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팥앙금이 가득 든 팥도넛, 쫄깃한 찹쌀도넛은가족들도 좋아했는데 도넛봉투를 들고 집에 오는 길은
식기 전에 먹고 싶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집에 오면 기름이 흥건하게 배어 나온 하얀 종이봉투를 뜯고 우유를 따른 뒤 다 함께 둘러앉아 도넛을 음미했는데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도넛일수록 입안에 밀어 넣었을 때 만족감이 컸다. 설탕으로 코팅된 살짝 기름진 빵피를 깨물면 고소하고 쫄깃한 식감이 입안을 감싸고 이윽고 팥앙금이 자기주장을 펼치면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는 매번 팥도넛을 먼저 먹은 뒤 찹쌀도넛으로 마무리했는데 쫀득한 찹쌀도넛으로 입가심을 해주고
그 잔 맛의 여운을 즐겼다. 엄마는 생도넛이라 불리는 백앙금도넛도 가끔 사주셨는데 겉은 바삭하고 빵이 밀도 있고 약간 퍽퍽한 것이 먹다 보면 목이 좀 막히기도 했지만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었다.
생도넛 (백앙금도넛)
살면서 도넛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친숙한 이 도넛의 기원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가장 신빙성 있는 의견은
과거 미국에 이민 온 네덜란드계 사람들이 즐겨 먹은 음식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16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축제 때 밀가루 반죽을 돼지기름에 튀긴 올리코엑(olykoek, 기름 케이크)을 즐겨 먹었는데,당시 이 올리코엑은 빵을 만들고 남은 반죽을 튀긴 것으로 반죽의 가운데 부분이 잘 익지 않아 가운데에 견과류나 과일을 채워 넣어 튀겼다고 전해진다. 이후 19세기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미국에 전해진 뒤 점차 대중적인 간식이 되었다고 한다.
10대가 되고 커가면서 나의 도넛 취향은 미국 도넛을 맛보며 조금씩 바뀌어 갔는데 그 시작은 던킨도넛이었다. 던킨도넛의 초코, 화이트, 핑크 등 다채로운 컬러의 도넛들은 나를 홀렸다. 10대 때는 용돈이 한정된 지라 친구들과 분식, 프랜차이즈 햄버거, 던킨도넛 정도의 가격대에서 간식소비를 할 수 있었는데 가끔 혼자 달달한 것이 먹고 싶을 때 당시 1개에 2천 원 대하는 핑크초콜릿이 코팅된 던킨의 하트모양 도넛, '사랑에 빠진 하트'를
사 먹었다.
10대 시절 나의 최애 빵
모양도 예쁘고 맛도 예뻤는데 핑크빛 하트모양도넛의 왼쪽엔 딸기잼, 오른쪽엔 바바리안 필링 (슈크림)이 들어있어 먹는 재미도 있었다.
하나를 사서 두 가지 맛을 볼 수 있으니 가성비 최고인 간식이자 당시 수중의 용돈으로 사 먹을 수 있는 최대의 사치(?)였고 내가 아는 가장 맛있는 빵이었다.
이후 20대가 되어 새내기 직장인이 된 어느 날, 거래처 직원 분이 사 오신 도넛으로 인해 내 도넛 취향은 한차례 변화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