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단어의 의미는 다르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성적이 중간 정도 하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 '나'라는 학생은 무색무취라고 표현하면 적당하겠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학업에는 큰 동기부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취학 아동일 때부터 시작한 태권도를 10년 정도 하면서 나름의 특기라고 생각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꿈은 평범한 태권도 사범이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도전했던 승단심사에서 합격하지 못했고, 진지하게 나의 진로를 되짚어 볼 수 있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이다. 도끼는커녕, 믿는 도끼 자루도 사라진 상황이 되었다. 이것은 나에게는 진로를 전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찌 보면 나름의 동기 부여가 되었다.
태권도를 그만두고 난 후, 고등학교 때부터는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플랜 B가 없는 벼랑 끝으로 몰린 상황이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나도 어느덧 고3이 되었다. 그런데 매일같이 열심히 노력해서 공부를 해도 성적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노력한 만큼 성적이 오르지 못하자 나의 역량의 끝이 보이는 듯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나에게는 슬럼프가 온 것 같았다. 나의 성장의 한계가 있는 것 같았다.
'정말 내가 다른 친구들과 역량이 다른 걸까?'
나와 내 친구들 모두 비슷한 시간을 열심히 노력해서 공부했다.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친구들은 고액과외라도 받는 걸까?' 아니면, 정말 유전자가 뛰어나서 '공부를 안 해도 저절로 외워지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쉬는 시간에 명상에 잠긴 친구 G군 옆에 다가갔다. G군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반에서 중상위권인 친구였는데, 어느덧 고등학교 때는 전교 순위권에 있는 친구였다. 누구보다 노력파로 알려진 친구였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난 너처럼 열심히 공부하는데, 성적이 잘 안 올라. 왜 그럴까?"
G군에게 이렇게 물어보니, 그는 귀를 가로막던 귀마개를 슬며시 빼며 나에게 말했다.
"정말 열심히 해봤어?"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가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런 '열심히'였다. 그와 나의 '열심히'의 기준이 다른 셈이었다. G군의 질문에 나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채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이제까지 했던 '열심히'와는 다른 수준의 '열심히'를 실천하려 노력했다. 그 친구 덕분에 나는 슬럼프에서 벗어나 나만의 페이스대로 고3 수험생의 긴 터널을 완주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그 친구와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종종 이야기를 전해 듣곤 한다. 나도 그가 어떤 일이든 완주할 수 있도록 이 글을 빌려 응원과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같은 단어라고 하더라도 개인이 생각하는 의미는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당신이 '열심히' 조사한 자료를 다른 사람들이 후한 평가를 내릴 수도 있고, 박한 평가로 당신을 괴롭힐지도 모르겠다. 오늘 하루 '열심히' 달려온 당신께 당신은 몇 점을 주고 싶은가? 오늘도 '열심히' 달려온 당신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