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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해 Mar 24. 2016

돼지국밥

보잘것없는 신념, 보다 보잘것없는

배가 고팠다. 참치마요(https://brunch.co.kr/@sjy4416/2 참조)처럼 갑갑한 학교를 벗어나려 버스를 타 가장 가까운 정류장에 내렸다. 작은 국밥집이 눈에 띄었다. 다른 것보다도 4000원이라는 숫자가 먼저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 적힌 문구. 거기에 마법처럼 이끌려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는 텅 빈 벽이란 걸 도통 두고 볼 수가 없는지 멋없는 글귀들을 여기저기 둘러놓았다. 예의 그 소머리국밥의 효능. 술은 적이다 먹어서 없애자. 오늘 마실 술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사람의 겉은 눈으로 보고 속은 술로 본다. 술과 술과 또 술. 그렇게 간절하게 말하는 데에야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술을 시켰다. 그리고 나머지 글귀에 따라 몸에 좋다는 소머리국밥을 시킨 것은 아니고, 보다 싼 4000원짜리 돼지국밥을 시켰다. 국밥 가격인 술이 비싼 걸까, 술 가격인 국밥이 싼 걸까 생각하는 사이 국밥이 나왔다. 국물을 한 술 떠 먹었다. 슴슴했다. 작은 숟갈에 새우젓을 크게 한 움큼 퍼 뚝배기에 붓고, 마늘을 털어넣은 다음 달걀을 하나 깨 넣었다. 조가 듬성듬성 섞인 뜨끈한 밥을 젓가락으로 길쭉하게 집어 먹고 깍두기를 하나 베어물었다. 국물을 한 술 더 떠 먹었다. 국물에 스며든 젓갈의 소금기가 흐뭇했다. 공기밥 뚜껑에 새우젓을 조금 덜어서, 고기를 집어 찍어먹었다. 뜨끈함이 조금 들어찼다. 잔에 술을 부어 대번에 반을 비웠다. 속을 달래려 국물 한 술 더 떠먹었다.


먹다 보니 과제 생각이 났다. 시계를 한 번 보고 시간을 계산했다. 핸드폰을 꺼내어 버스 시간표를 확인했다. 여섯 개의 단톡방에서 각각 20개 이상씩 카톡이 와 있었다. 여기저기 답장을 보내고 학교 페이지에서수업공지와 과제를 확인하니 시간이 훌쩍 갔다. 다시 시계를, 그리고 버스 시간표를 보고, 버스가 정류장에 올 시간을 토대로 내가 모두 먹고 마실 때까지의 시간을 계산했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동아리방까지 몇 분, 거기서 교재를 가져다가 커피를 뽑아 도서관으로 가는 데 몇 분, 그리고 거기서 과제와 발표 준비와 학회 책 읽기 기타등등을 각각 몇분씩, 후에는 동아리 모임까지. 나도 참 너무 다른 것들을 너무 많이 한다, 고 생각했다.


뚝배기에 담겼는데도 국물이 퍽 식었다. 어떻게 떠먹어도 수월하게 넘길수 있을 정도였다. 할 일을 재던 찰나는 야속할 정도로 길었다. 무엇을 위해 나는, 눈 앞의 따뜻한 국물을 살지 못하는 걸까. 사실 마음 속에서는 알고 있다. 내가 계획한 모든 것들이 어그러지고 엇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하려는 많은 것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 번잡함은 결국 아무것도 건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붙잡아 살아가는 걸까. 마치 굵은 하나의 밧줄이 아니라, 공중에 매달린 대중교통 손잡이들을 띄엄띄엄 구름다리처럼 잡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나를 여기로 이끌고 온 그 문구를 떠올렸다.


사진출처: 동아리 회장인 친구. 저 그림자 맞다.

‘잔칫날, 부모님 진지를 지어 올리듯 합니다. 국밥 만큼은, 국밥 하나 만큼은……’참으로 놀려먹기 좋은 문장이다. 가게 안에 적힌 구구절절한 잡설보다 더 크고 우습고 강력하다. 이 문장을 친구들과 나누고 싸구려 연기를 하며 놀리라 생각하며 사진까지 찍었다. 내가! 이 빌어먹을 내가! 가진게 없고! 자식새끼들 학교 못 보내고! 못 먹이고 못 입히고! 그래도! 국밥 만큼은! 국밥! 하나! 만큼은! 너가 우리 에미고 너가 우리 애비다! 하는 기분으로! 국밥 만큼은! 이런 식으로. 반드시 가슴을 두드리며, 가래 끓는 한스러움을 담아서 해야 한다. 기침도 조금 섞이면 좋다. 그러면 우리는 그 웃픔으로 말미암아 웃을 수 있으리라. 자잘한 손잡이들로 인해 그래도 떨어지지는 않고 버티어 나가듯, 우리는 웃음을 끊임없이 찾아내 붙잡아서 악착같이 소비하고, 그 소일로 기껏 삶에 흥미를 잃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 면에서 저 문구는 꽤 오래 붙잡을 가치가 있겠다, 생각했다. 그러자 잘못 뜬 국물처럼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왜 그게 웃긴가? 흘린 웃음은 이내 지저분해져서, 휴지로 닦아내어야 할 것처럼 불편했다. ‘국밥만큼은’을 비웃을 권리가 내게 있던가? 그것이 국밥이라서? 따지고 보면 내 삶에서 단단히 붙잡을 어떤 ‘만큼은’이라도 있던가. 의미없는 과목들과 카톡들에 당장의 따스한 국물도 놓치는 나보다야, 이 국밥 만큼이라도 간절한 자부심을 가지고 퍼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나는 무의미를 사랑했고 거기에 괴로워했다. 의미가 고정되지 않아 끝없이 이지러지는 인간 존재의 본질이 매력적인 동시에 저주스러웠다. 하지만 어떤 의미든 단단히 붙잡는 순간 소금 기둥 같은 근본주의를 마주할까봐, 애써 허무의 저주보다 그 매력을 더 크게 보았다. 그런 내 저편에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국밥을 붙잡고, 그 한 우물만 파는 식당이 있었다. 사랑이나 평화, 성실과 발전 같은 모호한 단어들을, 심지어는 ‘만큼은’ 수준으로 붙잡지도 않는 번잡함이 사람들을 어떻게 얼마나 억압했나를 생각해 보았다. 따지고 보면 열심히 헤엄쳐 봐야 표류할 뿐인 내 얄팍한 부력에 비해, 가장 아래바닥에라도 한 그릇의 뜨끈한 국밥이 자리한 이곳은 얼마나 깊고 단단한가. 나는 조금 흘린 몫까지 포함하여, 든든히 삼킨 뭇 웃음들이 부끄러워졌다. 그 순간에조차 무의식적으로, 굳이 핸드폰을 꺼내어 시간을 확인한 것은 물론이다.


국밥을 다 먹었다.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남은 과제들을 계산했다. 일어나서 값을 계산하고, 정류장에 맞추어 가 버스를 탔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동아리 방에 갔고, 친구와 문구를 나누며 예의 그 비극적 몸짓으로 웃음을 오래도록 게워냈다. 그날 하루종일, 나는 다음 날 제출할 과제를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대략적인 계획만 세우는 데에 그쳤다. 나는 차디찬 국물도 뜰 자격이 없는 놈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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