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는 아이들을 착하고 바르게 자라도록 가르친다. 이는 어렸을 때부터 봐온 동화 속 교훈이나 위인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동화 속 권선징악이 그것이다. 나 또한 그런 영향에선지 착하고 바르게 커야 한다는 강박이 컸고, 대학생을 지나 직장인이 되어서도 모든 이들에게 착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지내온 것 같다. 그렇다면, '착한 것'이 과연 직장 생활에서 '좋은 것'인가?
나의 대답은 '때때로 그렇다'라는 것이다. 사람이 착하다는 기질을 다른 것에 비유하자면, 연료와 같다. 연료는 불을 만나서 활활 타오르면 열기를 전해주거나 기차, 자동차와 같은 엔진을 움직이게 한다. 그러나 불을 만나지 못하면 그저 연료 그 자체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사람 착해."
직장 내에서 어떤 사람의 평판을 물어볼 때, 위와 같이 답했다고 가정해 보자. 어떻게 느껴지는가? 필자의 생각은, '착한데, 뭐?'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아래와 같이 덧붙이는 특징이 있어야 비로소 착하다는 말도 칭찬으로 다가온다.
"그 사람 부탁하면 일 처리 정말 빠르더라. 게다가 뭐 물어보면 되게 착하게 알려주던데."
사회생활의 첫발을 디뎠을 때만 해도 난 그저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또한, 누군가 다른 이의 험담을 하더라도 동조하지 않고 중립을 지켰다. 그랬더니 그냥저냥 무색무취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넌 성인군자야? 왜 다른 사람 험담을 안 해?"
다른 사람 험담을 신나게 하던 선배가 물었다. 겉으론 웃으며 넘겼지만 그 사람은 내 뒤에서 나를 험담할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앞에서 다른 누군가를 험담한다면, 나 또한 그 재료가 될 것이리라. 그래서 싫었다. 그는 나에게 험담을 좋아하는 착하지 않던 선배였다.
이후 나는 착하면서도 친절하고, 평정심을 잃지 않고, 일을 잘 처리하는 이미지로 직장 생활을 유지해 왔다. 그리고 착한 이미지 덕분에 빠른 일 처리가 더 돋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긍정은 긍정을 이끌어온다. 나의 긍정적인 이미지는 또 다른 긍정 이미지를 불러온다.
무작정 착한 사람이 아닌, 덧붙이는 말과 함께 착하다는 칭찬을 들으니 나의 타오르는 작은 열정에 기름을 붓듯이 활활 타올랐다. 당신도 그저 착하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않기를 바라본다. 그것은 당신이 특징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