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현 감독. 킹메이커
입으로 한 약속은
위기 앞에서 깨어지기 마련입니다.
호기심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마.
선생님,
제가 미래의 대통령을 한번
안아봐도 되겠습니까.
대의의 대상은 모두가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대의 안에 자신의 꿈도 들어있길 바란다. 운이 좋아서 하나 걸렸으면 좋겠다 정도가 아니다. 평생 사무쳐서 제발 죽기 전에 이거 하나만은 제대로 돌아가는 것 좀 봤으면… 하는 간절함이다. 원통함이다. 기도다. 자신의 한계를 절감한다. 나 혼자서는 할 수 없어. 그렇다고 내가 무리를 막 이끌고 뭔가 혁명의 주도자가 될 수도 없어. 누군가 필요하다. 내 꿈을 대신 이뤄줄 누군가가. 대신 앞에서 피 흘리고 대신 큰소리로 메시지를 외치고 대신 그동안의 억울함을 상쇄해줄. 누군가를. 간절히 원한다. 임금이 대통령으로 바뀐 들 소시민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바뀔 수 없다. 부모와 경제력에 의해 서열화되고 하위의 다수가 유능하다 여기는 소수를 위로 올려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해주길 기원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정신적 위안 정도가 될 수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생존과 목숨, 다음 세대의 존립이 달려 있다. 자신과 같은 평범한 보통 사람은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여기게 된다. 신이 나설 수 없으니 비슷한 외형의 인간의 몸을 입은 영웅을 그리게 된다. 이 사람이 나와 우리를 대신할 영웅이다. 세상을 바꿔줄 비범한 자다. 이 자를 우리 앞에 세우자. 목놓아 부르짖자. 우리의 삶을 바꿔달라고. 이 미친 세상 속에 우리의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우리의 조상들이 헛되이 죽은 게 아니라고 증명해달라고.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와 같은 고통과 슬픔을 겪지 않게 당신이 선을 그어달라고. 서창대(이선균)는 김운범(설경구)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불가능을 깨닫고 김운범을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한다. 자신도 최소한 그 곁에서 공로를 인정받고 함께 나아가고자 한다. 김운범의 대의와 서창대의 대의는 서로 다른 품 안에서 크고 있었다. 하나의 목소리로 모으려면 작전이 필요했다. 서창대는 작전을 짜고 김운범은 마이크를 쥐었다. 그리고 그 마이크는 마지막까지 서창대에게 넘어가지 않았다. 서창대는 떠나고 김운범은 최후의 영웅이 된다. 각자의 평생을 자신의 대의를 이루는데 쏟아부었지만 "그림자"는 잊히고 "빨갱이"는 제외된다. 영화 킹메이커는 이긴 자들의 선거 뒤에서 잊히고 고의로 지워진 자들을 소환한다. 긴 여정 속에서 이상을 품고 질주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역할에 심취하고 그 역할이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한 수단이 아닌 시대의 요청이자 절대다수의 바람이라고 여기게 된다. 서창대가 빨갱이 낙인을 지우려고 몸부림칠 때 김운범은 보다 큰 그림을 그려야 했다. 서창대가 빨갱이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게 되었을 때 김운범은 권력의 꼭짓점에서 한 국가의 경제 상황과 미래의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서창대와 김운범의 대의를 같은 저울에 올릴 수 있을까. 더 많은 이들이 김운범의 대의를 자신의 대의라고 지지했을 뿐이다. 김운범이 먼저 정치 시스템 안에서 플레이어로 뛰었을 뿐이다. 동일한 시작점이었다면, 김운범과 서창대가 경쟁 구도에 놓였다면 결과는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에 가정은 없으니까. 우린 이긴 자들이 세운 정의 속에서 살며 지워진 자들의 못다한 이야기들을 탐색할 뿐이다. 서창대는 김운범이 되고 싶었지만 (김운범이 된) 서창대에겐 서창대가 필요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서창대는 더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성취에 취해 있었고 김운범은 수십 명의 서창대 속에서 하나의 서창대를 리스트에서 지웠을 뿐이다. 그림자는 원본의 신체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그 반대는 아니다. 보이지 않는 꿈을 가졌던 김운범은 역사에 남았고 롤모델이 확실했던 서창대는 사라졌다. 하지만 둘은 팔을 활짝 펴고 서로를 뜨겁게 안아주던 시절을 공유했다. 향하던 대의와 결과는 달랐지만 이 기억 하나 때문에, 둘은 서로를 영영 그리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