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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정 Nov 05. 2023

3대 도넛 그리고 K-도넛

도넛에 관한 사소한 고찰 2


대학 졸업 후, 새내기 직장인이 되어 일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거래처 분들이 자주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그날따라 큰 박스를 들고 오셨다.
하얀 박스에 빨간 영문으로 적힌 글씨는 '크리스피 크림'이었다.



회사 근처에 대형 백화점이 있어서 크리스피 크림 도넛이 생긴 건 알았는데 실제로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던킨도넛과 비스무리한 맛을 예상했던 나는 크리스피의 글레이즈드 도넛을 한입 베어무는 순간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이 폭신함은 뭐지?', '크림이 없는데도 이 달콤함은 뭐지?'
약간 퍽퍽하고 담백한 맛일 거라고 생각했던 도넛은
폭신했고 촉촉했다. 그리고 겉은 설탕코팅으로 인해 바삭하고 달콤했다.
눈이 번쩍 뜨였다.
도넛은 순식간에 입안에서 사라졌다.
보통 도넛 1개를 먹으면 약간 든든해지는데 1개로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도넛의 목 넘김이 부드러울 수 있구나 처음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나에게 글레이즈드 도넛은 도넛의 새로운 기준이 됐다.
식감, 수분감, 당도 모두 글레이즈드 도넛 정도 되는가, 아닌가로 도넛 맛집인지 아닌지 판가름하게 됐다.  
그리고 최근에 또 한 번 도넛 취향이 바뀌었다.
일명 서울 3대 도넛 때문이다.
바로 노티드. 올드페리, 랜디스.  
서울 3대 도넛으로 손꼽히는 이 도넛들은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다.




노티드 
이곳의 도넛 역시 처음 맛봤던 순간, 놀라움을 선사했었다.
도넛 빵피가 기름지지 않고 카스텔라만큼 보드라우며 크림을 가득 머금고 있음에도 그리 달지 않아 먹으면서 맛이 조화롭다는 걸 느꼈다.  
도넛이 단순한 도넛이 아니라 디저트 같을 수 있다니...
감탄하며 2개를 순삭 했던 기억이 난다.  
단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하는 도넛이며 가장 즐겨 찾는 도넛이기도 하다.     




올드페리 도넛
한국의 1세대 도넛 브랜드인데 미국스러운 크기와 맛을 느껴볼 수 있다.
(푸짐해서 마음에 든다는 뜻)
살짝 쫄깃해서 씹는 맛도 있고 빵피 속에 리치한 크림이 가득 가득 들어있다.  
당도가 좀 있는 편이어서 단 것을 안 좋아하는 분들은 많이 못 드실 수도 있지만 디저트러버인 나는 감탄사와 진실의 미간을 발사하며 먹었다.
노티드만큼 종류가 다양하진 않지만 당 충전을 하고 싶은 날! 제격인 도넛이다.




랜디스도넛 
크기부터 네이밍, 맛까지 미국 본토의 느낌을 내뿜는 도넛이다.
글레이즈도넛부터 필링 도넛, 크림 도넛 등 종류가 다양한데 어떤 것은 짜거나, 시거나 시원하기도 하는 등 네이밍에 매우 충실한 맛으로 인해 놀라기도 했던 곳이다.  




아베베 베이커리
추가로 서울 3대 도넛은 아니지만 한국적인 맛으로 승부를 보는 K-도넛을 덧붙여 보고자 한다.
바로 '아베베 베이커리'의 도넛이다.  
몇 년째 나에게 부동의 1위 도넛이었던 노티드 도넛을 제친 도넛이기도 하다.
제주도 명물도넛으로서 최근엔 서울에도 상륙했는데 제주 특산물을 넣은 도넛부터 이름만 봐도 맛있을 것이라는 게 이미 느껴지는 도넛들이 사람을 홀리는 곳이다.   
오메기떡, 인절미, 우도 땅콩, 제주 녹차, 한라봉 등등 다양한 맛의 도넛들이
"내가 조선의 도넛이다" 라며 존재감을 뽐낸다.   
퐁신하고 쫄깃한 빵피 속에 쫀쫀하게 자리한 특산물맛 크림이라니...
색다른데 익숙하고 익숙한데 색다르다.  
먹으면서 한국적인 맛을 개발하고 끊임없이 연구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에 새삼 감사함을 느끼게 됐다.

다음엔 어떤 도넛과 마주하게 될까.
몹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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