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팅달 Dec 18. 2021

016 이 땅에서 마지막 고백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에 대해서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시 95:2)


한경직 목사님은 영락교회의 담임목사로 시무하실 때

젊은인들을 위한 교육 사업과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들을 위한 구제 사업에 힘쓰셨다.

목사님은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많은 존경을 받으셨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책을 쓰시라고 권했지만


"나 같은 사람은 책 쓸게 없어요. 내가 무슨 책을 씁니까? 나에 대해서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라고 말씀하시며 한사코 거절하셨다. 그런데 80세가 되셨을무렵 다른 책은 못 써도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말은 남겨야겠다고 하시며 책을 쓰셨는데 그것이 바로 <나의 감사>다.

이 책에서 목사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떠오르는 말이 '감사'였습니다. 올해도 내 나이 80인데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가슴에 사무치는 것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나님 감격스럽습니다'입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고, 너무 넓고, 너무 높고, 너무 깊고. 너무 위대합니다. "


천국 가는 길을 앞두고 우리가 하나님께 고백할 말은 무엇일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감사밖에 없다.라는 고백이다.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며 우리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삶은 없을 것이다.  

<감사로 시작하는 365> 중에서



에스컬레이터에서 굴러 떨어져 심한 부상을 입어, 한 참을 병상에 계시다가 소천하신 엄마의 친구분이 계셨다. 나이가 들면 다리에 근육이 빠져서 걷는 것이 힘드신 모양이다. 그분은 엄마와 가장 친한 친구셨고, 영락교회 권사님이시기도 했다.

생전에 한경직 목사님을 굉장히 존경했기 때문에 엄마에게 한 번만 같이 예배드리자고 하셨단다.

휠체어를 타고 강단에 서신 한 목사님을 뵌 적이 있다면서, 말씀이 좋았다고 하셨다.


한경직 목사님은 기독교에서는 매우 유명하며, 존경을 받는 분이다.

소천하신 뒤에 방송된 KBS 다큐멘터리를 보니 남한산성 기슭 6평 남짓한 거처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고 했다. 평생 통장 한 번 만들지 않고 소유하려 하지 않았던 한 목사님이 남긴 것은 40여 년 동안 쓴 1인용 침대, 안경, 헤진 양복 몇 벌, 낡은 성경 책이 전부였다는 것.

그의 검소한 인생철학은 지금도 설교 때 많은 목회자들이 인용하고 있다.

그것만 들으면 참 훌륭한 분이다~ 싶은데....


"몰랐어. 그랬냐... 아이고... 그래도 훌륭한 분인 건 맞아"

"검소하게 사셨고, 사과를 했다니까 그나마 덜 욕먹는 거야"

"정원아. 교회에서는 그런 말 하지 마. 좋을 거 없다"

"알건 알아야지. 모르니까 모른다고 또 욕먹어!"


사실... 한 목사님은 역사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은 분이기도 하다.

다행히 돌아가시기 전에 사과를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교회에서는 왜 그런 과오는 말을 해주지 않는지... 뭐 비난받는 말을 해서 좋을 것은 없지만 그래도 알 건 알아야 하지 않나 싶다.

엄마는 말을 조심하라고 하셨지만, 난 교회 식구들에게 얘기한다.



죄도 없이 살육되어간 수많은 영혼들에게 미안하고, 잘못된 이념교육으로 죽을 때까지 몰랐던 서북청년단 원들도 안타깝기도 하고... 이 역사의 한 대목을 알게 된 순간,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역사교육이 중요하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래야 더 잘 믿을 수 있고, 더 잘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엄마는 떨리는 손가락을 입술에 대셨다.


"하지 마. 좋을 거 한 개도 없다. 좋은 말만 해, 안 그럼 잡혀가, "    

"누가 잡아가? 물어보지 않으면 말 안 할게"


엄마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초등학교 때 식민교육을 받았고, 청소년 때는 한국전쟁을 겪었다.

참봉이셨던 할아버지. 최 씨 가문이 그 마을을 지배했는데....

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봉건사회에서 살았던 엄마는 가족 같았던 머슴(?)이라 불렸던 분들이 6,25 때 친인척을 살육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셨다. 미군이 들어오니 또 전세가 뒤집혀 감옥에 갇혀 돌아가시고...


엄마는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그 광경을 직접 경험했던 세대였다.

(아빠는 함경남도 사람인데. 그런 건 참 아이러니함^^)

혼란스러운 미 군정시기와 군사 정권 시대를 지나면서 호남사람이라고 억울한 일도 많이 당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2016년 탄핵 촛불 때,

절대 광화문에 나가지 말라고... 이유는 잡혀간다고 하셨었다.

엄마 마음이 뭔지 안다.

그래도 난 나갔다. 대한민국 역사의 한 장면을 내 딸도 알아야 한다고.


"엄마, 역사는 바로 알아야 해! 해석도 중요하고... "

"넌 아무것도 모른다..."

"엄마, 지금은 민주주의 사회야, 걱정하지 마. 말조심할게."


웃으면서 엄마와 전화를 끊었지만, 한 숨이 크게 쉬어졌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 까지. 고생해 준 엄마 아빠의 세대,,,,

특별히 엄마가 왜 젊은 시절에 선교사가 되겠다고 선택했던 과정도...

여러 모로 많은 것들이... 이해하게 된다.

엄마아빠 고생하셨습니다.

다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