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숲, 위로와 회복의 시공간 속에서

by 백승권



회사 근처가 서울숲이다. 점심시간에 이따금 지난다. 처음 마주한 계절은 스산한 겨울이었다. 마른나무들이어도 숲을 이루니 웅장했다. 우리는 풍경을 스치며 입을 벌렸다. 감탄사를 내질렀다. 길 위에서 마구 웃기도 했다. 숲의 수많은 나무와 식물들은 대화의 새로운 소재가 되었다. 말이 없이 지나기만 해도 에너지로 스며들었다. 돌아올 때 일부러 숲을 지나기 위해 경로를 바꾸기도 했다. 우거진 녹색잎들 사이에서 즐거웠다. 끝이 안 보이는 나무들 사이에서 자연의 경이를 실감했다. 시야를 온통 뒤덮은 나무들 사이를 지날 때 우린 거대한 고래의 뱃속을 상상했다. 숲이 말 그대로 우리를 집어삼킨 듯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익숙한 길이 나오고 회사로 돌아가는 경로가 가까워지자 아쉽기까지 했다. 점심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우리는 숲에서 빠져나와 각자의 책상으로 돌아왔다. 서울숲에서 가져온 에너지들로 오후를 버틸 수 있었다.

다시 방문한 계절은 이른 봄이었다. 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시기였다. 우리는 몸을 움츠리고 한기를 견디며 숲길을 지났다. 지난겨울에 비해 사람들이 늘어 있었다. 펜데믹은 바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묶었고 휑한 건 거리나 숲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이번엔 숲이 더욱 여유로워 보였다. 한적한 숲 속에서 우리는 특권을 누리는 듯한 환상을 공유했다. 풍경을 사진에 담고 지나는 반려동물에 가벼운 인사를 했다.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연인들이 보이기도 했다.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서울숲의 폐 속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의 영혼도 같이 들썩거렸다. 우리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느리게 걸었다. 마스크를 쓴 행인들이 곁을 지났다. 광대하고 울창한 숲 속에서 마스크를 쓴 행인들의 모습은 세기말의 풍경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들도 우릴 보며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을 것이다. 언제쯤 마스크를 벗고 제대로 이곳을 더 깊게 안을 수 있을까. 언제쯤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숲의 세부를 남김없이 누릴 수 있을까.

얼마 전 다시 간 한낮의 서울숲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똑같은 노란 옷을 입은 어린이집 아이들이 줄을 맞춰 종알거리며 걷고 있었다. 같은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이 깔깔거리며 서로를 잡으려고 장난치며 모여 있었다. 할머니들이 한 곳에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누고 도시락과 돗자리를 가져온 사람들이 나무 사이와 잔디밭 위를 메우고 있었다. 그들은 서울숲에 놀러 와 서울숲 풍경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앉고 걷고 서성거리고 달리는 모습까지 서울숲 유니버스를 수놓는 픽셀처럼 보였다. 각 픽셀들은 색과 소리와 디자인을 지니고 있었고 각 픽셀들이 모여 바람을 일으키고 새로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서울숲에 모인 사람들로 이뤄진 새로운 숲을 바라보며 뭉클해졌다. 일상 깊숙이 드리우던 오랜 그늘이 거둬지고 있었다. 서울숲은 도심 한가운데서 자연의 생성과 회복이 쉼 없이 펼쳐지는 곳이었고 지치고 피로한 이들이 발길을 담갔을 때 기꺼이 치유해주는 위로와 회복의 시공간이었다. 이제 점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 자신을 돌보기 위해 서로를 다독이기 위해 자연 속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돌아보기 위해 웃고 어울리고 행복하기 위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서울숲은 각자의 기억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지나 새로운 숲으로 각인될 것이다. 새로운 숲의 기억이 남은 삶의 곳곳에서 피어나며 지칠 때마다 잠시 멈추고 발길을 돌리게 할 것이다. 좋은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작은 믿음이 있다. 서울숲에 갈 때마다 이 믿음은 견고해진다. 우리는 오늘도 서울숲을 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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