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김용훈 감독. 마스크걸
타인은 지옥이다. 지긋지긋하다. 관계 맺기가 생존을 위한 필수 능력인 시대에 대다수는 매 순간 지옥과 마주해야 한다. 바라보고 보여지고 말을 걸고 답을 듣고 말을 듣고 답을 하고 평가하기 전에 평가받다가 혼자 있는 시간에 웅크리고 운다. 상처라는 말은 너무 동화적이다. 긁히거나 살짝 넘어져서 생긴 게 상처지 복부를 쑤시는 주먹질, 몸 전체를 들어 올려 벽에 내던지는 것, 친근감을 내세우며 접근하는 강간 시도는 상처가 아니라 생명을 빼앗기 직전까지 몰아가는 범죄다. 혼자 지냈어도 스스로를 이토록 학대할 수 있었을까. 타인은 범죄의 존재이유다. 그런데 현대 인간은 조금 더 살고 싶어서 조금 더 빨리 죽을 수 있는 위험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 타인과의 관계 맺기는 죽음의 위협을 담보로 두고 있다. 불나방 같이 모두가 타 죽는다. 누가 천천히 타 죽느냐의 문제다.
한없이 찰나 같던 모미의 삶에서 가장 생기 넘치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건 바로 감옥에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자신을 가해하던 무리들을 향해 돌진하고 쉼 없이 주먹을 날리던 순간이었다. 그때만큼 김모미(나나)가 화사하고 아름답고 씩씩하고 강력해 보인 적이 없다. 자기 삶의 방향성을 제대로 알고 확신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꽉 막힌 공간에서 자신을 짓밟으려던 자들의 면상을 사정없이 갈기던 김모미의 가장 눈부신 날들이었다. 가장 좁은 독방에 갇혀 수달을 지내야 했지만 이런 고난은 김모미의 전투력을 더욱더 강화시켜 주는 퀘스트였을 뿐이다. 태초부터 억압과 폭력에 의해 세상 밖으로 나와 평생 억압과 폭력에 둘러싸여 깨지고 찢어지고 피 흘리던 김모미는 그때부터 짐승의 왕이 된다. 시공간의 주도권을 거머쥔다. 현실은 흑백이었고 미래는 보이지 않았으며 담장은 하염없이 높았지만 (스스로 의지로 발화된 폭력에 의해) 타자의 압박 속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었다.
(범죄 과정의 폭력이 아닌) 징벌 수단으로써 폭력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약자를 향한 폭력이 극에 달한 시대에 인내와 관용이 진정 모두를 위한 해답인가. 그 모두 안에 약자가 있나. 불특정 다수의 남성이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얼마든지 물리적인 힘으로 때리고 집어던지고 강간하려는 위협으로 가득한 상황에 어떤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너무 늦거나 무용하거나 대충 넘어가려는 시대에 그냥 그런 어둠과 그늘은 필요악이다 피하면 된다 이런 태도로 넘어갈 수 있나. 인류의 절반이 어둠과 그늘에서 맞거나 살해당할 수 있는 게 필요악인가. 나머지 절반을 위해 나머지 절반은 희생되어도 그만이라는 필요악. 남성의 안위를 위해 여성의 파멸은 필요악인가. 여성을 향한 남성의 학살 시도의 역사는 오래되었고 이를 위한 보이지 않는 (남성들의) 정서적 연대 또한 거대하게 드리워져 있다. 여성들에겐 더 이상 방패가 아닌 근거리 살상 무기가 필요하다. 주변의 모든 도구를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교육 역시 절실하다. 이런 관점에서 김모미와 김춘애(한재이)가 협업으로 가해자 남성의 숨통을 끊던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마스크걸에서 수많은 남성 범죄자들을 모조리 토막내서 섬뜩했다면 지금도 넷플릭스 바깥에서 수많은 현실 여성들이 그런 위협을 당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