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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로예 Jan 20. 2021

스피노자의 시선:방탄소년단의 세렌디피티

뜻밖의 행운, 그러나 필연이었음을


스피노자는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엄밀한 인과 관계로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우주를 수학적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로 본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참된 인식이란, 바로 이러한 필연의 인과 관계를 꿰뚫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가사를 읽고 '스피노자'가 떠올랐다.


이 가사를 담은 노래는 2018년 8월, 방탄소년단이 내놓은 'LOVE YOURSELF'의 'Answer' 앨범 수록곡 <Serendipity>다. 멤버 지민이 홀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곡이다. 아기자기한, 소우주를 담은듯한 노래의 선율이 가슴을 몽글몽글해지게 만든다. 몽환적인 동시에 잔잔한 감동을 준다. 뿐만 아니라 예술에 경지에 도달한 지민의 퍼포먼스는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나의 시선은 종국적으로 가슴 시리게 벅찬, 철학적이고 아름다운 가사에 머물렀다. 그 이유를 소개하겠다. 아래는 세렌디피티의 가사와 그에 대한 나의 해석이다.



<Serendipity - 방탄소년단> 가사 발췌/해석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냐

그냥 그냥 나의 느낌으로

온 세상이 어제완 달라


그냥 그냥 너의 기쁨으로

네가 날 불렀을 때

나는 너의 꽃으로


-> 김춘수의 <꽃>이 생각나는 구절.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기다렸던 것처럼

오래 시리도록 펴


-> 꽃이 피는 것은 자연의 섭리, 당신과 나의 만남은 자연의 섭리, 즉 필연이다. 꽃이 오래/시리도록/핀다는 것은, 꽃의 숨이 끝끝내 다할 때까지 사랑한다는 것이 아닐까? 시리도록 엄동설한에도 굴하지 않고 꽃이 핀다. 사랑이 핀다.


어쩌면 우주의 섭리

그냥 그랬던 거야

U know I know

너는 나 나는 너


-> 우주에 섭리에 의해 우리는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냥'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어떠한 조건도, 의문도 없이. 벌어질 만한 사건, '그럴 然(연)'이라는 한자에 걸맞은 사건.


설레는 만큼 많이 두려워

운명이 우릴 자꾸 질투해서

너만큼 나도 많이 무서워

when you see me

when you touch me


우주가 우릴 위해 움직였어

조금의 어긋남조차 없었어

너와 내 행복은 예정됐던 걸

Cuz you love me

And I love you


-> 설렘은 행복한 감정을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두려움을 끌어다 온다. 지금 당장이 너무 행복하기에, 앞으로 다가올 혹여나의 불행을 사서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우주가 우리의 만남을 위해 움직여주었다."라고 말한다. 당신과 만나 사랑에 빠진 타이밍은 조금의 어긋남조차 없었다. 완벽한 타이밍에 완벽한 순간에 등장한 너와 나의 행복. 이미 예정되어 있는 자연법칙이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넌 내 푸른곰팡이

날 구원해 준

나의 천사 나의 세상

난 네 삼색 고양이

널 만나러 온

Love me now touch me now

Just let me love you

Just let me love you

우주가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모든 건 정해진 거였어

Just let me love you

삼색털이 나타나는 유전자는 x 염색체 상에 있기 때문에 삼색털 고양이는 거의 모두 암컷이고, 매우 드물게 수컷이 태어나도 무조건 불임이 된다 - 출처 : 위키백과

-> 푸른곰팡이와 삼색 고양이 모두, 예상치 못한 행운을 대표하는 소재다. 예상치 못한 행운 그리고 필연은 서로 정반대 되는 개념인 듯 보인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순간순간마다 일어나는 그 필연을 인지하고 인식하 것. 그 자체가 행운이 아닐까? 그래서 더욱 서로에게 특별하고 운명적인 존재가 아닐까?


별 것 아닌 것이 사실 '별 것'인 것처럼.

'별 것'인 너를 '별 것'으로 알맞게 보게 되는 것.


넌 내 푸른곰팡이

날 구원해 준

나의 천사 나의 세상

난 네 삼색 고양이

널 만나러 온

Love me now touch me now

Just let me love you

Just let me love you


우주가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모든 건 정해진 거였어

Just let me love you


이젠 곁에 와줘

우리가 되어줘

I don't wanna let go no

그냥 맡기면 되는 거야

말 안 해도 느껴지잖아

별들은 떠 있고

우린 날고 있어

절대 꿈은 아냐

이제 우리가 되는 거야


-> 겁을 낼 것 없이 필연에 내 몸을 맡기면 된다.

우리는 서로를 만나기 위해 그 모든 역사의 시간을 건너왔다. 저 먼 우주 어딘가에서부터 나와 네가 그 머나먼 빛의 거리를 건너왔다.


그리고 지금 당신 앞에, 내가 서 있다.

그러니 말 안 해도 느껴지는, 그러나 꿈이 아닌 이 운명에 너와 나를 맡기자. 그리고 우리가 되자.


Let me love you

Just let me love you

Just let me love you

우주가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모든 건 정해진 거였어

Just let me love you


Let me love

Let me love you

Let me love

Let me love you


-> "널 사랑하게 해 줘"라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노래를 마무리. 필연임을 인식함에도 상대라는 또 다른 행성에 자신의 사랑이 도착함에 대하여 미리 동의를 구하는 말일 것이다.



세렌디피티 가사에서 나타나는 스피노자의 '필연'은 화자가 만난 사람과 꽃 피워내는 사랑이다.


마치 길가에 뿌려진 이름 모를 씨앗이 싹을 틔우고 아름답게 꽃을 피우는 일이, 오래전부터 예정된 필연처럼 보이듯이.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꽃이기에 그 꽃을 당연히 바라보고 만질 수 있듯이. 화자가 마주한 운명의 상대와 함께하는 그 모든 사랑의 순간들도 우주의 수학적 질서에 따른 필연적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필연이라고 여겼던 사랑이 언젠가 변할  있는 . 그것조차도 필연이다.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과 영영 만날 수 없는 것 또한 필연일 수 있다. 사랑 아닌 헤어짐조차도, 바람에 휘날려 뿌리채 뽑힌 꽃줄기마저도 푸른곰팡이이자 삼색 고양이가 된다. 불행이라는 가면을  행운, 행운이라는 가면을 쓰고  불행.  행복과 불행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  자체가 필연이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자연의 필연성에 대한 이성적인 인식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자연은 엄밀한 인과 관계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필연성에서 벗어나 자유 의지를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필연성을 인식하고 받아들여야만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



행운스럽게도, Serendipity의 가사 속 화자는 그 자연법칙의 필연성을 인식한 사람이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이 화자는 인간에게 가능한 유일한 최고선인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관조하는 데서 오는 평온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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