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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크류 Sep 28. 2023

ep18. 100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감정의 날을 세우며 지나치게 솔직해지지 마세요.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사소한 것에도 솔직하고 싶은, 아니 어쩌면 사소한 것에도 지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때때로 이런 사소한 문제는 서로의 감정의 골이 생기기도 한다. 한데, 이런 사소한 문제로 인해 당신이 직장동료들에게 나쁜 평판을 받을 이유도, 그럴 필요도 당연히 없다. 여기, 한 가지 예를 보자.

  김 사원과 이 대리는 회식장소 이동을 위해 함께 김 사원의 차를 탔다. 조수석에 앉은 이 대리와 운전대를 잡은 김 사원은 서로 일 이야기, 친구 이야기, 그리고 주말에 겪은 일을 이야기하며 퇴근시간의 지루함을 달랬다. 하지만 어째 김 사원이 가는 길이 이 대리에게는 탐탁지가 않다. 평소 지리에 밝은 이 대리는 김 사원에게 훈수를 두기 시작한다.

▼ 이 대리
김 사원, 우리 지금 네비 안내대로 가면 공사 중이라 더 막힐 거 같아.
저~기 고가도로 있는 사거리에서 좌회전해보자.

▼ 김 사원
네? 네비는 직진하라고 하는데요.
그리고 지금 좌회전 차선으로 합류하기도 어렵고요 ㅜㅜ

▼ 이 대리
아니, 내가 길을 잘 안다니까~
좌회전 깜빡이 켜고 살짝만 좌측으로 합류해 봐. 할 수 있지?

▼ 김 사원
아뇨. 근데 요새 네비가 얼마나 정확한데요~
전 그냥 직진할래요.
(솔직히 좌회전하면 더 돌아가서 오래 걸릴 거 같음)

▼ 이 대리
어휴, 고기 다 먹고 후식 먹을 때 도착하겠는데...!


(잠시 후, 회식장소에 도착한 둘)

▼ 최 부장
약속시간에 맞게 잘 왔네. 어서 와~
그런데 둘은 왜 따로 앉아?

▼ 김 사원
이 대리님 때문에 하마터면 돌아올 뻔했다니까요!
대리님, 제 말이 맞죠? 도착시간에 맞게 왔잖아요~

▼ 이 대리
아니 내가 말한 대로 왔으면 더 빨리 왔다고!

  화기애애하게 시작된 둘의 여정은 파국을 맞게 됐다. 이게 무슨 막장드라마냐고? 현실에서,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문제이다. 비단 차량에서의 문제뿐 아니라, 다른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로 문제는 일어날 수 있다. 한 발자국 물러서면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감정 소모를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만약 김 사원이 이 대리의 말에 따라 좌회전을 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래서 조금 더 오래 걸렸더라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 대리를 비난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일할 때 정직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허위보고'나 '정치질'로 오해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일에서 벗어난 상황에서는 충분히 양보하고 모른 척져줄 수 있는 상황들이 많다. 그것을 잘 이용하면 상대의 신임을 받을 뿐 아니라, 동료들이 편하게 생각하는 직장 동료로 여길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든 예시에서의 맹점은 약속장소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누가 제시하느냐가 아니다. 여정에서 상대방에게 어떤 인상을 남기는 것이 좋을지, 그리고 이 에피소드를 통해 상대방과 어떤 감정적 교류를 이어가면 좋을지를 고민해 보는 것이다.

▼ 이 대리
김 사원, 우리 지금 네비 안내대로 가면 공사 중이라 더 막힐 거 같아.
저~기 고가도로 있는 사거리에서 좌회전해보자.

▼ 김 사원
네? 네비는 직진하라고 하는데요.
그리고 지금 좌회전 차선으로 합류하기도 어렵고요 ㅜㅜ

▼ 이 대리
아니, 내가 길을 잘 안다니까~
좌회전 깜빡이 켜고 살짝만 좌측으로 합류해 봐. 할 수 있지?

▼ 김 사원
네, 그럼 저 지금 좌회전 합류해서 갑니다!
(솔직히 좌회전하면 더 돌아가서 오래 걸릴 거 같음)

▼ 이 대리
그래, 나만 믿으라고!


(잠시 후, 회식장소에 도착한 둘)

▼ 최 부장
약속시간보다 좀 늦었는데~ 차가 많이 밀리지?

▼ 김 사원
어휴 그러게요. 차가 어찌나 많던지. 그래도 이 대리님이 지름길 알려주셔서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한 거 같아요.
(지름길이 아님을 알고 있음)

▼ 이 대리
그래도 김 사원이 운전을 잘해서 시간을 많이 세이브한 거 같던데. 네비보다 더 빨라!

  앞선 예시와 비교했을 때 어떠한가? 김 사원의 한 마디가 오히려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있다. 김 사원은 져 주는 척했지만 잃을 건 없었다. 오히려 이 대리와 사이가 돈독할 발판을 마련했을 뿐. (하지만, 계속 이 대리가 운전 경로에 훈수를 둔다면 고민이 될 것 같긴 하다.)

  5분, 10분 늦게 가는 회식장소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5년, 10년 동안 직장에서 얼굴 맞대고 일해야 할 나의 동료와 상사이다. 당신이 하나를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다는 뜻은 아니다. 현명하게 져주는 방법이 당신을 좀 더 현명한 인간관계로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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