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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팅달 May 20. 2024

보호자님, 어디 가셨어요? 빨리 오세요.

병원에서의 이틀째 되는 날 새벽 5시.

1층 병원로비에서 쪽잠을 자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보호자님, 어디 가셨어요? 환자가 찾아요."

"(힘없이) 1층 로비에 있어요. 지금 갈게요"

"(나무라듯) 병실에 다른 환자분들이 시끄럽다고 난리예요. 보호자가 자리를 비우면 어떡해요. 빨리 오세요!"

"죄송합니다."


엄마와 병원에 있는 2박 3일 동안

나는 4시간도 잠을 못 잤다.

식사도 하루 한 끼 삼각김밥으로 겨우 때우고, 잠까지 못 자니까

별거 아닌 거에도 스트레스가 심해져서 엄마에게 엄청 짜증을 냈다.

그런 내가 너무 싫어서... 죄책감이 들어서....

1층에 잠깐 내려와서 쉬고 있었던 건데, 엄마는 그 시간도 내게 허락하지 않았다.

 

"(섬망) 전도사님... 우리 정원이 불러주세요. 정원이 아빠를 불러주세요..."

"엄마 나야! 내가 정원이잖아. 아빠는 천국 가셨고~"

"(섬망) 내 딸 정원이 좀 불러주세요...."


2박 3일 내내 엄마와 입씨름을 했다.

댓구를 안 해버리면 되지만 어떻게 그래...

제발 정신 차리라고 했지만, 엄마는 계속 엉뚱한 소리만 이어가셨다.

그리고 몸이 불편하니까, 나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허리가 아프다~ 다리가 아프다~ 목이 아프다~ 대변을 눴으니 기저귀를 갈아달라~ 가래를 빼달라~ 체위를 바꿔달라고 계속해서 요구를 하셨다.

아...

2년 전 대학병원에서 엄마를 간병했던 때가 생각나는군.... 그때도 이랬는데...


처음 하루는 견딜만했다.

그러나 결국 삼일째 되는 새벽엔 나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고,

온갖 짜증을 다 낸 뒤에, 잠을 자겠다는 명분으로 1층 로비로 내려온 것이다.

로비에 쭈그려서 1시간이나 잤을까? 간호사가 어딨냐면서 전화를 해댔다.

에효... 내가 잘못했지...



의사파업으로 인해 엄마가 입원한 주말은 의사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병동을 지키는 간호사들만이 피곤에 쩌든 채 기계적인 응대만 하고 있을 뿐...

섬망이 심한 엄마를 병원에서 어떤 처방을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쭈욱....

의사가 회진 돌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할 뿐이었다.


엄마가 계신 병실로 가려는 순간~

갑자기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잠깐만!!!
엄마가 왜 이 병원에 있어야 하지?

집에서 20킬로나 떨어진 병원이고, 엄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병원인데...

의사는 또다시 피검사, CT, MRI 다시 찍자고 할 텐데...

왜 이틀 동안 한 번도 못 본 의사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거지?

퇴원하자!

엄마가 깨어나셨으니까, 엄마를 잘 아는 병원으로 가면 된다!!

 

역시 한 시간이라도 잠을 자니까... 두뇌회전이 되는구만...


엄마에게 퇴원하자고 얘기하려고 병실에 왔더니

엄마는 나를 찾다가 지치셨는지 잠들어 계셨다.

그러나 엄마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잤다며,

나머지 다른 환자들이 나 들으라는 듯 수군댔다.  


"나는 자식 걱정 안 시키고 죽을 거야. 저렇게 자식 고생시키면서까지 살아서 뭐 해...?"

"콱 죽는 게 나아.. 내 몸 하나. 제대로 못쓰는데 언제까지 생명줄을 쥐고 살 거야...?"


헐...

무릎수술한 80세가 넘은 할머니와 맹장수술을 했다는 70대 노인이 엄마를 보면서 혀를 차고 있었다.

분노가 치솟았다! 

꽥~ 소리를 지를까?

아니지... 엄마 때문에 밤잠을 설친 어르신들이니까 참기로 했다.


"우리 엄마도 자식 걱정 안 시키려고 했던 분이셨어요. 엄마가 말년에 이렇게 되고 싶어서 그랬겠어요?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씀하지 마세요!"

 

하고는

커튼을 확 쳐버렸다.

순간 뻘쭘함으로 인한 고요함이

병실을 감돌았다.



"정원아. 왜 울어?"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고 있는데...

엄마가 섬망에서 깨서

나를 인자하게 보고 있었다.

괜찮다고, 울지말라고...

엄마는 오히려 나를 걱정하면서 미안하다고 하신다.

이 아이러니함....

진짜 미치겠다....


잠시 뒤 의사가 회진을 돌았다.   

2박 3일 만에 처음 봤다. 의사얼굴을....


"드시던 약도 다 끊으세요! 어차피 어머니도 이렇게 사는게 괴로워요. 약으로 버티시는 거예요. 진정한 효도가 뭔지 잘 생각해봐요."


의사는 항생제 처방을 해주겠다면서, 냉소적인 말투로 퇴원하라고 했다.

음....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정말 아무 관계없는 의사가 객관적인 시선으로 조언 해 주는 것이 오히려 정답일지 모른다.

선택...

결정...

정말 많이.... 힘들다.


왜 엄마가,

왜 내가...

이렇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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