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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스 Feb 15. 2023

영국은 파업 중

각박한 영국인들의 삶을 목격하다

 내가 공부할 곳인 셰필드에 오고 나서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시내 큰 길가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쯤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에 압도당해 나는 말문이 막힌 채로 행진하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러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러던 찰나에 한 영국인 아주머니가 나에게 팸플릿을 건넸다. 팸플릿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시위와 관련된 것이었고 그분과 대화를 통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영국은 2011년 이후 최대 규모로 공공 부문 노동자들이 동시에 파업을 하는 중이란다. 파업에 참여하는 인원은 전국적으로 약 50만 명. 영국은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겪는 중이다. 물론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전 세계 곳곳에서 물가 상승으로 인한 몸살을 심하게 앓는 중이다. 그러나 영국은 상태가 상당히 심각한 듯 보였다. 안 그래도 살인적인 물가로 세계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곳인데 말이다. 영국은 물가 상승이 엄청난 속도로 진행 중인데 그에 비해 사람들의 임금은 기존과 큰 차이가 없다. 이는 실질적으로 버는 돈이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현 상황에 불만을 가져 파업을 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전국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셰필드 시내에서 시위 중인 영국 사람들

 일상생활 중에서도 파업을 몸소 느낄 때가 많다. 일단 학교 가는 길에 교직원들이 학교 건물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팸플릿도 많이 나눠준다. 또한 교수님들께서도 파업에 많이 참여하신다. 그래서 내가 듣는 수업의 경우에도 파업에 참가할 예정인 교수님들은 앞으로 3주 동안 수업을 안 하신다. 한국에서는 파업 때문에 학교 수업이 취소되는 경험은 없었기에 지금의 상황이 신기하면서도 안타깝게 느껴졌다. 50만 명이나 파업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만큼 영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각박하다는 것을 의미할 테니까. 


 나도 영국에서 살인적인 물가를 체감해 보니 영국 사람들이 얼마나 경제적으로 힘들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돈을 쓸 때마다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영국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시장에 있는 태국 음식점에서 볶음밥을 하나 사 먹은 적이 있는데 11.99파운드(약 18,600원)가 나왔다. 시장에서는 값이 싼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는 엄청난 착각이었다. 영국에는 Meal Deal이라고 해서 샌드위치 + 음료 구성으로 3~4파운드(약 4,600원~6,200원)에 파는 곳이 많다. 이 Meal Deal을 먹으면 돈을 많이 아낄 수는 있지만 한국에서 한 번에 두 공기도 자주 먹던 나에게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양이라 금방 다른 음식을 찾게 됐다. 시장이 아닌 곳에서 제대로 외식을 하면 보통 20,000원~30,000원 정도 나올 때가 많다. 심지어 비싼 식당에 간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국도 물가가 심하게 많이 올랐다고 느꼈는데, 더 심한 나라에 와보니 한국의 물가가 싸게 느껴진다. 사람이 참 간사하지 않은가. 영국에 온 초반에는 외식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거의 다 기숙사 주방에서 밥을 해 먹는다. 자주 외식을 했다가는 학생인 나로서는 경제적으로 감당이 안 될 것 같다.


 이처럼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따른 시민들의 파업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는 아직 큰 변화가 없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꺼리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가뜩이나 심각한 인플레이션 상황에 사람들의 임금을 올려줄 경우 인플레이션이 더욱 심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임금은 올려주지 않은 채 리시 수낙 영국 총리는 사람들이 일자리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보건, 교통과 같은 주요 부문에서 최저 서비스 수준은 제공해야 하는 파업 억제 법안을 추진 중에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파업 중이더라도 근로자가 일을 거부할 경우 해고를 당할 수 있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눴던 아주머니는 지금 당장은 영국 정부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지만, 사람들이 파업을 하고 시위를 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을 계속 이어나갈 경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로 경제가 수렁에 빠지는 바람에 현재 유럽연합 탈퇴를 후회하는 국민들도 많다고 한다. IMF는 올해 G7 국가 중 유일하게 영국만 역성장을 경험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놨다. 게다가 물가 상승은 끝이 없도록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영국 경제의 전망은 그들의 날씨처럼 흐리기만 하다. 나도 당분간은 영국에서 살아야 하기에 앞으로의 변화에 관심이 간다. 과연 영국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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