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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스 Feb 02. 2023

불안한 착륙

영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나다

난 밤 10시 이전에 꼬박꼬박 침대로 향했던 잠 많은 꼬마였다. 그랬던 나의 잠을 깨우게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대한민국의 축구 영웅 박지성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축구에 빠진 나는 박지성을 알게 되었고, 그의 경기를 보기 위해 알람을 맞추고 새벽에 일어나곤 했다. 내가 어릴 적에 박지성은 영국 최고의 축구 구단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었다. 새빨간 경기장에 가득 들어찬 관중들의 함성. 영국 문화란 이런 것인가 싶어 막연한 동경이 생겼다.


 물론 고작 영국의 경기장에서 축구 하나 직접 보려고 교환학생을 떠나는 건 아니다. 먼저 한국만 알고 죽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에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여행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왜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곳에 나오는 다양한 나라를 보다 보니 비슷한 나이대의 다른 아이들보다는 시야가 더 넓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또 다른 이유는 다른 나라에서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물론 다른 나라들의 교육이 이상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한국에서 자라오며 느낀 것은 한국 교육은 단순 암기식 공부 위주이며, 성인이 되어 보니 대학 입시를 위해 풀었던 수많은 국어, 영어, 수학 문제가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해외의 교육은 우리나라와는 다른 점이 있지 않을까 싶었고, 나에게 발전을 가져다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영어를 더 잘하고 싶었다. 영어 문제 조금 더 잘 푸는 것이 아닌, 회화나 듣기를 더 잘 하고 싶었다. 그게 진정한 영어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모든 정보의 90% 이상이 영어로 되어 있다고 하니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더라도 이제는 영어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교환학생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으며, 여러 이유들을 종합해 행선지는 영국으로 정했다. 교환학생을 가고 싶다는 이유가 있었으며, 심지어 나는 4년 전에 영국으로 여행을 가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상하리만치 불안함이 별로 없었다. 처음 가보는 나라는 긴장하게 될 터인데, 나는 익숙한 곳이니 문제없이 적응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이랬던 내가 완전히 무너졌다. 살면서 이런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난 ‘냉혈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눈물이 없었다. 아무리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입대를 할 때도 무덤덤했다. 그랬던 내가 인천공항 출국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눈물이 나왔다. 그 자리에서 내가 교환학생을 가기로 한 선택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내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따뜻한 우리 집, 내가 좋아하는 한식, 가족과 친구들과의 소중한 시간들. 비행기에 타는 순간 당분간 이런 것은 하나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런던으로의 여행에 들뜬 여러 승객들과는 달리 난 절망적이었다. 해외여행과는 확연히 느낌이 달랐다. 당장 비행기에서 내리고 싶었다. 내가 왜 교환학생을 간다고 했을까. 도대체 난 무슨 결정을 내린 걸까. 후회가 밀려왔다. 


샤르트르가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고 했던가. 출발 당일 내 인생 최악의 결정이라고 생각한 교환학생을 가는 것도 결국은 내가 선택한 것이다. 양동이가 깨져 바닥에 흐른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듯이 나의 이 결정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 모두는 각기 다른 선택에 의해 인생이 바뀐다. 내가 내린 이번 결정은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숙소에서 바라본 선명한 무지개

 영국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에 무지개를 만났다. 아버지는 이걸 보시고 “너의 앞길에 서광이 비치네. 좋은 징조야.”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내 미래는 그럴 수 있을까. 한 학기가 지나 녹음이 짙은 한국의 여름 한가운데 서있을 때는 교환학생이 내 인생 최악의 결정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번 주 주말이면 기숙사에 들어가고, 다음 주면 개강을 한다. 지금의 숙소 생활과 달리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생활할 텐데 아직 완벽히 내가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은 없다. 그러나 조금씩, 천천히 기분이 나아지고 있다.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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