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글'을 읽을 때의 짜릿함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듣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좋은 글이란 세상을 담은 맛있는 음식이 아닐까. 때로는 순한 맛, 매운 맛. 어느 날은 달콤한 맛, 불쑥 느껴지는 씁쓸한 맛. 문득 눈물이 나도록 매운 맛이 땡기는 날처럼, 필요한 맛을 담은 글을 읽고 싶은 때가 있다. 마치 유난히 떡볶이가 땡기는 여느 밤처럼. 어떤 맛이든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의 내가 '맛있다'고 느껴지는 글, '조금 더 맛보고 읽고 싶고', '궁금해지는' 글이라면 그것은 나에게 좋은 글이 된다.
글을 쓰는 사람, 즉 작가는 독자를 손님으로 맞이하는 주방장과도 같을 것이다. 손님은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입맛을 다신다. 작가는 삶이라는 바다에서 건져올린 재료로 글이라는 요리를 이어간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식당을 차리는 사람이고, 그의 글들은 다채로운 메뉴판일 것이다.
잠시 글이 아닌 '음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나는 지금껏 많은 요리를 먹어왔지만 딱 세 사람의 음식이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외할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 세 분의 음식이다. 세상에 날고 기는 유명 셰프는 전 세계에 넘쳐나지만 음식에서 나의 짜디짠 눈물 맛이 나는 것은 이탈리아의 명장, 맛대맛 대결 우승자의 요리가 아닌 그 세 분의 요리였다. 눈을 감고 당신들이 차려주신 수많은 밥상을 떠올려본다. 깔깔깔 배꼽이 터지도록 웃었던, 땅거미가 내려앉듯 가라앉던, 요란스럽게 시끌벅적했던 선명한 감정들이 있다. 차마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다채롭고 경이로웠던 그 맛들. 입안에서는 세상의 모든 즐거움과 행복, 기쁨, 슬픔, 낙담이 베어나오곤 했다.
그 음식들에는 분명 차별점이 있었다. 대체불가능한 사랑과 정성, 그리고 깊은 추억의 재료들 덕분이다.
다시 '좋은 글'의 이야기로 돌아가본다. 지금껏 많은 글을 읽고 또 써왔지만 계속해서 가슴에 머물러있는, 혹은 아직도 기웃거리게 되는 글들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었다. 한 편의 글을 읽고 가슴에서 머리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사무쳤던 누군가의 얼굴이 어두운 밤의 보름달처럼 떠오르고, 그리운 순간들이 영화처럼 재생되곤 했다. 소중한 사람과 기억을 감싸안는 방향으로 감정이 일어난다면, 그 글은 잊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이런 종류의 글들은 지극히 감성을 일깨우는 분위기를 담고 있어,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가장 개인적인 경험을 되살리는 마법의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예컨대 에세이나 소설이 그렇다. 그 중에서도 현재 상황에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이입할 수 있는 글이라면 더더욱 맛있는 글로 다가온다. 한때 슬프거나 우울한 일이 있으면 나는 서점에 꼭 들렀다. 그러곤 그 순간의 감정의 결을 건드려줄 수 있는 글들을 찾아 숨죽여 읽곤 했다. 그럴 때는 눈물이 똑 떨어지기도, 광대뼈가 올라가며 흐뭇해지기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했다.
반면 감성의 영역이 아닌 관조의 자세로 '이성'과 '지성'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글도 있다. 지금껏 적지 않은 책을 읽어왔으나, 최근에 읽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과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처럼 충격적으로 빠져든 책들은 없었다. 단순히 '재밌다', '좋다', '감동적이다'의 표면적 감각을 넘어서서 '짜릿하다', '엄청나다', '본질 그 자체다'라는 내면의 깊숙한 곳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특히 <월든>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2세기 전에 쓰여졌지만 놀랍도록 작금의 21세기 현실을 정확히 꼬집고 비판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사치와 욕망. 탐욕과 낭비 그리고 무절제함은 영원히 반복되는 굴레인가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그의 글에서 "간소화하라. 사색하라!"는 단호한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현대인들이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활용해 '생산적인 삶'을 살 것을 권했다.
더 덧붙이자면,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의 맛은 지금껏 맛보았던 그 어떤 향과 풍미보다도 진하고 깊었다. 몇 세기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이기심과 공허한 욕망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문명인과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긴 명작이기에,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어지러운 문명에서 살아가는 나에게는 '나침반'과도 다름없는 책이 되었다. 여기서 나침반이란 무서운 풍파 속에서도 끝끝내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필수 도구를 뜻한다. 예를 들어 이 나침반을 따라가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는 방법, 자신의 자력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최소한의 힘들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정신없이 그저 바쁘기만한 삶에서 스스로의 내면에 집중하고, 진정한 정신력을 키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앞으로 이 책을 나의 맛집으로 삼아 지성과 지혜의 배가 굶주릴 때 종종 찾아가보고자 한다.
맛집 리스트를 만들 때 보통 음식의 종류에 따라 분류한다. 한식,중식,일식,양식 등과 같이 고유한 '맛'에 따라서 맛집들을 나누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글, 맛있는 글을 오래 읽고 싶다면? 마찬가지로 '맛있는 글'이 담긴 맛집 리스트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독서의 폭이 넓어지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생각의 범위가 점차 확장되면 다른 사람의 독서 맛집도 종종 방문해보고 싶다.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아낌없이 내어줄 수 있는 맛있는 글이 땡긴다. 읽었을 때 아무 감흥도, 감동도 없는 무미건조한 것이 아니라! 촉촉해지고, 따뜻해지고, 때로 거칠어지고, 또 심각해질 수 있는. 그런 맛있는 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더불어서 글을 쓰고있는 나조차도 그런 '맛집'을 차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