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학생들의 주거 문화
한국에서도 기숙사에 살았던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4인실과 6인실을 경험해 봤다. 그런데 영국의 기숙사는 내가 경험했던 한국의 다인실 기숙사와는 완전히 다르게 생겼다. 가장 큰 차이점은 다른 사람과 같은 방에서 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게 나에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반대로 영국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온다면 학교 기숙사에서 여러 명이 같이 잔다는 것에 충격을 받으려나? 영국인들은 아마 우리나라 기숙사 모습을 보면 호스텔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영국 기숙사의 구조
지금부터는 영국 기숙사는 어떠한 구조로 되어있는지 소개하려고 한다. 내가 머물고 있는 기숙사 건물에는 4개의 블록(Block)이 자리하고 있다. 블록은 기숙사를 나누는 가장 큰 분류 단위이다. 블록 다음 단위는 플랫(Flat)인데, 한 블록 안에는 수많은 플랫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기숙사의 가장 작은 단위는 룸(Room)이다. 룸은 플랫 안에 속해있으며 1인 1실이다.
정리하면 영국 기숙사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블록 > 플랫 > 룸
다음 사진을 보면 철로 된 판에 녹색 글씨로 Flats G4-G8, Flats G9-G25, Flats G1-G3라고 쓰여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만약 내가 Flats G1에 살고 있다고 가정해 보겠다. 여기서 G1의 의미를 살펴보면 나는 G블록에 살고 있으며, G블록 안에 있는 1번 플랫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 사진을 통해 이 건물은 G블록이며, G블록 안에는 총 25개의 플랫이 있다는 걸 유추할 수 있다.
블록과 플랫의 개념에 대해 알았다면 마지막으로는 룸이 남았다. 다음 사진은 플랫 안의 구조를 보여주는 사진이다. 각 플랫 앞에 있는 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면 다음과 같은 일자형 복도가 나온다. 일자형 복도에는 우리나라의 복도형 아파트처럼 4개의 룸이 늘어져 있다. 그리고 복도의 끝에는 공동 주방이 자리하고 있다. 플랫 안에 공용 화장실이 있는 경우도 있다. 나는 en-suite 기숙사(룸 안에 개인 화장실이 있음)에 살고 있어 플랫 안에 공용 화장실은 없다. 반면 non en-suite 기숙사는 룸 안에 개인 화장실이 없는 걸 의미하므로 플랫 안에 아마 공용 화장실이 있을 것이다.
영국 기숙사에서 살아보며
사람은 공간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영국의 기숙사와 한국의 기숙사는 건축적으로 완전히 다른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람 간의 상호작용의 양상도 다를 수밖에 없다. 호스텔처럼 되어있는 한국 기숙사의 경우 커다란 방에 다 같이 자기 때문에 서로 얼굴을 볼 시간이 필연적으로 많아진다. 게다가 침대 간의 거리도 다닥다닥 붙어있는 경우가 많기에 서로 신체적으로 가깝다. 사람 간에 붙어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고 금방 친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준다. 물론 부작용으로는 싸움이 잦아질 수 있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여러 면에서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룸메이트 간 붙어있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다면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여러 명이 한 방에서 생활하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은 갖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반면 영국은 한국에서 말하는 룸메이트 개념이 없다. 애초에 한 방에서 같이 안 자기 때문이다. 대신 같은 플랫을 공유하는 사이라는 뜻의 플랫메이트(flatmate)가 있다. 한 방에서 같이 자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얼굴을 볼 시간이 줄어든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외향적인 플랫메이트를 만났다면 조금은 다를 수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하루에 플랫메이트들을 많이 보진 못 한다. 점심이나 저녁 먹을 때 각자 음식을 해 먹으러 공동 주방으로 모이는데, 밥 먹을 때 빼고는 못 볼 때도 있다. 식사 시간이 겹치지 않는 날이라면 어떤 플랫메이트는 하루에 한 번도 못 보는 날도 있다.
이러한 플랫의 특성은 각자 가진 성격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같이 사는 친구들과 금방 친해지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국형 기숙사가 나을 수도 있다. 영국의 플랫은 애초에 서로 얼굴을 볼 기회가 많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해지길 원하는 사람이 먼저 플랫메이트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반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플랫이 좋을 수도 있다. 한국처럼 모두가 한 방에서 자는 경우 프라이버시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데 플랫은 플랫메이트 간 모이고 흩어지는 것이 자유롭기에 개인 시간이 필요할 때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서 있으면 된다. 그래서 한국 기숙사와 영국 기숙사의 결정적인 차이는 개인 시간의 유무가 아닐까 싶다.
플랫의 또 다른 신기한 특성은 공동 주방에 있다. 플랫에 들어오면 각자의 룸에는 잠금장치가 부착되어 있으나 공동 주방만큼은 잠금장치가 없다. 그 말은 출입이 자유롭다는 뜻이다. 애초에 여럿이서 같이 쓰기 위한 공간이니까. 그래서 각자의 친구들을 플랫의 공동 주방으로 막 데리고 와서 요리를 해먹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 문화가 많이 당황스러웠다. 한국이었다면 누구 데리고 와도 되냐고 물어봤을 것 같은데... 여기는 그런 거 없다. 공동 주방의 문화 역시 자신의 플랫메이트가 아닌 모르는 사람과 같은 상에서 밥을 먹는 게 불편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게 돼서 흥미롭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영국에는 학교 기숙사의 플랫 형태 말고도 다양한 주거 형식이 있을 것이다. 학교 기숙사가 아닌 사설 기숙사에 들어갈 수도 있고, 홈스테이라는 방법도 있다. 또한 직접 살 집을 구할 수도 있다. 교환학생은 여행이 아니라 생활을 하러 오는 것이기에 주거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직접 영국에서 살아보니 주거 환경을 결정할 때 학교와의 거리나 주변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성격, 그리고 영국에 와서 얻어가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역시 사전에 신중히 고민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국에는 제가 생활하고 있는 플랫형 기숙사와는 다른 구조의 학교 기숙사가 혹시나 있을 수도 있고, 어떤 플랫메이트를 만나는지에 따라서도 각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