열차를 폴란드에 있는 격리소로 향하게 한다.

그런데 사실 이 계획에는 기차가 도저히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낡아 이미 패쇄가 된 다리인 카산드라 크로싱을 열차가 통과하게 하여 모두를 몰살시키려는 무서운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기차는 결국 죽음의 낭떠러지로 떨어질 다리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열차 속 승객들의 모습은 마치 사탄에게 속아 멸망으로 끝날 길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의 실존처럼 느껴진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구원하지 않으셨더라면 우리 역시 절망적인 질병이 퍼져나가는 열차를 타고 죽음의 다리를 향해 나아가는 인생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 속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오직 기차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었고 그들을 괴롭히던 무서운 바이러스는 바깥의 풍부한 산소에 노출되면 죽는 것에 불과했다. 아직도 죽음의 열차를 타고 달리는 이들에게 우리는 힘써 전해야 한다. "복음을 듣고 주님께로 나아오십시오! 생명과 치료가 있습니다!"라고 말이다.


<감사QT365> 중에서


<카산드라 크로싱> 이 영화의 결론은....

열차안에 있던 주인공(신경외과의사)가 기차의 앞칸과 뒷칸을 분리!

주인공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죽음의 희생 덕분에 열차 뒷 칸에 있던 사람들이 목숨을 건진다는 얘기다.

(앞 칸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채 괜히 다 죽었다)  

이 바이러스는 열차를 세우지 못하게 하는 장치로 사용됐을 뿐이고.

치료제는 그냥 "산소"였다.

격리시킨다고 비닐텐트를 쳐서 사람들을 가둬두지 말고,

바람을 충분히 쐬게 하면 자연스럽게 회복된다는 얘기인데...

우이씨! 장난하나~~~

그럼 시작부터 바이러스로 기승전결에서 '기승'을 부풀려놨냐고!!!

스토리가 너무 단순하잖아!

깔아둔 장치는 많지만, 아주 아쉽다(물론 출연진과 몇몇 캐릭터들은 좋았음)


이 영화가 정부의 공작에도 열차승객들의 사투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졌다는 얘기로 끝난다면.

비슷한 형태지만. 조금 비튼 한국 영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에 <비상선언>이란 시나리오를 봤는데, (영화는 못봤는데 같은 내용이겠지?) 형태는 매우 비슷한 구조다.

하와이행 비행기에 이상한 놈이 탄다.

그 놈은 독성 바이러스를 퍼트렸고, 비행기 승객들은 하나 둘 감염이 시작된다.

승객들끼리 적이 되고, 조종사는 감염되어 죽고, 정부는 이 비행기를 폭파시켜 더 이상의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게 막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다른 점은

비행기안에 첫비행을 시작하는 스튜어디스 딸이 탔기 때문에 치료제를 절박하게 찾아 나서는 형사아버지가 있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식을 살리겠다고 실패한 조종사로 낙인찍혀 인생포기한 남자가 다시 비행기조종석에 앉아 승객들을 구한다는.... 아버지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물론 연인도 있고, 모녀도 있고, 불륜도 있고, 임산부, 입양모의 다양한 이야기도 포함됨)


"아버지의 사랑"이란 정서가 모두를 이 영화에 공감되게 만든다.

그러고 보니 한국영화의 테러영화엔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이 다 들어가 있는 것 같다.

<부산행> 은 아버지의 사랑. <감기>는 어머니의 사랑. <괴물>은 가족의 사랑 등등..

자식의 죽음을 차마 볼 수 없는 부모의 사랑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하는 힘 같다.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면서까지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한 그 사랑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사탄마귀는 한 영혼이라도 천국이 아닌 지옥에 보내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다 써서 유혹한다.  

하지만 믿음으로 구원받은 크리스천은 "끝까지"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사단의 모략이 바이러스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영화의 엔딩처럼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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